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1월 2004-11-01   680

책읽기와 살아가기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며칠 휴가를 내고 미국에 다녀왔다. 비행시간도 길고 해서 읽을거리를 몇 권 챙겨갔다. 그 중 한 권이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었다. 백인 우월주의가 무의식에까지 뿌리내린 사회 내에서 흑인의 사고체계가 왜 왜곡될 수밖에 없는지, 그것을 어떻게 전복시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흑인 심리학자의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백인을 대할 때에는 그 개인의 행동에 따라 평판이 결정되는 반면 흑인을 대할 때에는 하나로 묶어서 아이처럼 수다스럽다거나 지능이 떨어진다거나 감정적이라든가 하는 선입견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입견은 백인뿐 아니라 흑인의 내면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어 분열되고 굴절된 삶을 살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 들른 첫 번째 도시는 시카고였다. 예전부터 시카고가 미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 들었던 터라 각별히 조심해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 연락이 닿는 선배가 있어 밤 시간엔 주로 그의 차로 돌아다녔다. 그는 시카고에도 일종의 ‘인종경계’가 있어 다운타운의 안전구역에서 두세 블록만 벗어나도 흑인구역일 경우에는 위험지역이 되곤 한다고 일러주었다.

시카고에서 며칠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인근의 어느 대학 도시로 이동하던 날, 공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갔다. 낯선 도시에서의 시내버스 승차는 도시와 친근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시내에 진입하기 몇 정거장 전이었을까, 뒷자리에 앉은 한 젊은 흑인 아저씨가 갑자기 정중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제 소개를 해도 될까요?”

‘소개? 아니 왜? 흑인 외판원이야, 아님 선교사야? 왜 말을 거는 거지?’

나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 순식간에 2~3초의 시간이 흘렀다. 버스 안에는 손님도 많고, 안전한 분위기였는데도 나는 무엇인가가 무서웠다.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쳐서 그의 말을 막았다. 그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자 다시 그 젊은 흑인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의 단정하지만 다소간 촌스러웠던 옷차림과, 지나칠 정도로 정중했던 그의 말투가 떠올라서 무엇인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현지에서 만난 그리스인이거나 프랑스인이었대도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가 그토록 정중하게 말을 건냈는데, 설령 그가 어떤 물건을 강매하거나 어느 교회에 나오라고 종용할 참이었다고 하더라도 한 마디쯤 예의를 갖추어 대답은 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책을 읽고 인종주의에 대해 지식을 쌓기는 참 쉽다. 파농은 탁월한 감각으로 인종주의가 흑인의 자아 개념을 분열시키는지 보여 주고 또 그것이 결국은 백인에게도 왜곡된 우월감을 심어준다는 점을 파헤친다. 명쾌하다. 하지만 책은 책이고 현실은 따로 존재한다. 시카고에서는 흑인이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흑인은 위험하다고 결론 내리면 그만이고, 같은 말도 흑인이 시키면 대답할 필요가 없다. 그저 안전하게, 조금이라도 귀찮은 일 생기지 않게, 편견이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긴 것일 테니까, 나한테 손해 될 거 없는 선입견에는 굳이 대항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책 읽기 따로, 살아가기 따로 그래도 좋은 것일까. 그러려면 난, 책은 뭐하러 들고 다니는 것일까. 낯선 도시의 숙소에서 그 저녁 마음이 불편했다.

정문영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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