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1월 2004-11-01   938

민주주의와 그 적들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두 가지로 줄일 수 있다. 첫째, 공업화를 통해 생산력의 비약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방식으로 자연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인류는 이른바 ‘풍요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둘째, 이렇게 부가 늘어나면서 불평등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격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신분제가 철폐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실현됐다. 아직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실현은 인류 역사의 대변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주권자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구의 절대 다수는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평민이거나 천민이었고, 극소수 왕족이나 귀족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신분제 사회는 ‘절대적 불평등 사회’다. 이 사회에서 불평등은 신의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의 실현은 ‘신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신의 죽음’은 과학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현상이다. 그것은 신분제의 철폐와 민주주의의 실현을 뜻한다. 그러나 신분제가 철폐됐다고 해서 바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근대사는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신분제의 철폐는 민주주의의 실현이 아니라 제국주의 총독이라는 또 다른 절대자의 군림으로 이어졌다. 식민지는 결코 온전한 근대사회가 아니었다. 식민지 근대화는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특징인 민주주의의 실현을 억압하는 불구적 근대화였다. 민족해방은 단순히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현을 이루는 역사적 계기여야 했으나 불행히도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민족해방은 이루어졌어도 민주주의의 실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정이나 총독정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반민주주의의 역사가 이어졌다. 헌법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권력자가 나라를 좌우하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반민주주의, 곧 독재정치가 오랫동안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깡패와 경찰을 동원한 이승만의 독재는 12년만에 무너졌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위대한 역사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실천은 친일·독재 기득권세력이 일제 관동군 출신의 박정희를 내세워 일으킨 ‘5·16군사정변’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박정희는 군대를 동원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권력을 다졌다. 그렇듯 무참한 세월이 무려 18년이나 계속됐다.

그러나 제 아무리 무자비한 독재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언제까지나 억압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 다양화도 이루어졌고, 이런 두가지 변화에 따라 사람들은 갈수록 독재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박정희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심복의 총에 맞고 죽게 됐다.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역사적 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친일·독재 기득권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광주에서 시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만행마저 저지르고 권력을 잡았다.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친일·독재 기득권세력의 언론은 이러한 만행을 열렬히 옹호해주는 댓가로 그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민주주의를 향한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다시금 독재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87년의 6월항쟁을 통해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됐다. 해방으로부터 따져서 무려 42년의 긴 세월이 지난 뒤였다. 거의 반세기 가까이 민주주의를 내세운 반민주주의의 역사가 이어졌던 것이다. 칼 포퍼는 좬열린 사회와 그 적들좭이라는 책에서 ‘전체주의’의 위험을 경고했다. 특히 그가 강조했던 것은 맑스주의로 대표되는 ‘좌파 전체주의’의 위험이었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큰 위험으로 몰고 갔던 것은 사실 ‘우파 전체주의’였다.

나찌즘과 파시즘이 바로 그것이다. 해방 이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한국 사회는 이러한 ‘우파 전체주의’의 지배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우파 전체주의’는 서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본래 서구의 우파는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를 추구하지만, 한국의 우파는 결코 민족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의 우파가 친일 부역세력으로부터 시작된 데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우파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탄압하고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 바탕에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빌미로 전체주의를 합리화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잘못은 이제 그만두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민주주의의 적들이 민주주의를 희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 잣대는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악용하여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억압하고 독재를 지켜온 ‘독재보안법’을 이제는 없애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 나라는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독재보안법’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막기 위해 이른바 보수세력의 총궐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이들의 실체는 ‘우파 전체주의’ 세력이며, 다시 말해서 친일·독재 기득권세력이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폭력적으로 세를 과시하는 그들의 반민주적 행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과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생히 확인해준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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