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579

연합국립대? 차라리 초대형 일류대를 제안하라!

서울대 교수의 서울대개혁론에 대한 지방국립대 교수의 격정적 반론

지난 6월호 장회익 교수가 쓴 ‘서울대를 전국 국립대학에 개방하자’를 봤다. 우선 그 글에 대안으로 나온 제안에 논평을 요할 만큼 큰 가치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안의 근거나 내용이 모두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렇게 불확실하고 불분명함이 띠는 ‘위험’ 그 자체이다.

‘위험’이란 무엇인가? 이는 장 교수의 제안이 담긴 글을 “건성으로 읽고 피상적으로 접수할 때” 생기는 위험이다. 서울대에 문제가 있음을 서울대 교수가 지적하고 자기 대학에 불이익을 끼치는 제안을 한다는 인상이 주는 위험이다. 그런 인상은 자칫하면 “오죽하면 그런 제안을 할까” 하는 섣부른 판단을 불러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책입안자들이 이제까지 그랬듯 대학에 마구잡이 칼질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라는 국민이 또 피해를 보게 된다. 도대체 장 교수의 글에 무슨 말이 나왔기에 이러는가?

서울대와 10개 국립대 묶으면 나머지 200개는?

장 교수가 제안의 근거로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명문대학의 명성이나 성가가 지나치게 올라가면 대학간의 서열이 확고해지고 이것이 역기능으로” 돌아선다는 것과 명문대학의 ‘흡인효과’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이 경쟁적으로 그런 대학에 몰리게 돼 당초 ‘순기능’으로 출발한 명문대학체제가 “역기능으로 넘어가” 버리고 “역기능이 점점 더 강화”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폐단”이고 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을 제안한다. 인위적으로 상하위 대학간 격차를 줄이기도 어렵고 최상위대학을 해체하는 것도 차위대학의 승계만 불러올 뿐이니 “최상위대학에 약간의 불이익을 가함으로써 여타대학과의 상대적인 격차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방법은 “서울대와 10개 이내의 국립대 사이에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서울대는 앞으로 10년간 한시적으로 학사과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협력대학에 학생을 분산배정하고 전체학생에게 인력과 시설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열린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느끼기에 근거가 불확실하고 불분명하다는 이유는 뭔가? 우선 장 교수의 글에는 “순기능”이 무엇이고 “역기능”은 무엇인지, 대학간 서열이 당초 “순기능으로 출발”했다가 이제 “역기능이 점점 더 강화”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무런 해명도 없다. 도대체 무엇이 폐단인지, 어째서 명문대학에 손질을 해야 하는지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제안도 그렇다. 서울대가 10개 국립대와 협력한다는 일은 그 대학이 “학사과정을 독자적으로 운영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일까. 서울대와 10개 국립대, 도합 11개 국립대가 어떻게든 협력체제를 구축하면 200개에 가까운 전국의 대학들 가운데 과연 최상위대학과 “여타대학과의 상대적인 격차가 줄”게 될까.

‘세계적 대학’이라는 명분의 허구

이렇게 말하고 보면 최상위대학인 서울대 교수가 어찌하여 이처럼 근거도 내용도 모두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제안을 내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러 가지로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의문시의 혜택”은 당사자인 장 교수 자신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모든 추측을 젖혀놓고 장 교수가 아마도 “최상위대학”의 교수로서 취하게 되는 입장이 그의 관점을 그르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런 생각은 대학간의 서열이 일류대학의 명성이나 성가에서 비롯됐고 그 명성이 당초 순기능으로 출발했다는 장 교수 말에서 충분히 뒷받침된다. 예전에는 몰라도 요즘에는 하늘에서 명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즉, 명성이나 성가가 서울대에 우연히 떨어졌을 리 없다. 장 교수의 생각은 서울대의 명성이나 성가는 서울대에 내재하는 요건으로 해서, 특히 훌륭한 연구/교수활동으로 해서, 생겼다는 것이리라. “순기능”이라는 것도 그것이 좋은 뜻에서 쓰인 말이라면 서울대가 그 내재적인 요건을, 그러니까 연구/교수활동을, 통해서 타 대학과 경쟁하여 순위를 다투고, 결과적으로 모든 대학이 연구/교수활동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할 수 있으리라. 만약 이런 풀이가 옳다면 장 교수의 관찰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서울대의 명성은 내재적인 요건이 아니라 외재적인 요건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외재적인 요건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히 설명한 바 있지만 진행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되풀이하겠다. 서울대의 명성은 그 실속이 서울대가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을 개편해서 만든 대학이고 서울에 있으며 국립대학이라는 것이다. 물론 서울대의 연구/교수활동이 타 대학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점도 있을지 모른다. 확실치는 않지만 설사 그렇다 치자. 그러나 대학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이나 그 부모는 대개 그런 점에 대해 잘 모른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전국의 학교에서 똑같은 것을 똑같은 방법으로 배우고 시험을 통해서 석차경쟁을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시험을 통해 남보다 높은 점수를 따는 것밖에 달리 보일 길이 없다. 그리고 성적이 높은 사람은 외적 요건에서 타 대학보다 우월한 서울대에 가고 싶어한다. 국립이고 서울에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일률적이고 강압적인 국가주의적 교육정책과 입시정책이나 서울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정책입안자의 허영심이 서울대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그 인프라를 실제로 타 대학보다 우월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연구중심대학이니 대학원중심대학이니 하는 정책이 그것을 더욱 조장한다. “최상위대학”의 교수 눈에 그런 것이 보일 리 없다.

장회익 교수의 자기중심적 제안에 찬성 못한다

그렇다면 장 교수가 제안하는 ‘연합국립대’라는 것이 주는 실제효과가 뭘까? 11개 국립대학이 협력하여 공동으로 학사운영을 하고 “유능한 인재”도 서로 나눠 가지자는 제안은 설사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현재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면 시켰지 결코 완화하거나 해결할 리 없다. 장 교수의 말대로 가령 11개 국립대간에 독자적 학사운영을 포기한 “협력”이 이뤄졌다 치자. 그 결과라는 것은 현재의 서울대가 10개의 기존 국립을 망라하는 ‘초대형일류대’로 확대재생산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협력에서 제외된 국립대학이나 사립대학은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이미 최상위대학인 서울대에 갈 불이익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처럼 지방국립대 교수들한테 올 혜택은 연구/교수야 어찌 하든 자동적으로 일류국립대 교수가 되는 것이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장 교수의 두루뭉실하면서도 명백하게 자기중심적인 제안에 찬성할 수는 없다.

일류대학으로, 일류대학원으로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이 현재 국민일반에게 가하는 고통이 너무나도 크고, 이런 제도와 정책이 교육기관으로 하여금 졸업장 발급기 이상의 구실을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앞날을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나라의 학교와 대학에 들어가는 돈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 학교에 낼 돈, 과외비로 쓸 돈, 게다가 어학연수니 배낭여행이니 해서 드는 돈은 한없이 많다. 그러나 이 나라의 학교나 대학에는 이런 돈이 결코 없고 거기서 이뤄지는 교육은 부실하다. 서울대문제를 볼 때는 이런 기막힌 아이러니를 함께 봐야 한다.

고형일 전남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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