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3월 2006-03-01   467

가짜 다큐멘터리와 지하철 결혼식

요즘 다큐멘터리계의 화제는 ‘퍽큐’다. 진짜 같은 가짜 다큐를 말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의 별명이다.

다큐가 ‘진짜’, ‘가짜’를 놓고 벌인 논쟁의 역사는 길다. 이는 다큐에서 연출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논쟁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페이크 다큐들은 이런 논쟁을 비웃는다. 진짜처럼 만드는 바람에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국내에도 이런 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개봉된 ‘목두기 비디오’는 여관방 몰래카메라에 우연히 잡힌 귀신을 소재로 삼았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기자들은 취재경쟁을 벌인다. 알고 보니 그 귀신은 20년 전 부산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가짜였다.

원조는 사실 오락프로그램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스타들의 애정고백은 연기력이 뛰어 날수록 거짓논쟁을 낳는다. 그들이 ‘YES’라고 말해도 ‘NO’같고,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 할 수록 진짜 사랑처럼 보인다. 촬영을 마친 뒤 “실제로는 좋은 선후배 사이에요”라고 말하면 다들 웃고 넘어간다. 왜 속였냐고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

광고는 또 어떤가. 모델이 그 물건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고 암시할수록 눈길을 끈다. 비가 교○치킨이 맛있다고 하는 것보다 그가 연습 중에 ○○노트북을 쓰고 있을 때 지갑을 더 열고 싶어진다.

이번에는 가짜 연극이 등장했다. 가난한 연인이 지하철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대학생들의 상황극이다. 진정한 사랑에 굶주렸던 국민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다가 이젠 배신의 상처에 울부짖고 있다.

가장 서러워하는 이들은 TV다. 이들은 “누리꾼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로 자신들의 심경을 전했다. 대학관계자들까지 끌어들이는 유래없는 탐사보도를 했고, 연기 잘 한 거 말고는 죄 없는 학생들은 졸지에 돌을 맞고 있다.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영상물을 인터넷에 올렸던 시민이나 취재 없이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그저 “진짜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용서를 받았다.

평소대로라면 언론은 이래야 했다. 일단 그들이 고등학생이었다고 우긴 뒤, “누리꾼, 지하철 결혼식 주인공 특례입학 추진운동”이라고 쓰거나, “박찬욱 감독, 차기작에 지하철 연인 캐스팅 고려”라고 말해 스타로 키워야 한다. 그들의 풀스토리를 들을 수 있도록 아침 토크쇼에 초대하고 미니홈피를 뒤져 어릴 때 사진을 찾자. 사회부 기자라면 “정부, 거리공연 신고제 추진 검토”, 교육부 기자라면 “상황극이 인성발달에 좋아”, 정치부 기자라면 “정당들 지하철 배우 영입 경쟁 치열”이라고 쓰자. 그랬다면 ‘차라리’ 귀여웠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치졸한 행태를 보여준 이들은 언론이다. 그들이야 말로 ‘퍽큐’가 어울린다. 그 다음은 이런 가짜연극 한편도 용납할 줄 모르는 국민들의 문화감수성이다. ‘가짜’라고 밝히고 연극을 했다면 감동이 두 배가 됐을까? 죽은 백남준이 하늘에서 땅을 칠 노릇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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