월간참여사회 2006년 03월 2006-03-01   797

심시티 서울, 2006

대한민국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다. 말 그대로 ‘다이내믹 코리아’다. 늦은 시간에도 서울 곳곳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바쁜 일과시간을 마치고도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을 쪼개고, 주말이면 가족들과의 나들이를 위해서 교통체증을 마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만 빼면 일하랴, 사람 만나랴, 노느랴, 정신 없다. 이렇게 부지런한데다가 우리는 ‘빨리빨리’의 습성까지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시계는 지구의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경제성장도, 인터넷과 통신 강국이라는 명예도, 새로운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는 적극성도 모두 이러한 습성의 결과물일 것이다.

‘빨리빨리’의 성과와 숙제

도시가 변화하는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오랜만에 찾은 어느 동네가 나지막한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고층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어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육백 년 고도인 서울은 단 일백 년 만에 과거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초기의 큰 변화가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강압에 의한 변화라면, 해방 후 60여 년 동안의 변화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그 변화는 말 그대로 눈부신 속도 그 자체이다. 서울 강남의 허허벌판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더니 얼마 후 몇 십만의 인구가 사는 신도시가 들어서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 또 다른 신도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혁혁한 성과에 의기양양할 수만은 없다. 이제 그 성과가 남긴 또 다른 숙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더구나 그 숙제는 이제 ‘빨리빨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전의 서울이 온갖 잡식의 영양분을 먹으며 쑥쑥 자라온 청년이었다면, 이제 그 청년은 과식과 자기관리 부족으로 각종 성인병의 징후를 드러내며 잘못 하면 큰 병에 걸릴 위험에 처해있다. 청년기 이전의 서울이 영양부족이었다면 장년의 서울은 영양과다에 운동부족이다. 이제는 당연히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복원을 가장한 개발, 청계천

청계고가도로와 세운상가는 한 때 눈부신 경제성장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도시의 소통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버려 급기야 철거되거나 재개발이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사람 몸으로 친다면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그 몸이 가진 자생력을 복원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당장의 종양 제거 성과만 홍보하는데 바쁘다. 이 수술도 놀랄 만큼 빨리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수술이 성공인지는 미지수다. 물론 청계천 물길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역사 고증이나 유물을 무시하고 진행된 복원 과정이나 저작권법에 걸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짝퉁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다리들, 그리고 보행자와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보행환경 등은 다시 세월이 지나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할 또 다른 숙제를 남겨놓았다.

또한 청계천 개발 계획에 따르면 주변은 높은 빌딩들로 채워질 것이고 그나마 사대문 안에 남아있던 옛 골목길의 흔적이나, 그 속에서 가꿔온 우리의 작고 소중한 삶과 기억들은 사라질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복원이라는 이름을 가장한 ‘청계천 개발’인 것이다. 이는 지난 세기의 개발방식에 대한 반성과 방침 변화가 아니라, 또 다른 개발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부수고 짓는 게임 대신 시간과 삶이 녹아있는 도시 가꾸기를

이렇듯, 우리에게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과거의 것을 허물고 새로 만든다는 것인 듯 하다. 서울은 항상 그래왔다. 부수고 짓고, 다시 그것을 부수고 또 짓고, 마치 우리는 심시티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은 지 이십여 년 지난 아파트 단지가 이제 나무도 제법 자라고 분위기 있는 단지가 될 즈음이면 여지없이 재개발이 되고 만다.

강남의 주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결과를 축하하고 환영한다. 때려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농촌마을을 획일적인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어버린 새마을운동은 세기를 지나면서 뉴타운이라는 동명동의어로 다시 등장해 다시 한번 서울에서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킬 태세이다. 서울 하늘이 맑고

투명해질 날은 멀기만 하다.

광화문도 복원을 한다고 한다. 세종로 주변도 다시 정비될 것이고 성벽도 복원된다고 한다. 모두 지난 세기 우리가 자의로 타의로 무시하고 훼손해왔던 것들이다. 이제 그것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우리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훼손된 역사, 문화, 자연환경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이제 그 대가를 지불할 때가 서서히 오고 있다.

도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삶과 역사와 문화가 그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공간과 장소에 시간의 기억이 적층될 때 우리는 도시를 호흡하고 느끼게 된다. 살 만한 서울, 매력적인 서울은 이제 개발이라는 명제를 통해 얻어질 수 없다. ‘빨리빨리’보다 조금 더디더라도 우리의 삶과 함께 하는 공간과 장소를 시간을 두고 가꿔나가는 것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청계천이 온전히 시민의 일상 속에 녹아들려면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금 청계천 옆 보도를 엉거주춤 가로막고 있는 작고 여린 나무가 베어지지 않고, 십 년, 이십 년을 자라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그늘을 드리울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다.

박훈영아름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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