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2월 2006-02-01   307

‘교양’ 좀 그만 지키자

어딜 가나 교양이 문제다.

MBC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은 욕 콘테스트를 개최했다가 방송위원회로부터 청취자에게 혐오감을 주는 표현으로 방송의 품위를 저하했다고 ‘권고’판정을 받았다. 민언련은 지난해 여름 성명서를 발표해 MBC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주먹 욕설’을 날리는 장면이 신중하지 못했다며 ‘유쾌·상쾌·통쾌한 국민드라마’가 되라고 충고했다. 최민수는 SBS <야심만만>에 나와 반말을 했다가 언론과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MBC <궁>은 각종 통신용어로 도배해 시청자를 난감하게 만드는 바람에 방송초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국가기관, 시민단체, 언론, 네티즌까지 모두 뭉쳐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방송이 교양 없어지는 걸 견디지 못한다. 어린이들의 세계관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고 국민들의 언어습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TV의 위력을 똑바로 알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하나씩 따져보면 좀 이상하다. 소리가 문자로 옮겨지니 더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은 창의적이고 순화된 욕으로 자신의 감정을 배설해 보자는 기획의도에 따라 개최됐다. “스팸메일 받고 좋아서 답장 쓸 놈아”, “열대야 아주 심한 밤에 컴퓨터 뒷편에 찰싹 붙어서 팬에서 나오는 열로 익혀질 놈아”, “부시보다도 판단력이 딸리고 고이즈미 보다도 융통성 없고 마왕(신해철) 보다도 기억력 없는 놈” 등이 선정됐다. 물론 “키보드 자판 하나하나가 너의 초롱한 눈알이었으면 좋겠다”도 수상권에 들었다. 하지만 현존하는 어떤 욕보다 후련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삼순이는 어떤 행동을 해야 옳았을까? 자신을 버리고 가버리는 애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가시면 저는 정말 섭섭하고 화가 납니다”고 독백했다고 가정해보자. 삼순이의 진심을 명쾌하게 읽을 수 있었을까. 혼자 있을 때도 착한여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여자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고 칭찬받았을까? 양성평등적 욕을 발굴하는 센스를 발휘했다면 박수를 받았을까.

최민수도 답답할 것 같다. 당시의 방송은 상대방을 나이로 제압하기 위해 사용한 반말이 아니었다. 친구와 수다를 떨듯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거기서 느꼈던 감정을 설명했다.

<궁>은 없는 언어를 창조하거나 유포하고 있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속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 기가 막힌 상황에 놓였을 때 “아따 이걸 어짜면 좋컸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략난감”으로 정리해야 하는 세대도 있다.

욕도 사투리도 비속어 통신용어도 방송에선 금기된 언어다. TV는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지식인들이 쓰는 언어로만 가득 차있다. 시청자들의 일상어는 언제나 무시되고 바꿔야할 대상으로만 치부된다. 과연 우리가 지키려고 애쓰는 교양은 누구를 위한 교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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