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5월 2010-05-01   975

최성각의 독서잡설_”이 나라 산천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산천은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그의 삶과 그의 생각으로써 내게 늘 감동과 자극을 주고 있는 ‘B급좌파 김규항’이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경계를 건드리는 사람이 얻는 것은 오해와 욕설과 고단함이죠”라고. 오래 전의 일이지만, 김규항의 페미니즘 비판과 관련된 지승호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 말이다. 김규항이 말했다. “진보주의란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것인데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현재 세상의 경계를 건드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확연히 적대적인 대상만을 비판하는 방식은 단지 안락을 좇는 색다른 방식입니다. 확연하고 일반적인 경계에서 드러나 있지 않은 모호한 부분, 세부에 대해서 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안전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곤란한 문제에는 언제나 두루뭉슬하게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지승호,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물과사상사, 2002년, 86-87쪽).

그 말을 접하고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인가, 혹은 경계를 건드는 글쓰기를 해온 사람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묻고 내가 답해야 하니 거짓말 시키기 곤란한 골방(내면)의 질문이다. 글로 나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내 재주 없음에 대해 늘 애통해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는 최소한 글 따위를 통해 ‘존경과 품위를 증가’시키려고 획책한 적은 없었으므로 그 질문으로 나를 쓸데없이 괴롭힐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말하는 ‘경계’란 무엇일까? 내부검열 따위를 하지 않고, 성역 없는 정직한 비판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일단 읽힌다. 이 나라의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했던 문인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2001년 5월 우리 사회 만악萬惡의 근원인 그 매체의 사옥 앞에서 나는 한 작가로서 1인시위를 했었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문인이 아니므로 그 일로 인해 과외의 존경과 품위를 얻은 것 같지는 않다. 환경판 혹은 시민운동판 내 거물들의 이중성이나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은 말이나 글로, 누가 듣거나 말거나, 앉으나 서나 늘 해오던 짓이니까, 역시 나는 최소한 ‘안전한 글쓰기(말하기)’를 통해 일신의 ‘안락을 좇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도 된다. 어쩌다 글쟁이가 되었지만, 전에도 지금도 글 따위로 나는 얻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두려운 일은 글로 인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내’가 담기지 않은 글로 인해 만약 내 삶이 일그러진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비판하는 이쪽도 참 피곤하다

그런데도 나는 치사하게도 다시금 ‘확연히 적대적인 대상’을 비판해야 한다. 오늘도 그 대상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오래 전, 취임하자마자 그린벨트를 해제했던 김대중을 비판할 때처럼, 새만금을 끝내 메우고야 만 노무현을 비판할 때처럼 오늘도 4대강 죽이기에 목을 매는 이명박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분통 터지고 슬프게도 그런 분들은 대개 엄청 바빠서 내 글 따위를 접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지체 높은 분들을 모시는 사람들 역시 내가 치명적인 인물이 아니다 보니까 내 글 따위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 어제도 오늘도 나는 한없이 곤혹스럽다. 그래서 글 같은 걸 안 쓰고 살 방책은 없을까 심각하게 궁리중이다.

내가 만약 새만금살리기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던 강준만을 비판하거나, 여야 할 것 없이 두루 만나고, 기업돈 나랏돈 가리지 않고 받아 누려왔던 ‘소통 1인자’(경향신문의 여론조사 결과)인 박원순을 공격하면 경계를 건드리는 글쟁이로 간주될까. 강준만이나 박원순 모두 내 존경하는 분들이지만, 최소한 그 정도 ‘이쪽 켠의 거물들’을 건드리면, 안전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오해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 텐데, 싶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오늘 또 ‘확연하게 적대적인 대상인 이명박’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나를 김규항이 혹시 비겁하다고 오해한다 해도, 슬프지만 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하순, 이 나라는 오래 끌던 천안함 미궁을 넘어서서 ‘인지상정의 관행’(검찰의 말)으로 술과 성상납을 받아오다 들통이 나버린 ‘스폰서 검찰’에 대한 비판으로 뜨겁다. 그래서 시의적절하게 ‘스폰서 검찰’에 대한 책을 다루면 어떨까 싶어 책장을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마땅한 책이 없어 오늘도 부득불 ‘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또 4대강 이야기인가? 혹 지겹다고 반응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4대강 이야기를 더 꺼내 강의 파괴가 중지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따분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인즉, 혹 이 잡설의 애독자들이 계신다면 너그러운 양해를 바랄 뿐이다.


청계천을 보면 4대강이 보인다

『강은 살아 있다』(황소걸음, 2010년)이번 달에 필자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서강西江지기’로 널리 알려진 최병성 목사의 『강은 살아 있다』(황소걸음, 2010년)이다.

최 목사님은 10년도 더 전인 동강살리기 운동 때 만난 분이다. 모두들 동강에만 몰두할 때, 그분은 훨씬 전부터 망가지기 시작하던 서강을 지키고 살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몇 번 못 뵈었지만, 나는 최 목사님을 믿는다. 성직자라고 해서 믿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강지킴이로 세상에 알려져 있지만, 최 목사님이 숱한 간난신고를 헤치고 시멘트의 진실을 세상에 폭로한 일은 인간으로서도, 한 시민으로서도 참으로 감동적인 운동이었다. 기업은 때로 국가폭력보다 더 냉혹하고 무서운데, 이분은 굴하지 않고 시멘트회사와 십수년에 걸쳐 싸워왔다. 환경호르몬의 유독성에 대한 인식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기왕 땅속의 석회석을 캐내 쓰더라도 그 생산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덜 배출되도록 시멘트 생산업자들이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면, 그래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멘트 독성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 그런 혜택은 순전히 이런 분들의 노력 덕택이다. 사회는 그러므로 이런 분들의 자발적 자기희생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무임승차자들은 이런 분들에 대해 감사는커녕 ‘좌빨 목사’니 어쩌구 하며 모욕을 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닐 뿐더러 후안무치를 넘어 가히 벌 받을 짓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사기성 짙은 캐치프레이즈로 지금 정권이 강을 죽이고 있는 데 대해 최 목사는 조목조목 그가 공부하고 그가 현장에서 찍고, 고민한 풍성한 자료들을 한권의 책에 담았다.

“4대강 사업은 강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강을 죽이는 참 몹쓸 사업입니다. 국민이 4대강 사업의 실체를 아는 날, 4대강의 광기는 멈출 것입니다. 4대강의 생명들이 우리가 도와주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유람선만 떠다니는 죽음의 수로를 원치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울에 발을 담그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명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생명을 노래하는 맑은 여울의 속살거림이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하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책의 서문에서).

그가 책을 세상에 내놓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허구에 찬 4대강 사업의 실체를 담은 준열한 보고서이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뜨거운 폭로이고, 본질적으로는 생명사랑의 순결한 기도문이다. 이 책은 기도문 속에 최 목사님의 소망이 다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책 한 권만 국민들이 제대로 읽어준다면, 4대강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고, 실체를 알게 된다면 권력을 잠시 위임받은 이번 정권이 마치 온 국토를 영구적으로 소유한 것으로 착각하고 벌이고 있는 이 엄청난 죽임의 사업을 조기에 중지시킬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이다.

최 목사는 4대강 죽이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청계 이명박’ 대통령의 확신이 매우 그릇되었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위해 그를 대통령이라는 직위까지 너끈히 오르게 한 동력으로 작동된 ‘청계천 사업’을 냉정하게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한다.

청계천 사업은 누가 뭐라고 분칠을 해도 엄청 큰 돈을 들여 진짜 청계천을 죽여 만들었고, 돈(전깃세) 없이는 잠시라도 흐르지 못할 ‘시멘트 어항 건설사업’이었다. 모전교 옆에 박혀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인사말이 박힌 때가 2005년 10월이었는데, 5년도 채 안 된 청계천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지반침하다. 진작부터 청계천 사업은 멀쩡히 흐르는 자연의 물길을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낸 인공수로이기 때문에 누천년간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진짜 물이 시멘트 옹벽에 막혀 흐르는 바람에 지반이 유실되고, 인도의 화강암 보도블럭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일찍부터 예상되던 일이었다. 도심의 휴식공간이 생겼느니, 녹색을 도심에 끌어들인 친환경사업이니, 서울의 르네상스 운운 하고 있지만, 갈라지고 터져나가고 무너져내리는 르네상스도 있을까. 한심한 서울시 시설관리실의 한 관리는 “청계천 인도가 벌어진 원인은 지난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 얼었기 때문”이라며 “날씨 풀리는 3월부터 보수공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청계천 인도 곳곳에 ‘금’… 지반침하 시작됐나」, 오마이뉴스. 2010년 3월 16일).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지반침하와 보도불럭 함몰은 날씨와 관계없이 가속이 붙을 것이다.

그래서 최병성 목사는 청계천을 제대로 보면 4대강의 앞날도 불 보듯 보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최 목사의 예측은 반드시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대통령은 왜 이렇게 힘이 셀까

눈물 많고, 걸치고 있는 머풀러도 잘 벗어주는 인정 많고 추진력 강한 이명박 대통령은 왜 이토록 4대강에 목을 매실까. 왜 임기내 완공을 목표로 밤잠 안 자고 멀쩡한 강을 이렇게 처참하게 도륙을 내고 계실까? 누가 그분더러 국토를 ‘업’ 시켜달라고 애걸했단 말인가? 후보자 시절에 대운하를 공약했고, 그것을 공약한 자신을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아주었으니 4대강 파괴는 누가 뭐라 해도 천명天命을 받은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모양인데, 경제에 미친 30%대의 지지자들도 빠른 시간안에 부자 만들어달라고 그를 찍었지, 마음놓고 산천을 파괴하라고 찍진 않았을 것이다. ‘역대 최저의 선거참여율’이라는 사실은 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압도적 표차’만 임기 3년차인 지금까지 호시탐탐 강조되고 있는데, 아무리 합법적 절차로 승인된 대통령직이라 하더라도, 이 나라 산천이 그의 소유는 결단코 아니건만, 그분은 산천을 자기 멋대로 파헤집고 뒤엎고 갈아엎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봉건왕조 때에도 왕의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왕이 몹쓸 짓을 하려고 들면, “전하, 통촉하옵소서”라고 선비들은 도끼를 들고 엎드려 바른 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내 주장에 문제 있으면 도끼로 나를 치시라는 것이었다. 지니고 온 도끼로 직언하는 선비들의 목을 쳐죽이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 알고 보면 왕들도 대단히 피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봉건왕조 시대의 왕들보다 더 무소불위이시고, 안하무인이시다. “전세계 수상들이 저랑 악수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농담하면서 “내가 잘 나서가 아니므로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천안함 사고로 죽은 수병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눈물짓던 바로 다음날이었다. 그런 그분의 참모습을 바라보면서 “아, 이 분은 정말 난공불락이로구나”, 하는 착잡한 심사로 지금 이 국가시스템, 즉 한 사람에게 너무나 막강한 힘을 부여한 작금의 대통령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30%대 지지율로 대권만 움켜잡으면 뭣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대통령제는 정녕 합당하고, 바람직하고, 흠결 없는, 괜찮은 제도인가? 숱한 피를 흘리고 맞이한 잘난 ‘근대이후의 권력구조’가 이 지경으로 작동되는 것은 과연 개선의 여지가 없을까,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묻게 되는 것이다.


4대강은 새만금 꼴 나면 절대 안 된다

최 목사가 4대강 죽이기를 바라보면서 청계천을 생각하자고 제안할 때, 나는 ‘바다의 만리장성’이라 붙여진 새만금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미력하나마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10년을 싸웠다. 그리고 깨졌다. 그래서 새만금을 살려내지 못한 실패자로서 나는 또 새만금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4월 27일, 19년에 걸친 우여곡절(갯벌을 죽인 이들의 표현) 끝에 세계 최장(33킬로미터)의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농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농업기반공사가 사업주체로서 강행했던 ‘새만금 죽이기’는 방조제를 메우기 바쁘게 그 주체세력에 의해 곧바로 “골프장 200개 짓자(유시민)”는 속내로 드러났다. 멀쩡하게 살아있던 천혜의 갯벌은 자그마치 여의도 140배의 면적(4만100㏊)이다. 거짓 구호로 생명을 죽이는 일에는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가 조금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이번 준공식 때 깃발축제라는 것을 마련한 모양인데, ‘희망과 소통의 상징’이라는 그 깃발축제에 소요된 경비가 자그마치 총 21억 3천만 원이란다. 깃발축제에는 ‘녹색 혁명의 바람으로, 천년 희망의 깃발을 휘날리자’라는 주제로 온 세상의 잘난 예술가들이 다 참여한 모양이다.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국가라는 이름의 폭력과 범죄에 대거 동원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사실 놀랄 일도 아니긴 하다.

그러나 말의 타락과 오용은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다. ‘녹색’, ‘희망’, ‘소통’이라는 말이 깃발축제 때 바람에 휘날릴 텐데, ‘말’에 만약 혼이 있다면 간지럽고 욕스러워서 그 말들은 깃발의 잔등에서 내리고 싶어할 것만 같다. 새만금이라는 비단을 걸레로 만든 우리 시대에 멀쩡히 잘 흐르던 4대강인들 ‘시멘트 똥물통’으로 못 만들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필경 대답 없겠지만, 오늘도 ‘확연한 적대적 대상’으로서 너무나 힘 센 내 나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시금 간곡하게 호소한다. 하늘의 계시라도 받은 양 4대강 죽이기에 전념하시는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죽이기를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라. 당신의 옹고집과 저돌적인 추진력 속에 혹시 화끈하게 포기하는 용기도 있지 않을까. 잘 살펴보시고 아직 늦지 않았으니 부디 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란다. 그게 당신도 살고, 우리도 살 길이다. 그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여강(남한강) 파괴 전후- 같은 장소 비교 사진들

출처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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