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743

진실을 향한 여정에 닻이 오르다

과거사위 출범, 과제와 전망

2005년 12월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법)에 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발족했다. 과거사위 발족은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등과 함께 지난 100년 동안 청산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실규명이 본격화됨을 의미한다.

특히 과거사위는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통해 분단과 전쟁의 위협 속에 놓인 한반도에 왜 항구적인 평화가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 줄 것이며, 해방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발생한 인권유린·학살·의문사 등 국가폭력의 실체를 드러내 우리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권위주의적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준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과거사위 출범을 둘러싼 주변환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기대가 우리들만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더기 과거사법과 시행령에 묶인 과거사위

먼저 과거사법이 안고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문제점 때문이다. 지난 5월, 과거사법이 통과되었을 때 시민사회는 이 법을 누더기로 규정한 바 있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더라도 2가지 독소조항과 관련한 문제는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대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인권유린, 폭력, 학살, 의문사’를 포함시킨 것은 수구보수세력이 과거사위를 정쟁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오히려 민주인사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또 하나는 ‘재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확정판결사건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계승연대 의문사건특위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의문사건을 기초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약 600건의 대상 사건 중에서 확정판결이 이뤄지지 않은 사건은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확정판결 사건을 제외한다면 과거사법은 ‘과거은폐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법 개정에 대해 정부 여당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사법의 심각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과거청산범국민위는 지난 11월 21일부터 국회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데도 정부 여당은 한나라당을 핑계로 적극적인 법개정에 나서지 않고 있다.

과거사위 발족과 함께 통과된 시행령도 문제다. 지난 11월 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과거사위 시행령 대로 한다면 한마디로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 직제 정원안에 따르면 1처 2국 7과에 총 정원 190명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 구조로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사건, 해방 후 국가폭력사건 등 방대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민간인 학살 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820건에 약 100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후 국가에 의한 의문사건수도 대략 600건이다. 그런데 정부안대로 한다면 1,420건을 조사하는 인력이 고작 60명 수준이다.

이외에도 의사정족수 등 위원회 운영 등에 대한 규정이 누락되어 있는 문제, 사건조사를 지휘할 상임위원은 3명인데 조사국은 2국으로 나눈 문제, 수천 건으로 예상되는 접수 사건에 대한 조사개시결정을 90일 내에 해야 하는 문제, 집단학살사건의 경우 묶어서 처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는 문제, 조사를 위원회 사무실에서만 하도록 한 문제, 수천 수만 건에 달하는 조사를 진행하는데 조사실이 단 세 곳 밖에 없는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특히 정부가 위원회 출범 전에 만든 이 시행령은 ‘사무처의 조직과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의 규칙으로 정한다’는 과거사법의 법률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멋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더기법’으로 손에 수갑 채우고, ‘누더기시행령’으로 발목을 묶어버린 꼴이다.

수구보수세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들은 과거사법 등 4대 개혁입법 저지 투쟁을 통해 강력한 투쟁전선을 형성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과 뉴라이트네트워크를 두 축으로 우리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할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청산은 청산 대상자들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므로 수구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더할 나위 없는 기치가 될 수 있다.

과거청산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바탕

과거청산은 미완으로 끝난 6월항쟁의 남겨진 과제이며, 민주화로 나아가기 위한 현재의 과제이다. 87년 6월항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세력으로부터 정치권력을 빼앗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권위주의적인 세력과 타협함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거청산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5·18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없이 보·배상이 선행되었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국가보안법이 엄존한 상황에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이 제정되어 관련자들에게 선별적인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사업, 부산민주공원, 4·3특별법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범주에 속한다. 책임자 처벌과 사죄는 실종되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제도적 청산은 요원한 상태에서 명예회복과 배·보상과 기념사업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해 ‘포괄적 과거청산’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제안되면서 진실규명을 통해 화해로 나아가자는 원칙에 시민사회진영이 합의하고 과거청산범국민위를 발족시켜 입법투쟁에 나섰지만 우리의 준비도 부족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누더기 과거사법과 시행령’이다.

그동안 과거청산운동의 맨 앞줄에는 백발이 다 된 유족과 피해자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민사회가 과거청산운동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과거사법과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과거사위가 순항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공고히 하고 위원회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며 좌초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는 수구보수세력으로부터 과거사위를 지키는 일은 이제 시민사회의 몫이다. 여의도는 아직 농성중이다. 시민사회가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이글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식지 12월호에 실린 글을 고쳐 쓴 것입니다

김성길 과거청산범국민위원회 조직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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