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11월 2016-10-31   583

[듣자] 피터 시컬리의 ‘음악이 아닌 작은 곡’

 

피터 시컬리의 ‘음악이 아닌 작은 곡’

– 헛소리에 휩싸여 추락하는 이 사회에 던지는 경고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헛소리다.” 
헛소리는 종종 전문용어로 포장되지만 합리성과 거리가 멀다. 배운 사람이 헛소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지”, 참아주고 넘어간다. 미국 철학자 스티븐 로Stephen Law는 이 ‘헛소리bullshit’의 체계를 ‘지적 블랙홀’이라 부른다. 교묘하게 휩쓸려 들어가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늪과 같다는 것이다(『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스티븐 로 지음, 윤경미 옮김, 미래엔). 헛소리는 일종의 사기행위로,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든 안 하든 자기 목적을 위해 편리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것이다. 

 

배운 사람들의 헛소리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서울대병원 의사는 백남기 농민이 ‘심폐정지’로 사망했다고 우기더니 가족들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둘러댔다. 헛소리로 헛소리를 돌려막다 보니 패륜적인 말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화여대 총장은 사면초가에 몰려 사퇴하면서도 최순실 딸과 관련 “특혜는 전혀 없었다”며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헛소리를 어엿한 ‘의견’으로 격상시켜 보도하는 언론도 이 헛소리의 카르텔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기 이익 앞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 시대의 뻔뻔함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음악은 정직하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Eine kleine Nachtmusik)>을 들어보자. ‘작은 밤의 음악’이란 뜻으로, 선율 · 화음 · 리듬이 단순하고 소탈해서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다. 합리성 · 균형미를 갖추고 생기 있게, 기품 있게 잘도 흘러가는 음악이다. 모차르트가 대작 <돈 조반니>를 작곡하던 중인 1787년 8월 잠시 짬을 내어 만든 현악 합주곡이다.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 K.525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Eine Kleine Nachtmusik을 검색하세요.
https://youtu.be/hcpM0yN7p0c

모차르트의 이 곡에 장난을 친 기인이 있다. 미국의 현대 작곡가 피터 시컬리(Peter Schickele)의 <아이네 클라이네 ‘니히트’무직(Eine kleine Nichtmusik)>. ‘음악이 아닌 작은 곡’이란 뜻이다. 모차르트 곡의 원제목 ‘Nachtmusik’(밤의 음악)에서 철자 하나를 바꿔 ‘Nichtmusik’(음악 아닌 곡)이라 한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헨델, 베토벤, 브람스,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베르디, 라흐마니노프, 드보르작, 쇼스타코비치 등 엉뚱한 선율들이 끼어들어 익살스런 효과를 낸다. ‘금발의 제니’, ‘볼가강의 뱃노래’, ‘떴다떴다 비행기’, ‘오 수잔나’ 같은 친숙한 멜로디도 심심찮게 나온다.

 

피터 시컬리 <아이네 클라이네 ‘니히트’무직>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Eine Kleine Nichtmusik을 검색하세요.
http://youtu.be/SAMB01JK5pY

 

이 엉뚱한 선율들은 모차르트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기도 하고, 헛소리를 해서 웃기기도 한다. 포스터의 민요 등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모차르트 음악의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중심이 되는 것은 모차르트 음악이다. 어떠한 선율의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의 꿋꿋한 힘에 감탄하게 된다. 헛소리가 아무리 끼어들어도 모차르트 음악은 끝까지 바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음악 아닌 작은 곡’을 들으며 웃을 수 있다.

 

듣자

미국의 작곡가 피터 시컬리는 ‘P.D.Q 바흐’라는 가명으로 음악적 헛소리를 즐겼다.

피터 시컬리는 ‘P.D.Q 바흐’라는 가명으로 익살스런 작품들을 발표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21번째 자식이라나? ‘1807년에 태어나 1742년에 사망’(?)했다니 죄다 엉터리다. 음악 패러디로 유명한 그는 오케스트라, 실내악, 합창을 위한 풍자곡을 100곡 넘게 썼다. 그가 얼마나 웃기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동영상 하나! 바이올린의 거장 이착 펄만과 함께 우스꽝스레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다. 곡 제목은 번역 불가! ‘똥싸는 협주곡(Konzertschitcke)’이라고 할까? 단어 중간에 들어간 ‘shit’란 말에 슬쩍 주목하시길…. ‘작은 협주곡(Konzertstucke)’을 살짝 바꾼 신조어다.

 

피터 시컬리 <콘체르트시트케> 이 음악을 들으시려면?
유투브에서 Perlman Schickele 2을 검색하세요.
http://youtu.be/ZMSEPUuNP8k

피터 시컬리의 <아이네 클라이네 ‘니히트’무직>은 ‘작은 악몽 음악(A Little Nightmare Music)’이란 앨범에 들어 있다. 폭소를 자아내는 음악들이지만 지금 한국에서 난무하는 헛소리를 돌이켜보면 ‘악몽’이란 말이 심상찮게 다가온다. 진실은 하나인데, 배운 자들의 헛소리가 판을 치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내기가 몹시 피곤하다. 음악은 결국 제 자리를 찾아가서 우리에게 웃음을 준다. 그러나 이 음악은 지금 이 나라가 헛소리에 휩싸인 채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섬뜩한 경고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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