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6년 01월 2006-01-01   1214

원주에 사는 즐거움

강원 원주는 국내에서 처음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지금은 30만여 명 원주시민의 10% 에 이르는 3만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공동체로 성장했다. 최근 생협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협동과 자치의 도시, 원주

원주의 협동조합은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신용협동조합인 밝음신협,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원주생협, 유기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원주한살림, 의료생협인 밝음의원과 밝음한의원, 공동육아협동조합 소꿉마당이 있으며 성공회 나눔의 집과 가톨릭농민회, 삼도생협, 자활후견기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은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잘 갖추고 있다. 조합들이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를 구성하여 힘을 모으고 있으며 소식지 『원주에 사는 즐거움』을 다달이 펴내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네트워크도 활성화되고 있다. 협의회의 이론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지역협동사회연구원에서 활동하는 상지대 최종덕 교수는 최근 시도하고 있는 협동게시판 활동을 소개했다.

“협의회에 속한 각 조합들이 하나의 협동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각 별도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되, 게시판과 자료실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구축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죠. 처음엔 조합원들 사이에 혼란과 갈등이 커질까 우려하기도 했으나 1년 쯤 운영해 본 결과 서로간의 이해를 높이고 협력하는 방식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원주지역의 협동조합들이 어려운 재정여건에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밝음신협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컸다. 여건이 어려운 시민단체와 협동조합들이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자리잡도록 신협이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밝음신협이 들어있는 건물에는 의료생협 등 여러 시민단체와 조합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주의 협동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열쇳말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다. 원주에서 태어난 무위당 선생은 원주에 살면서 농민, 노동자와 함께 했고 그들을 위한 교육과 협동조합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60년대에는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위해 신용협동조합의 설립을 도왔고, 70년대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함께 사회 부패에 맞서 싸웠다. 원주가 반독재 투쟁의 주요 거점이 됐던 것도 무위당과 지학순 주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무위당 선생이 뿌린 씨앗

70년대 초 무위당 선생을 중심으로 시작된 협동조합운동은 산업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지역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당시의 박정희 식 개발모델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현장 밀착형 지역개발모델인 셈이다. 협동조합운동은 생활을 협동적 방식으로 스스로 일궈왔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된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이 30여 년의 세월을 지켜오기란 쉽지만은 않았다. 원주의료생협의 최혁진 정책국장은 협동조합운동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로 신뢰를 꼽는다.

“원주 협동조합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조합원들이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쌓아온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무담보신용대출이 많았던 밝음신협이 97년 외환위기 때 큰 타격을 받고 무너지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일반 은행에 투자한 사람들은 적절한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돈을 회수하지만 밝음신협의 조합원들은 5~6년 간 한 푼도 배당 받지 못하면서도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공동체를 계속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원주 협동운동이 넘어야 할 벽도 높다. 지역 내부에서 정체성을 합의해 가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지역에 기초한 전문 인력과의 연계와 활동가들의 참여도 절실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초기 정신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최 국장은 강조한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이 가려는 방향은 현재 많은 생협 조직들이 규모를 키워 중앙집중화하고 브랜드화하며 기업과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흐름과는 다릅니다. 원주는 풀뿌리 운동으로 지역사회가 주인이 되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협동운동에 의미를 둡니다. 그것이 무위당 선생의 초기정신과도 통하는 것이고요. 무위당 선생이 협동조합운동 활동가들에게 남긴 ‘밑바닥 사람들과 어울려야 오류가 없다. 조직은 망하더라도 사람이 남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원주에서 찾는 희망

현재 자산 규모가 4,000여 억 원에 이르는 원주협동조합은 지역주민들이 30여 년에 걸쳐 손수 일군 시민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최근 원주가 기업도시로 선정되면서 아무 연고도 없는 기업에 50억 원을 지원할 수 있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윤 창출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지만 건강하고 안전한 지역, 살기 좋은 공동체와 생활 터전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역시 원주협동운동이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이다.

협동정신을 기반으로 현실정치를 지역주민에 맞게 민주적으로 바꿔 나가는 노력도 시도되고 있다.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는 2005년 친환경 농업지원 육성을 위한 조례, 학교급식조례, 보육조례의 3대 조례제정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새로운 영역의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상지대에서 대학생협이 출범하였고, 노인생협도 곧 문을 열 예정이다.

협동과 자치의 의미를 살려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원주의 실험은 경쟁과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점점 의미를 잃어 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원주는 대안적 삶을 꿈꾸는 우리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인 것이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