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335

공익을 위해서라면 때와 장소 안가린다

내부고발자들의 모임 ‘양심선언자회’

스토크먼 : 우리는 세균과 부패물을 팔아먹고 있는 겁니다. 우리 사회 생활 전부가 사기와 죄 속에 뿌리박아 번창하고 있는 겁니다.

시장 : 쓸데없는 망상은 집어치워. 뻔히 알면서 자기 고장에 손핼 주는 자는 민중의 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입센의 희곡으로 유명한 <민중의 적>. 마을의 효자 노릇을 하는 온천에 유해물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한 의사(스토크먼)는 이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나 개발이익에 눈먼 관료와 매스컴에 의해 그는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그렇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이 자신의 마을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도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양심선언한 내부고발자들이 있다.

깡패의리보다 국민과의 계약이 우선

이문옥 전 감사관은 1990년 재벌그룹 계열사의 비업무용부동산 보유실태에 대한 감사가 로비로 중단된 사실을 폭로했다. 이 일로 감옥까지 다녀온 그는 결국 1991년 1월 15일 파면처분당했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경실련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를 지내면서 그는 한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한 명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킨 내부고발자들을 모아 양심선언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겠다는 생각이었다. 1992년 10월 19일, 이씨는 10여 명의 내부고발자와 함께 ‘양심선언자회’를 결성했다. 현재는 54명의 내부고발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김종대, 윤석양, 이지문 씨 등과 같은 군, 경 양심선언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또한 이문옥, 현준희 씨 등의 감사원 비리를 폭로한 인물이나 군수재직 시절 공무원 선거부정을 폭로했던 한준수 씨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두 달에 한 번, 정기적 모임을 갖는다.

1989년 1월 군에서 명예선언했던 김종대 양심선언자회 총무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상태에서 양심적 소수를 억누르는 구조를 힘 모아 깨뜨리자는 취지였다”고 밝혔다.

1994년 5월, 양심선언자회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양심선언자보호특별법’ 제정과 특검제 도입 등을 위한 공청회도 가졌다. 그 뒤 ‘내부고발자보호법’이라고 명칭을 바꿔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와 함께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5대 국회 때는 양심선언자회 차원은 아니더라도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시민단체와 결합해 ‘부패방지종합법’을 통과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안에는 공직자윤리규정, 특별검사제, 내부고발자보호제도, 돈세탁금지, 부정축재 재산몰수제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법안은 여전히 통과되지 않았다.

현재 양심선언자회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부패방지법이 제정되도록 시민단체와 함께 노력중이다. 이와 함께 또 다른 내부고발자가 생기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는 것도 ‘양심선언자회’의 몫이다.

이문옥 씨는 “부정부패로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권력과 돈으로부터 소외된 일반 서민들”이라며 “내부고발자보호법은 부정과 부패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이므로 하루 빨리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제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이들, 그렇지만 양심선언자회 개개인의 삶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사회의 무관심과 조직 배반자라는 꼬리표가 그들 뒤를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아직 재판이 진행중인 이는 자신과 가정을 돌볼 틈조차 없다.

1996년 4월 감사원에 재직하면서 효산콘도 비리를 폭로했던 현준희 씨(49세). 당시 그는 건설부, 경기도, 청와대 장학로 부속실장까지 개입돼 저질러진 부당특혜에 눈감을 수 없었다. 양심선언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생활고를 면치 못하고 있다. 18년 간 헌신한 감사원이 그에게 돌려준 건 파면뿐이었다. 어느덧 이사를 간 것도 다섯 번, 벌이는 사업도 그때마다 재판이 진행중이라 신경을 못 써 모두 실패했다. 현재 외국인을 상대로 민박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3심을 앞둔 상황에서 부당한 파면에 대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들이 특히 마음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전한다.

“도둑보고 ‘도둑이야’ 외쳤더니 오히려 저를 잡고 때리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진정 공익을 위해서 외치면 조직을 버린 배신자로 몰아요. 특히 조직사회에 깡패적 의리가 강하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죠.”

국민과 공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계약’을 지키기 위해 18년 공직생활을 마다한 현준희 씨. 어떻게 국가최고사정기관에서 5년 사이에 두 명이나 내부고발자가 나올 수 있냐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내부고발자 보호 위한 울타리 마련해야

1990년 10월 4일,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활동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36세).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군의 민간인 사찰사건이었다. 그러나 윤씨의 일신상에 닥쳐온 것은 수배와 옥살이였다. 1992년 그는 특수 군무 이탈혐의로 수배자가 돼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후 내부고발자라는 바깥의 시선은 그 자신에게도 늘 부담이 됐다. 1994년 말 출소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개인적 고민은 깊어갔다. 무언가 새롭게 사회운동을 시작하고 싶던 그에게 기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디지털의 무한발전과 그로 인해 사회구조 전반이 송두리째 변하는 것을 최근 몇 년 간 경험하며 새롭게 인터넷 세계로 뛰어들었다.

네트로폴리탄(www.netuni.net)이라는 인터넷대학 사이트. 그는 여기서 강의기획과 인터넷대학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들이 디지털에 취해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는 전혀 몰라요. 그저 따라가기 바쁩니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와 활용이 없다면 그 사회는 암울해 집니다.”

한편 부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부패는 어떤 사회에서든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있으니까요. 결국 이를 사회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있어야 합니다.”

윤씨는 이와 함께 부패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도 지적했다.

“부패의 사슬 안에 우리가 은연중 포함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부패고리 안에서 힘겹게 폭로한 이들을 최소한 손가락질은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이는 언론이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합니다.”

부패사회에서 벗어나는 길. 그것은 확고한 제도적 장치와 사회전반의 교육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6월 임시국회 동안 부패방지법이 통과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그러나 매우 미흡한 법안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돈다. 시민단체들은 현재 공익제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행위 형사처벌, 공익제보자 포상 등)을 갖춘 수정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문옥 회장은 “무엇보다도 실효성 있는 법안이 되어야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비리 실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며 “언론에서 심층적으로 다뤄야 국민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법제정 노력과 함께 양심선언자회는 ‘양심재단’을 준비중이다. 김종대 총무는 “국가차원의 부패방지법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할 울타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고발자의 삶의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양심재단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백방으로 뛰고 있는 중이다.

현준희 씨는 “인재교육보다는 용기와 양심교육이 절실한 때”라며 “내부고발자를 다룬 영화 <인사이더>나 <민중의 적>과 같은 연극을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양심선언자회 내부고발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부정부패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이제 박수와 격려로 그들을 이 사회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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