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11월 2004-11-01   1378

언제나 싼 가격 ‘월마트’의 이중성

월마트의 ‘소비자 지상주의’는 서민들 착취에서 비롯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실천은 자기 생명이나 인생을 바쳐야 하는 극도의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바꾸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일상이 나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그 어떤 보상도 쉽사리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단순명료한 한 마디의 핑계가 있지 않습니까? “나 하나쯤이야 뭐…”라는.

더군다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 지상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일상을 바꾸는 일은 정말이지 ‘폼’ 안 나면서 성가신 일일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지금 하려는 이야기도 망설여집니다. 전에도 몇 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실천할 자신도, 의지도 없을 때 지식처럼 쓸모 없고 성가신 일이 없으니까요. 이건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세계 최대의 대형 할인매장 ‘월마트’의 악명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몇 년 동안 저는 계속 월마트에 드나들어 왔지요. 자꾸 켕기는 마음 한구석을 ‘나 하나쯤이야 뭐’하고 달래면서, 나 같은 가난한 서민에게 돈 한푼 절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느냐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우습지요? 생산자, 서민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면서 부를 창출하고 있는 월마트가 표방하고 있는 것이 또한 소비자, 서민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거든요. ‘언제나 싼 가격(everyday low price)’의 소비자 지상주의. 어쨌든 분명한 건 월마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서민을 ‘먹고 사는’ 기업이라는 사실일 겁니다.

노조결성 봉쇄로 저임금 정책 유지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어쨌든 이번에 하려는 이야기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월마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재계의 시선으로 볼 때 월마트는 언제나 예측했던 것보다 높은 성장률과 수익률을 올리는 최고의 기업입니다. 실제로 월마트는 2년 연속 미국의 경제지 좬포춘좭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 으로 선정됐습니다. 또한 좬포브스좭가 선정한 세계의 갑부 명단을 보면 6위의 짐 월튼 월마트 상속자(208억 달러)를 비롯해 7위부터 10위까지를 모두 월마트 상속자들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반면 미국의 노동운동이나 반세계화운동, 진보진영에서는 가장 최악의 기업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노동운동이 월마트에 집중포화를 쏟아붓는 부분은 바로 월마트의 ‘무노조 정책’입니다. 월마트를 설립한 샘 월튼은 1962년 아칸소 주 로저스에 할인매장 월마트를 처음 개장할 때부터 철저하게 소비자의 편을 드는 ‘소비자 지상주의’ 정책을 펴왔고 이것이 어떻게 보면 월마트가 양 극단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지요.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가장 값싸게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생산자를 착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이니까요. 월마트는 1일 2000만 명의 소비자들을 빌미로 납품회사들에게 납품원가를 낮추라는 강력한 압력을 가합니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원가를 낮추기 위해 납품회사들로서는 인건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월마트 자체 인건비도 매출의 8% 이내로 최소화되어 있습니다. 2001년 기준으로 월마트 직원들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8달러 23센트, 연간 1만 3801달러입니다. 미국 보건복지부가 정한 3인 가족 기준 빈곤선(2001년)이 연간 1만 4630달러로, 부양가족이 2명일 경우, 월마트에서만 일하는 일반 직원들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셈이 되는 것이지요.

월마트가 이렇게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무노조 정책입니다. 월마트는 채용단계에서부터 잠재적 노조 동조자를 가려내는데요, 고학력자나 옳고 그른 일에 흥분을 잘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은 월마트 채용 인성테스트에서 탈락되는 것이지요. 심지어 월마트는 ‘노조 없는 월마트 유지를 위한 매니저의 지침’이라는 내부 지침서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매니저들은 직원들이 동료 집에서 자주 회합한다든지, 평소에 말을 안하던 사람들끼리 갑자기 대화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동조합 결성 징후가 포착되면 바로 핫라인으로 본사에 통보되고 그러면 즉시 본사 전용기인 에어 월튼에 ‘노조 대책반’을 태워 현장에 급파한다는 것입니다.

노동자 서민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노동조합 결성을 완전봉쇄하고 납품회사들에 대한 압력을 통해 다시 가난한 노동자들을 착취함으로써 생산단가와 운영비를 줄여서 달성해낸 ‘언제나 싼 가격’으로 다시 한번 그 가난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월마트.

멕시코 고대 유적 파괴하고 월마트 왕국을 세운다?

그 월마트가 최근 직면해 있는 또 다른 논쟁은 전 세계에 새로운 매장을 건설하면서 그 지역사회와 겪는 갈등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몇 달 전 굴착 공사에 들어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북부의 월마트 매장 부지 문제인데요, 이곳이 바로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유적지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인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에서 겨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 중원을 다스리던 아즈텍의 지배자들이 성지로 삼아 순례하던 대표적인 고대 문명 유적입니다.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상징하는 인류의 성취와 정교한 건축물들, 역사, 정신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고대 문명에 대한 자부심은 멕시코의 통합적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땅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며 들어서는 월마트는 많은 멕시코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와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곳에 들어설 월마트 매장 굴착 공사 과정에서 벌써 여러 고고학적 유물이 쏟아져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멕시코 일간지 좬라 호르나다(La Jornada)좭에 월마트 건설 노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어떤 유물에 대해서도 함구할 것을 명령받았다고 합니다. 유물 발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종종 이후의 굴착 작업이 아주 어렵게, 조심스럽게 진행돼야만 하거나 때로는 아예 중단되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월마트 측은 심지어 매장 부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달라는 멕시코 정부의 요청도 거부했습니다. 부지 매입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법적인 하자가 없는 이상 옮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멕시코시티 지역의 상인들, 예술가들, 학자들까지 다 나서서 단식투쟁, 시위, 언론공세 등을 통해 월마트 신 매장 건축에 반대하고 있지만 월마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쉬쉬하며 테오티우아칸 문명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먼 나라 멕시코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도 월마트가 하와이 토착 원주민들의 고분과 유적지를 마구 파괴하면서 매장을 건설하는 바람에 지금도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미 42기의 고분이 파괴된 상태인데요, 심지어 월마트 측은 하와이 원주민 지역사회 측과 묘지 이전에 합의해놓고는 고분에서 발굴된 유골들을 마분지 상자에 담아 주차장 경사로 밑에 처박아놓은 채 그냥 매장을 개장해버렸다고 합니다.

월마트의 ‘소비자 지상주의’는 어쩌면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월마트의 소비자와 소비자가 아닌 자” 그런데 문제는, ‘할인매장’ 월마트를 배불려 주는 소비자, 값싸고 질좋은 제품에 호주머니 돈을 털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월마트와 같은 대기업들에 의해 착취되는 서민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문제는 참으로 어찌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월마트 불매운동을 벌이자면, 똑같은 물건을 최소 몇 백 원이라도 더 주고 구입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같은 서민들에게 그게 참 쉽지 않은 실천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해야 할까요?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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