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1년 06월 2001-06-01   1214

산재보험 · 자보도 들썩, 의료보호재정 적신호

건강보험수가 43.9% 인상 그후

지난해 거듭된 정부의 건강보험 수가인상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수가 인상의 경제적 부담이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지난 3월 21일 건강보험 재정파탄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43.9%의 건강보험 수가인상이 산재·자동차보험 등에도 영향을 끼쳐 약 8조1100억 원의 국민 추가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로는 2000년 기준으로 의료보호 진료비 지급금 1조4100억 원의 43.9%인 6200억 원, 비급여부분(본인부담) 진료비 5조3000억 원의 43.9%인 2조2000억 원, 산재보험 진료비 4100억 원의 43.9%인 1800억 원, 자동차보험 진료비 1조3900억 원의 43.9%인 6100억 원 등을 제시했다. 여기에 의료보험 부담분 4조5000억 원을 합하면 총 8조1100억 원의 국민부담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주장은 명백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우려했던 대로 건강보험 재정 파탄이 보고될 즈음 덩달아 바빠진 곳이 적지 않다. 근로복지공단과 손해보험협회가 그렇다. 산재보험수가와 자동차보험수가는 건강보험수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 그곳 관계자들은 그 동안 잦은 수가인상을 불안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파탄지경에 이른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남의 집에 난 불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자 산재·자동차보험 환자의 진료비 예상치를 뽑아보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해졌던 것이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그리고 내년까지 3년 간 진료비 예상증가액은 모두 6206억 원이나 됐다. 이는 2000년도 자동차보험 진료비 총액 1조4058억 원을 기준으로 지난해 인상률 21.7%에(2694억 원), 1월 7.08%를 포함한 올해 인상률 12.5%(1757억 원), 그리고 내년 예상 인상분인 11.1%(1755억 원)를 적용해 추산한 금액이다.

“8조 규모의 국민추가부담 발생” 경고

현재 우리나라는 같은 병원, 같은 의사가 같은 병명의 진단을 내려도 그 환자가 교통사고 환자냐, 산재 환자냐, 일반 환자냐에 따라 적용되는 수가가 각기 다르다. 통상적으로 건강보험수가를 100으로 봤을 때 산재보험은 150, 자동차보험은 200(3차 대학병원 기준)의 가산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저수가체계라는 사실과 자동차사고 피해의 응급적인 특성 등을 감안해 높은 가산율이 책정돼왔다. 결과적으로 자동차보험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치료비는 일반 의료보험 환자보다 33%가 높다.

따라서 건강보험수가 인상이 거듭되면 거기에 일정한 가산율을 더해 산출되는 자동차보험수가도 연동돼 인상되기에 손해보험업계는 그 동안 계속 긴장상태였다. 손해보험협회 자동차보험부 이득로 팀장은 “지난해 거듭된 건강보험수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보험수가는 조정되지 않고 있어 보험회사마다 적자가 커졌다고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로 인해 결국 보험료 인상이라는 불똥이 일반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에게 튀지 않을까 하는 점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측도 현재 수가인상에 따른 경영 압박이 자동차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관측했다. 그러나 업계는 보험료 인상에 앞서 건설교통부에 자보수가와 의보수가의 일원화를 촉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동양화재 보상지원부 임희선 팀장은 “손해보험사들은 올해 10월 8일부터 적용될 자동차보험 가산율을 건강보험 고시가 대비(전문병원 기준) 현행 100%에서 40%로 낮춰 현실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제까지 연이은 인상으로 올해 건강보험수가가 원가의 90%선으로 현실화된 만큼 그 비율로 낮춰야 한다는 논리다. 영국, 스웨덴, 미국, 독일과 같은 선진 외국에서도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는 건강보험수가와 동일하며, 우리나라와 같이 의보수가보다 33%나 높은 자보수가 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것이 손보협회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올해 4월 안에 마치기로 했던, 자동차보험 가산율을 결정하기 위한 손해보험사와 의료기관 간 재협상은 결론을 못 내리고 유산돼 공은 건설교통부로 넘어간 상태다. 만일 건설교통부가 의료기관의 손을 들어줘 가산율이 현행 수준으로 간다면 보험료 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보험 가입자들에게 돌아갈 상황이다. 국민은 오른 건강보험료에다 그 결과 또다시 오른 자동차보험료까지 내야 하는 것이다.

산재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의보재정 파탄보고 직후인 4월, 근로복지공단도 수가인상에 따른 파급영향을 분석하며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산재보험 중 요양급여의 경우 99년 3586억 원에서 2000년 4251억 원으로 18.5% 늘었다.

수가가 7.08% 또 인상된 올해 1월 이후 수치를 보면, 1월 410억 원, 2월 400억 원의 증가세를 보였다. 1월의 수가인상효과가 실제로 나타날 3월부터는 평균 434억 원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는데(실제로는 3월 446억 원 기록), 이를 바탕으로 산정해 보면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평균 22.2%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복지공단 보험계획부 김경식 차장은 “통상적으로 10%대의 증가율을 보이던 전체 자금지출액이 올 1/4분기에는 20% 가량 늘어났는데 설명되지 않는 8∼9%의 수치에 의보수가 인상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올해 의료보호 체불예상액 4226억 원

전체 산재보험 지출액에서 의보수가의 영향을 받는 요양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25%지만, 이 같은 요양급여비 증가세라면 현행 산재보험료율 16.7%는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부담은 전체 사업주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김 차장은 “산재보험은 사업주를 지원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수가인상이라는 외부요인에 의해 요양급여비가 늘어나 보험료율이 올라간다면 사업주들의 저항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의료보호 재정 부문은 더 심각하다. 99년부터 지난 2년 간 의료보호 체불액이 연평균 2894억 원(국고 기준)에 이를 정도로 재정이 워낙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 올해 예산은 1조1393억 원인데, 체불예상액은 4226억 원이나 된다. 이렇게 의료보호 환자들의 진료비는 체불되기 일쑤라 병원이나 약국에서 이들에 대한 진료나 조제를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보험관리과측은 “의료보호 예산을 매년 29.3%씩 증액하고 있지만, 의료보호 환자들이 대부분 노령·장기·중증환자인데다 수가인상 등으로 매년 많은 액수의 진료비가 체불돼 왔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해 체불액은 일단 올해 4/4분기 예산을 당겨 해소하고, 올해 체불예상분은 추경편성시 우선 반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전남 등 지방자치단체 의료보호 담당자들은 아직까지는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의료보호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정책실 오건호 부장은 “정부가 무리하게 건강보험의 수가인상을 단행한 결과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재보험, 의료보호 예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것이 곧 자동차보험 가입자와 사업자, 의료보호 대상자 등 국민 일반에게 이중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잘못된 수가인상 결정이 국민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이처럼 심각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고지원 확대와 수가인하밖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가 의사들에게 해준 원가보전 약속대로 또다시 수가 인상을 단행한다면 국민적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한혜영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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