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1월 2014-01-09   1871

[만남]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이현정 회원

참여사회 2014-01월호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이현정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박영록

 

 

이현정 회원. 1991년 생. 91년생이면 몇 살인지 가늠해 본다. 23살이구나, 한창 꽃다울 때구나, 그러다 금세 이게 아니지 싶다. 어느 시대나 젊은 세대를 규정짓는 말들이 있어왔다. 내가 20대일 땐 그게 X세대였다. ‘경제적 풍요에 따른 물질주의를 바탕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웠던 세대’라 정의되는 것에 기분이 나빴던 적은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떨까? 투자 대비 수익이 안 나온다고 적자세대라 부르는 건 그나마 얄팍한 분석에라도 가깝다. ‘재밌고 신나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현실과 시스템에 대한 개혁 의지가 없다’는 날선 비판의 이름은 ‘20대 개새끼론’이다. 20대들 스스로는 자조 섞인 말로 ‘잉여’라 부른다. 더 이상 젊은이들을 새로움과 가능성의 표상으로 보지 않는 시대. 성경에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가 지금 회개해야 한다면 그건 지옥이 가까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보낸 1년

 

“4학년 1학기 마치고 휴학 중이에요. 앰네스티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인데 일주일에 5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5개월 간 일해야 하거든요. 휴학을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어요.”

휴학의 이유가 비극적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교환학생으로 중국에도 다녀왔다구요?

“네. 거기 있을 땐 너무 힘들어서 빨리 오고 싶었는데 지금은 또 가고 싶네요. 제일 고생스러웠던 건, 물이 안 맞아서 자꾸 아팠던 거예요. 장춘에 있는 길림대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 지역이 치안이 불안해서 무섭기도 했어요. 매일 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났으니까.”

 

어쨌거나 중국은 무늬는 사회주의잖아요? 직접 보니 어떻던가요?

“거의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되는 세상이죠. 돈 많으면 대학교 기숙사 방도, 그 방에 까는 인터넷도 더 좋은 걸로 선택할 수 있구요. 한번은 밥통을 사러 갔는데 직원들이 냉장고 사러 온 사람에게만 달라붙어서 2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어요.”

너무 열이 받아서 매장에 있던 밥통 뚜껑을 전자레인지 안에 숨겨 놓고 도망왔다는 얘기에 맥없이 같이 웃다가 문득 중국 젊은이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가.

“저희랑 비슷해요. 다들 취업 때문에 힘들어 하고. 인구가 많아서인지 경쟁은 우리나라보다 더 치열한 것 같아요. 중국에서도 최고의 직업은 공무원이더라고요.”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빈자와 부자의 거리는 멀어져만 가고 이젠 한 나라의 정책조차 자본의 위세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세상이 왔다.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한다며 떠들썩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작 우리가 마주한 천 년의 시작은 전지구적 우경화 현상, 자본패권주의라는 지옥의 얼굴뿐이다. 

“그나마 좋은 점은 중국의 대학에는 교수들이 많다는 거예요. 우린 학과 하나에 많아봐야 6~7명인데 거긴 20명이 넘으니까 학생들 관리나 상담이 잘 이루어져요. 무척 부럽더라구요.”

중국에서 1년을 지내며, 생활이 아닌 생존의 시기를 거치며 그녀가 얻은 것은 ‘이제는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 굳센 기상과 패기만 믿고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함께 뛰고 놀고 웃다

 

굳센 기상과 패기 때문이었을까. 한국에 돌아온 직후 그녀는 멋들어진 직함을 하나 달았다. 청년연대 사무국장? 와, 근사한데요!

“청년연대는 참여연대 인턴 12기들과 청년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이에요. 참여연대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좀 더 의미 있고 직접적인 활동으로 옮겨보자는 게 모임의 취지죠.”

 

계산해봤더니 모임을 준비하던 지난 석 달 동안 2.5일에 한 번씩 만났단다. 모여서 뭐해요?  

“최근에는 국정원 코스프레를 하고 쓰레기를 줍고 다녔어요. ‘댓글 2500만 개 달아서 죄송합니다’라고 앞뒤로 써 붙이고, 세금으로 월급 받고 그런 짓을 했으니 이제 쓰레기나 줍겠다는 퍼포먼스였어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쳐다봐 주고 가져간 전단지도 모두 나눠주었다며 그녀가 얼굴 가득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청년유니온과 연대해서 토익 시험을 독점하고 있는 YBM 한국토익위원회의 불합리한 환불 규정을 바꾸기 위한 활동도 했구요, 12월엔 밀양 희망버스에도 함께 탔어요.”

 

작은 새 한 마리를 그려 넣은 청년연대의 깃발. 그 깃발을 앞세우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도시와 공장에서 쓰는 전기를 편리하게 공급하기 위해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 바로 밀양이었다.

“그날 저녁, 문화제 끝나고 대동놀이를 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하고 손 붙잡고 강강술래하듯 빙빙 돌았는데, 아직도 그 순간이 인상에 깊이 남아요. 진짜로 서로가 힘을 주고받는 기분이었죠. 보통 집회에서는 앞에서 누가 발언을 하면 우리는 그냥 무대 밑에서 박수나 치잖아요. 밀양에서는 달랐어요. 다함께 뛰고 놀고 웃고, 너무 좋았어요.”

함께 뛰고 놀고 웃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한순간 그녀의 눈가가 붉어진다.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한 할머니의 손을 잡았는데 손이 너무 거친 거예요. ‘이렇게 먼 데서 힘들게 와주었는데, 우리가 이겨야 하는데’하며 울먹이시는데…….”

 

불의를 참지 못하고 다혈질에 눈물이 많다던 그녀가 결국 할머니 얘기에서 눈물을 흘린다. 

“부모님 모두 초등학교 교사셔서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정말 정성스럽게 키워주셨죠. 제가 밤에 깨서 화장실에라도 갈라치면 할머니도 늘 같이 일어나서 따라오셨으니까요. 밀양에서 만난 할머니들 얼굴 위로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흐르는 눈물은 쉬 그칠 기세가 아니다. 이럴 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게 녹음기가 아니라 소주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청년연대가 꿈꾸는 미래 중 하나는 경직된 집회 문화를 바꾸는 거예요. 하는 사람이 재밌어야 보는 사람들도 재밌잖아요. 관심이 없다가도 재밌어 보여서 모이고, 그렇게 모여서 놀다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도 배우게 되는, 그런 집회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기존의 집회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는 성찰로부터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참여사회 2014-01월호

 

미래를 그리다

 

“졸업하면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싶어요. 제 성격이 타인의 감정에 예민하고 잘 공감하는 편이라 적성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까이서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전의 사회운동이 희생이나 죄책감 위에서 이루어졌다면 제가 하고 싶은 건 사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이런 꿈을 갖게 된 데에는 참여연대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남자친구의 영향도 있어요. 그가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더 깊은 영향을 미친 건 아무래도 부모님,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였던 듯싶다.  

“아버지는 초창기부터 전교조 활동을 하셨어요. 물론 지금도 조합원이시구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교조 행사에 참석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에 눈뜨게 되었죠.”

 

2011년 한미FTA 반대 집회 때 물대포를 맞았다는 그녀. 살을 에는 날씨에 물대포를 맞고도, 아니 물대포까지 맞았기에 더더욱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는 그 불굴의 정신 또한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근데 아버지가 함께 농사짓고 살자고 계속 꾀어요. 은퇴하고 나면 시골로 내려가서 마을 만들기 운동을 하고 싶다고 그러시면서 저한테 자꾸 닭 잡는 거 배우라고 그러시네요.”

시골에 내려가서 마을학교를 만들어 보고 싶은 꿈도 가슴 한편에 있는 그녀이기에 정말 이참에 닭 잡는 거나 배워볼까 하는 고민도 한단다. 닭 잡으면서 좋아하는 노래 실컷 부르며 사는 삶도 나쁘진 않겠다고 훈수를 두다 미뤄뒀던 무거운 질문 하나를 슬쩍 꺼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대, 같은 20대로서 어떻게 생각해요?

“저의 가장 큰 고민도 사실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거예요. 활동가를 꿈꾸지만 그것조차 경쟁이 치열하고 스펙도 필요하니까 많이 두렵기도 하구요. 물론 요즘 20대들을 보면 욕먹을 부분도 분명히 있는데, 그럼에도 세대별로 자라난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다르다는 걸 좀 인정해주었으면 해요. 스펙에만 목숨을 건다고 하지만 사실 스펙은 생존 투쟁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만 하는 게 돼버렸잖아요.”

 

그럼 20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풀기 위한 방법들은 뭐가 있을까요?

“먼저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해요. 지금 같아선 대학도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그저 스펙의 일부일 뿐이에요. 대학으로만 몰고 가는 획일화된 교육정책에 벗어나 수준 높은 직업훈련학교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학이든 직업학교든 무상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구요. 무엇보다 참여연대가 20대를 위해 해줬으면 하는 일은 임금격차 해소예요.”

버스기사나 대학교수나 비슷한 월급을 받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면 그땐 우리 모두가 반드시 회개해야 할 것이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걸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대잉여의 시대

 

청년연대 창단 준비를 위해 모인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밀양에 찾아가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살아가는 땅을, 언젠가는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만 하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 그곳에 잠시 머물다 떠나오며 그들은 작은 다짐 하나를 했다. 

‘꼭 다시 찾아오겠다.’ 그리고 그때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모임이 만들어진 후 다시 밀양으로 떠나던 날,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들의 목소리.

“그때의 마음으로, 다시 밀양에서, 외부 세력이 아닌 연대하는 이웃으로 함께 하고 오겠습니다.”

 

10명 중 1명만이 취업에 성공하는, 전체 노동자의 50%가 비정규직인 세상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누군가의 외부세력으로만 남을 것인가. 끊임없는 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채 삼키지 못한 찌꺼기. 그것을 잉여라 부른다면 자본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장악한 오늘, 결국 우린 모두 잉여다. 내 몫의 안녕을 챙기는 것조차 버거운 우리가 이웃의 안녕을 챙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 앞에 한없이 나약하고 언제나 비겁해질 수 있는 우리이기에 오히려 더 단단히 서로의 안부를 챙겨야 함을, 나를 닮은 내 이웃의 상처에 좀 더 예민해져야 함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 뒤에 반드시 ‘무엇을 위해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아프게 물어야 함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니체의 입을 빌어 그녀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잉여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전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