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7월 2009-07-01   914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알권리 통제: 한미FTA의 전제는 ‘투명성’이다



한미FTA의 전제는 ‘투명성’이다


정창수 최재천 전 국회의원 보좌관


최재천 전 국회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정창수 씨는 2007년 국회 내 ‘한미 FTA 고위급 협의 결과와 주요 쟁점 협상 방향’ 문서유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오던 중 2008년 12월 19일 1심 선고공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징역 9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당시 국회 내 진상조사 결과에서 사법처리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있었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적다하여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혹시 실형을 받더라도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하고 공판에 참석했던 정창수 씨는 불과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실형 선고를 받았고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한미 FTA는 잊혀진 이슈인가

한국사회는 역동적이다. 그래서 ‘소용돌이 문화’ 라고 한다. 소용돌이 문화는 하나의 중앙과 이슈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감옥은 이러한 한국사회의 소용돌이를 보여주는 척도 중의 하나이다. 민가협양심수후훤회 소직지에 나온 명단을 보면 그 변화가 눈에 띈다.
현재 그 명단에 있는 90여 명의 면면을 보면 노동운동과 통일운동 그리고 촛불집회가 대부분이고 최근 용산 철거농성사건 관련자가 추가되었다. 한미 FTA관련자는 이제 단 두 명뿐이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잊혀진 이슈가 된 듯하다. 과연 그럴까?



국민의 알 권리가 ‘유죄’를 받다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2007년 1월 이 사건이 발생한 후 2008년 12월 법정구속 될 때까지 당연한 알권리가 유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를 깨닫지 못한 결과, 그 설마는 현실이 되었다. 2006년 2월 갑작스럽게 발표된 ‘한미 FTA 추진선언’은 많은 갈등을 불러왔다. 그러나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국가의 시스템과 미래세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대의협상에 대해 국민은 물론 국회의 견제마저 원천봉쇄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이른바 ‘한미 FTA 문서유출사건’이었다. 유출된 문서는 2007년 1월 6차 실무협상에 관련된 것이었다. 중요한 사안인 무역구제분야의 핵심요구사항인 비합산조치 등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협상의 카드로 이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무역구제분야는 쉽게 말해 덤핑판정 같은 불리한 조건이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무역구제법령 하나만 바뀌어도 “수출이 증대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홍보했다. 사실 지난 수십 년간 수백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 사안은 한미 FTA의 핵심 중 하나였다.

하지만 1월 이후 미국대표는 법제정과 관련한 어떤 협상권한도 가질 수 없었고, 이는 공인된 사실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알리고 협상계속여부에 대해 중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국면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협상체결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며 슬그머니 넘어가려 했다. 이 문서는 이런 상황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문건이 공개되자, 이로 인해 협상에 중대한 장애가 초래된 것처럼 주장하며 비판세력을 위축시키는데 이 사건을 활용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라는 서양속담이 있다. 원론적인 총론보다 각론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훌륭한 정신을 담고 있지만 시행령이라는 각론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다반사이다. 극심한 소용돌이에 휘말린 정치권은 이러한 각론을 살필 수 없고 대리인인 관료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이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집권당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닌 관료당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정보가 권력이므로 관료들은 정보공개에 극도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도, 전문가도, 하물며 미국 측까지 아는 내용을 국민에게 알렸다고 ‘공무상 비밀누설’ 이라고 유죄를 선고하는 지금의 현실은 각론을 감추고자 하는 권력의 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집권당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관료당’

우리사회는 한미 FTA에 관해 완고한 프레임에 갇혀있다. 첫째, 개방과 쇄국 프레임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FTA는 개방을 위해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반대하는 것은 그래서 쇄국논리가 아닐까 내심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117%다(2008년 GNP기준). 오죽하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피치(Fitch)사에서 무역의존도가 너무 높다라면서 신용등급을 낮추었겠는가? 그러므로 개방과 쇄국이 아니라 비정상과 정상의 대립인 것이다.

둘째, 한미 FTA는 상품거래가 주요이슈가 아니다. 두 나라의 관세는 미국 2%대 한국 7%로서 큰 영향이 없다. 문제는 미국의 시스템이 한국에 이식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의회보고서에서도 밝히고 있다. 우리법률 1,200여 개 중 최대 160여 개가 개정돼야 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앞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미국과 미국의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의미 부여다. 단적인 예로, 국회에서 어떤 의원이 ‘미국의 불순한 의도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협상고위책임자가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협상대표가 이정도인데 일반인은 어느 정도겠는가. 이런 생각은 한미 FTA를 하면 미국처럼 살 수 있다는 막연히 혹은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의식 속에서도 발견된다. 한미 FTA가 이성적인 토론이 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다.



새로운 전기 맞은 FTA

이런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FTA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바라는 오바마의 집권과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이 그것이다. 미국 내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존재하고, 따라서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미 FTA는 재검토 해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정치·경제적인 이익과는 상관없이 선비준이라도 하려하지만 이는 부질없는 상징조약일 뿐이다.



국익 때문에 진실과 정의 포기하나

본인은 한미 FTA 반대론자가 아니다. 올바른 한미 FTA가 되기 위해 각론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비이성적인 편견으로 편 가르기 하지 말고, 실사구시 자세로 따져봐야 한다. 투명성은 그 판단을 위한 전제이다. 그나마 금융위기 이전에 한미 FTA가 비준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면서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국회에서 뜯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에밀졸라의 말을 인용한다.

“만일 당신이 국익 때문에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지 말아야 할 순간도 있다고 주장하신다면 당신은 도대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어떤 교훈을 남길 수 있을까요?”(그리고 그것은 정말 국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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