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속에 빛나는
‘즐거운 인생, 행복한 마음’
김혜원 회원
글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시민기자
“지식인이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뛰어드는 사람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무조건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담쟁이 넝쿨처럼 서로 손을 엉켜 잡고 등 기대며 벽을 넘는 것이다.”
(김혜원의 『딸들의 아리랑』중에서)
유난히 비가 잦았던 올 여름,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 불볕더위가 쏟아진다. 불과 며칠 사이 천지만물은 난사되는 햇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버틴다. 하지만 유독 사람들만이 아우성을 치며 호들갑을 뜰 뿐 초목들은 침묵 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감지하며 또 다른 계절로 나아가는 준비 중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한 순간인 것이 인생사라지만 지금 우리는 불볕더위 못지않게 분노가 펄펄 끓고 있는 화탕지옥에 살고 있다. 상위 2%만 제외하고는. 그래도 뜻이 있는 모두는 소금꽃이 되어 3차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한다. 비록 영도다리에서는 피켓 든 일당 3만 원짜리 ‘어버이 연합’의 패악과, 온갖 공권력을 동원한 훼방이 있을지라도. 고공농성 200일을 넘긴 김진숙 님을 향한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으리라. 희망은 우리가 불러야 오는 것임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평생 화두삼아 살아온 회원을 만나기 위해 성북구 평창동으로 향했다. 이른바 부촌富村으로 알려진 그곳에 회원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여 고개가 갸우뚱했다. 더구나 연로하신 분이라 다소 긴장되었고 궁금증은 배가 되었다. 성함마저도 그 연세에 흔하지 않는 아름다운 이름- 김혜원(76세) 회원이다. 인터뷰 섭외 대상이 되었을 땐 이름만으론 젊은 여자인 줄로 짐작했다.
능소화를 닮고 싶은 76세 신입회원 김혜원 씨
담장 높은 집들이 즐비한 동네. 비탈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지은 주택이라 대문 빗살 사이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문패에는 남편 성함과 함께 김혜원이라는 이름이 친근하게 우리를 맞았다. 문패를 보고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는 게 요즘 어디 흔한 일인가.
정원에는 몇 그루 소나무들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오수를 즐기는 듯했다. 초록이 짙은 뜰 한 모퉁이엔 알록달록 색깔 고운 자잘한 풀꽃들과,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능소화’ 이원규 詩)로 만인의 가슴에 각인된 꽃, 능소화가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꽃에 취해 있는 우리 앞에 꽃 색깔과 꼭 같은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팔순을 눈앞에 둔 할머니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여린 소녀의 분위기였다.
“꽃 참 아름답죠?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씩씩하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보면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요. 떨어질 때도 처음 그 모습 그대로이니, 나도 저렇게 가고 싶다. 그런 소망을 가집니다.”
화사한 꽃송이에 들떠 있었던 마음이 순간 숙연해졌다. 누구나 소망하는 기원이지만 진정성이 담긴 고백임을 실감했다. 거실로 들어서니 검소, 근면 모드를 단박에 읽을 수 있었다. 값진 장식물 하나 없이 흑색 반닫이 고가구에 책장과 가족사진. 올망졸망 장식되어있는 여행지의 흔적들, 한쪽에는 참깨가 펼쳐져 있었다. 아마 장마로 눅눅해진 곡물을 거풍하는 중인 듯싶었다. 여전히 살림을 놓치지 않은 주부의 면모가 엿보였다.
40대 초반부터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인권운동, 여성운동,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셨으니 직함도 여럿이다. 그 중 하나를 꼽는다면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추진 공동위원장이다. 마침 그날이 한겨레신문 사회면에 큼직하게 ‘위안부 박물관 8년 논란 끝에 성미산에 둥지’라는 기사가 실려 더욱 뜻이 깊었다.
목멘 음성으로 그간의 어려움과 모금 운동을 위한 여러 활동과 에피소드까지 얘기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우월주의에 배인 역사관과 주류 언론의 냉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국민 정서의 무관심에 조용히 목청을 돋웠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당한 엄청난 피해에 대해선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주류 언론이, 일본의 지진해일이나 방사능 피해에 앞장 서는 것을 보며 분노했어요. 대한적십자사를 통하여 어마어마한 성금이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펐어요. 우리는 8년 동안 힘겹게 17억을 모금했는데 순식간에 그 많은 돈을 모금하다니….”
그 배신감을 어찌 못 느끼랴마는 현장에서 발로 뛰며 겪었던 그녀만 하랴. 공감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심히 송구스러웠다.
두려움 넘어 소중함 지켜낸 용기 있는 그녀
인터뷰를 앞두고 솔직히 의아했다. 회원 가입도 작년 천안함 사건 때이니, 40여 년 가까이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신입회원이 되다니. 하지만 인터뷰이로 만나기보다는 참스승의 진면목을 보고, 듣고, 거울삼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질문보다는 경청과 감동이 인터뷰의 콘셉트였지만, 회원 자격의 밑그림이 되는 가입 동기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더 이상 활동을 확대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런데 작년에 방송을 통해 천안함 보도를 보면서 어이없더라고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내가 생각해도 어쩜 그렇게 북한이 신출귀몰하게 나타나서 한 방에 우릴 침몰시키고 귀신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다니. 그런 군사력이라면 미국이나 일본이 쩔쩔 맬 텐데 오히려 북한을 왕따 시키고 고약하게 굴잖아요. 그런데 감히 참여연대 젊은 운동가들이 용기있게 이의를 제기했으니 지지할 수밖에 없었죠.”
젊은 운동가를 능가하는 그의 용기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더구나 그의 주변은 온통 보수적인 색깔이 농후한 사람들로 포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기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해요. 내가 살던 구례(전남) 벌판에서 보던 노을은 아름답다 못해 슬픈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노을은 저렇게 아름다운데 사람도 저렇게 아름답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 또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때부터 어렴풋이나마 죽음에 대해 생각했어요. 크리스마스 때 주는 과자나 선물보다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을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죠. 영생이라는 뜻도 잘 모르면서.”
유년의 의문이 평생의 화두가 되어 지금도 죽음에 대한 공부와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도 한다. 장기, 시신기증 운동에서부터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을 거부하는 ‘사전의료지시서’를 법제화하여 의료분쟁을 없애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단순히 저녁노을처럼, 능소화처럼 비장하리만큼 아름다운 최후를 맞고 싶은 소망 때문에 그 일에 힘을 쏟는 것일까.
“30대 때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어요. 아이 넷을 키운다고 고등학교 영어교사 자리도 던지고 가정에만 묻혔으니 유폐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남편은 사회적으로 성장해 가는데 나는 이게 무엇인가, 이러려고 그 어려운 공부를 했던가. 좌절과 심한 열패감에 헤어나지 못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힘든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표정은 가을 햇살이었다. 기도, 명상, 수행, 수련이라는 단어들이 저절로 연상되는 시절로 짐작되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갔다.
“나 자신의 문제에 한없이 매몰돼가다 종교적인 계기로 사형수를 만났죠. 그를 만남으로서 나와 달리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남의 문제에 눈을 뜨게 되니 내 문제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탈출구를 찾은 셈이었죠.”
이로 인해 그의 삶은 사형수들과 함께 가며 사형폐지운동에도 앞장을 서게 되었다.
“그들이 교화되어 새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법에 의해 하루아침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걸 보고는 내 힘의 한계를 느꼈고. 아예 사형 제도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죠. 어쨌든 지금 우리는 10년 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로,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그는 30여 년간 9명의 사형수들과 나눈 사랑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은 칠순 때 출간된 책이다. 그 외의 저서로 『딸들의 아리랑』과, 공저로 『네 여성 신학자 이야기』, 『날마다 일어서는 부부』 등이 있다.
쉬면서, 즐기면서… 느긋한 여유로 살아도 좋다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어떻게 소일하며, 어떤 계획이 있는지 여쭸다.
“아무래도 건강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 되죠. 오랫동안 진지한 일만 하다 보니 이젠 좀 즐겁게 살아야겠다싶어 노래교실도 다니고, 정신 수양과 건강을 위해 요가를 배우고 있어요. 또 삶을 되돌아보는 의미로 자서전과 에세이 한 권을 쓰려고 해요. 그동안 낸 책들은 다큐 형식이라 진솔한 내 감정과 감성이 배인 글을 쓰고 싶어요.”
마침 휴가철이라 적당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자, 잠시 생각에 젖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 그리고 성장』이라는 책이 있어요.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를 보면서 ‘죽는 순간까지 살아 있으라’고 간곡히 호소하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책이 예요. 죽음을 바라보는 그 시점이야말로 극적인 성장을 할 수 있으니 절대로 자포자기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불평과 불만이 난무하는 세상, 어떻게 살 것인지를 제시하는 삶의 방향서인 셈이죠.”
지금 우리 사회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 증세로 예고된 죽음이 아닌 자의에 의한, 때로는 교묘한 사회적 타살이 빈번하다. 모든 사람이 자연사하는 세상이 민주사회라고 누가 말했던가. 시쳇말로 ‘무늬만 민주사회’이다.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청하자,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죠. 그 안에서 즐거운 일을 만들어서 건강도 챙기고 함께 즐기면서 가는 겁니다. 운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내가 다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내가 못 하면 후배 세대가 할 수 있고, 이런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 가지고 설득시키고….”
마무리는 참여연대 이야기로 돌아왔다. 풍부한 사회운동 경험과 연륜으로 바라보는 참여연대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렸다.
“참여연대나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모두 믿고 신뢰하지요. 그런데 막상 회원이 되고 보니 관심의 정도가 달라요. 매달 오는 참여사회 책자는 글씨체가 너무 작아 내가 보기엔 힘들어요. 편집진의 애로사항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지만 독자의 눈을 확 끄는 재미는 없는 것 같아요.
느티나무 강좌는 신선했어요. 또 이번 카페통인에서 열었던 ‘작은음악회’같은 음악 관련 행사를 자주 하면 좋겠어요. 진지해 보이는 시민단체의 새로운 변신이라고 할까요?”
미소 띠며 음악회를 상상하는 표정이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금방이라도 악기를 배우겠다고 나올 의욕마저 엿보였다. 시간과 함께 먹는 달력의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인가, 분위기를 알아차린 듯 재빨리 부연 설명을 했다.
“이제 새로운 것은 배울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그대로 지키면서 지내야죠.”
아름다운 저녁 노을 한 줄기가 순식간 배경화면이 되어버린다. 덩달아 뜰에 핀 능소화도 비상등을 켜고 달려온다. 평생을 외롭고 소외된 자들과 손을 엉켜 잡고 온 그를 위하여.
“나 자신의 문제에 한없이 매몰돼가다 종교적인 계기로 사형수를 만났죠. 그를 만남으로서 나와 달리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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