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3월 2014-02-28   1001

[정치]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시대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시대

 

이용마 MBC 해직기자

 

23년 전 발생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비로소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그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야권의 분열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군사정권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태우 정부 이후 ‘3당 합당’으로 국회가 여대야소로 반전되면서 과거로의 퇴행은 뚜렷했다.

 

6월 항쟁 이후 불과 3년 만에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절망과 좌절은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수많은 인사들이 분신과 투신을 통해 자신을 희생하며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저항을 촉구했다. 군사정권은 이 위기상황을 공안정국을 조성해 돌파해 나갔다.

당시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 사건이 바로 ‘유서대필 사건’이다. 1991년 김기설 씨가 분신할 당시 그의 유서를 강기훈 씨가 대신 써주었다는 참으로 소설 같은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검찰과 법원이라는 국가기관을 거치면서 사실로 둔갑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은 정치투쟁을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 이용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되었다.

그로부터 무려 23년이 지나 이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되었음이 법원의 판결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23년 뒤 발생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

 

유서대필 의혹이 조작되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핵심 증거물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증거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중국의 공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중국 당국이 공식 확인해준 것이다.

 

중국의 공문서 위조 이전에 이 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수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유 씨의 여동생이 국정원 직원들의 수사를 받는 과정에 강압과 폭력에 못 이겨 오빠가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을 했음을 밝힌 것이다.

다행히 이 사건은 1심에서 여동생의 진술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고 2심에서도 검찰의 증거물이 조작되었음이 조기에 드러났다.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1987년 6월 항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간첩 조작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점이다.

 

참여사회 2014-03월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재판 과정에서도 증거물이 조작된 사실이 숱하게 나타났다. “절두산 성지”를 “결전 성지”로, “구체적 준비”를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로 바꾸는 등 녹취록 가운데 무려 700곳 이상을 엉터리로 기록했다. 고의적인 날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사건의 재판을 순식간에 코미디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1심에서는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등 모든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마치 1970~80년대 공안사건 재판이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2014년 비동시대의 동시대성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가장 앞서서 퇴행하고 있는 집단은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다. 특히 오랜만에 군인 출신을 수장으로 모신 국정원의 경우 그 행태마저 과거로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들 집단은 남한과 북한, 보수와 진보, 선과 악을 멋대로 나누고, 자기들만의 선을 지키기 위해 불법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스스로 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니 불법을 불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의 마비마저 발생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2014년 대한민국에 비동시대의 동시대성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에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과거 사건들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현재진행형으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시대의식에 사로잡힌 국가권력이 현재의 시대의식을 가진 국민들에게 과거의 시대의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을 하는 국민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역사,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역사이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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