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7월 2011-07-06   1666

페어플레이(Fair Play)

 

 페어플레이Fair Play

 

이태호 월간 『참여사회』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1.
작년 이맘 때입니다. 당시 참여연대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안보리에 보낸 것을 두고 정부와 여당,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친북좌파’, ‘비국민’으로 매도하는 색깔공세를 퍼부었었습니다. 보수단체들은 가스통과 시너를 들고 몰려와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서 살벌하고 위협적인 시위를 이어갔지요1).
 
당시 보수단체들은 참여연대 임직원들을 국가보안법 위반과 허위사실 유포죄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작년 12월까지 이어진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응했지만, 검찰은 지금까지도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임직원 외에, 민군합동조사단의 민주당 측 전문위원이었던 신상철 씨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되어 현재 재판 중에 있고, 수십 명의 시민들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검경의 조사를 받았거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지난 6월 9일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김동식 전 해군 제2함대사령관(소장)이 징계처분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김동식 전 사령관은 “천안함 침몰 하루 전까지만 해도 북한 잠수정을 ‘침투가능성이 없는 잠수정’으로 보고, 작전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면서 상부의 지시대로 근무한 것 때문에 징계를 받아서야 되겠냐고 항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할 능력을 지닌 북한의 최신식 연어급 잠수정을 한미 정보당국이 5년간 밀착 추적해왔다는 군의 발표내용은 진위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 같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법률적으로도 ‘검찰 조사 중’이거나 ‘재판 중’입니다. 
      
2.
지난 6월 28일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민주당 추천 후보자인 조용환 변호사에게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믿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조용환 후보자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발표를 신뢰한다고 답하자,  그들은 왜 ‘확신한다’고 답하지는 못하냐며 집요하게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환 변호사는 “그렇게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강요된 답변을 애써 피했고, 그들은 후보자의 ‘국가관’을 문제 삼아 인준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검찰에서 조사 중이거나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 행정부나 국회가 그 사건의 진위와 실체에 대해 단정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최고재판관 후보자가 재판이 진행되는 행정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는다’거나 ‘확신한다’고 고백하지 않아서 인준을 거부당하는 경우는 총통제에서나 발생할만한 일입이다. 3권 분립 제도를 지닌 민주헌정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원들, 그리고 보수언론들은 헌법재판관 후보자에게 엄격한 법률적 태도가 아닌 ‘믿음의 고백’을 강요했습니다. 양식 있고 헌법의 정신을 잘 이해하는 법조인이라면 이런 종류의 매카시즘적 질문에 굴복하여 믿음을 고백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환 변호사는 법조인으로서 신중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취한 결과로 헌법재판관 인준을 거부당하고 말았습니다.

 

3.
조용환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의 권익과 관련된 다수사건의 변론을 맡아 승소로 이끈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입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입법화에 앞장섰고, 설립 초기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국가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헌법재판관 후보로서는 준비된 최적의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전원주택 건축과 관련된 가족의 위장전입이 확인되었고, 참여연대는 투기가 아닌 거주를 위한 것이었다는 후보자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다른 후보자들에게 적용해온 원칙과 선례에 따라 부정적인 인사의견을 발표했습니다. 사법부 최고기관의 재판관을 검증함에 있어 엄격한 기준이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그의 ‘국가관’을 주로 문제 삼았습니다. 과거 조 변호사보다 더 심각한 흠결이 있는 여당/정부 추천 후보자들을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으로 인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여당의원들은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다가올 엄격한 청렴의 기준을 예외 없이 적용할 용기도 의지도 없었던 것입니다. 대신 이성을 질식시키는 마녀사냥과 매카시즘 뒤에 숨어서 후보자를 조롱하고 불순분자로 옭아맨 후 손쉽게 정략적 이득을 챙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하이에나 같이 비열한 무리들!

 

4.
오늘 우리사회에서 페어 플레이는 이른 것일까요?
권력감시의 사명과 참여민주사회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참여연대는 페어플레이를 지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 비열한 반이성과 기득권의 결탁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페어플레이조차도 피투성이가 될 각오로, 어떤 조롱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물귀신이나 독사처럼 독하고 끈질기게 밀고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아프게 깨닫습니다.  

 

 

1) 그 때의 느낌과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상념들을 작년 참여사회 7월호 칼럼 ‘집으로 가는 길’ 에 적어 두었습니다.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후 일부 어르신들과 누리꾼으로부터 “친북 반국가 세력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차라리 북으로 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제 나이 40 중반에 이르도록… 야근을 밥먹듯 하면서 만들려고 한 세상, 이루려고 했던 사회는 과연 어떤 곳인가? ‘너는 누구 편이냐’고 다그쳐서 인간성과 이성을 파괴하지 않는 세상… 공포를 느끼지 않고도 이견과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세상…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비판이 변화의 기초가 되는 참여민주의 세상이 아니던가? 우리가 사는 여기가 부족하나마 민주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https://www.peoplepower21.org/725762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