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9월 2004-09-01   936

“참여연대 때문에 더 사랑하게 됐어요”

경북 경주 한학식·신현미 부부회원


10년만에 찾아온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경주에서 한학식·신현미 회원을 만났다. 그들은 부부다. 초저녁, 사진촬영을 핑계로 이들 부부와 경주시내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천년을 살아 온 고도 신라의 숨결이 한여름 저녁공기를 헤치고 다가왔다. 역시 경주였다. 감은사지 탑은 은은한 조명빛 아래 웅장하게 서 있었고, 대왕암이 누워 있는 감포 바다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동안 달고 온 피로와 무더위를 그제서야 떠나 보낼 수 있었다.

평등부부

8년 전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사고가 났다. 경주에서 각자 직장생활을 하던 한학식 씨의 승용차와 신현미 씨의 자전거가 부딪혔다. 추돌사고였다. 이 사고를 인연으로 진짜 사고를 쳤다. 부부가 된 것이다. 8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에겐 민혜, 민진, 민국 세 아이를 둔 가족이 생겼다. 인연이란 게 정말 있나 보다. 드라마 같다.

참여연대를 만난 건 조금 달랐다. 그들 부부가 참여연대를 접한 건 극적인 드라마보단 자연스런 울림을 지닌 시에 가깝다.

“우연히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들은 참여연대 활동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사람과 의논하니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해 주더군요.”

한학식 씨의 말에 이어 신현미 씨가 한마디 보탠다.

“당시 저는 직접 노동운동을 경험한 상태였고 생산직 노동자인 남편은 남편대로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을 때였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노동운동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운동을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였을 거예요. 참여연대 이야길 듣고 바로 회원 가입할 수 있었던 것도요.”

부부가 같이 회원이 된 뒤 이들 사이엔 대화도 많아졌다.

“책 한 권이 사람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하잖아요. 『참여사회』가 우리 부부에게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어 줘요.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아지니까, 자연히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는 것 같고요.”

참여연대가 그리고 『참여사회』가 부부 사이를 돈독케 했다니 한 것 없이 칭찬 받는 기분이 들어 쑥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두 사람은 별도의 회원으로 참여연대에 가입했다. 신현미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부부는 한 몸이지만 또 서로 다른 인격체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살지만 다른 두 존재가 같이 사는 거죠. 결혼이란 이 사실을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의 그늘 속에 살아야 한다는 식의 사회통념이나 가치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결혼을 결심한 계기도 ‘나는 나로 살고 싶다. 도와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남편이 그러겠다고 흔쾌히 대답했기 때문이죠. 참여연대 회원도 남편 이름과는 별개로 나의 뜻과 의지로 가입하고 싶었습니다.”

시작부터 두 사람이 동시에 참여연대 회원이 되고 싶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남편 한학식 씨가 먼저 가입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신현미 씨도 참여연대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매달 5천원 씩 내는 게 사회를 깨끗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요?” “많이 됩니다.”라는 대답을 들었고, 바로 가입했다.

부부는 집도 재산도 공동명의로 등록한 상태다. 그게 이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평등부부’다.

회원들간 의사소통 방안 고민해야

부부회원의 활동은 한마디로 ‘왕성’ 그 자체다.

“회원이 된 후 뭔가 참여하고 싶었지만 지방에선 통 할게 없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소식지를 통해 참여연대가 ‘한국통신가입비반환운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거라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팩스로 서명용지를 받아 주위 사람들 서명을 받았습니다. 한 200여 명 받았던 것 같아요. 나는 직장과 황성동 일대에서, 집사람은 아파트 단지를 돌며 받았습니다. 취지를 설명하느라 진땀 빼기도 했지만, 조금이나마 할 일을 했다는 사실에 보람이 아주 컸어요.”

먼 곳에서 회비만 내는 게 아니라, 열심히 뛰어 주는 정말 알짜 회원들인 셈이다. 신현미 씨는 참여연대가 앞으로도 탁해져선 안 된다고 말한다. 좀더 순수하고 깨끗한 시민단체로 남아 줬으면 하는 당부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회원 회비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힘겹겠지만, 그래도 국가나 기업이 아닌 회원들만 믿고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역회원들간의 소통을 위해 참여연대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참여연대가 우리 회원들을 연결하는 끈이잖아요. 『참여사회』도 지역회원 인터뷰로 끝나지 말고 그 지역의 회원 현황까지 같이 소개해 준다면, 회원들끼리 연락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역 회원간의 접촉공간을 최대한 넓혀 주는 방안을 더 많이 찾아 주세요. 『참여사회』는 그런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부의 대화통로가 되는 것처럼 참여연대 회원들 간에 서로를 알고 소통할 수 있는 가교가 되었으면 합니다. 회원들 말도 더 많이 담아야겠죠? 책의 내용도 풍부해지고 회원들 의사소통의 통로도 되고 일석이조일 테니까요.”

신현미 씨는 아이 셋을 키운다.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경주문예대학과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했고, 틈틈이 수필과 시를 쓰며 문예동우회 활동을 해 왔다. 자기계발에 쉼 없는 사람이다. 작년부터는 공부방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학식 씨는 일과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다. 퇴근 후에는 경주 시민들과 밤늦도록 족구를 즐기기도 한다. 평범하지만 자기 삶을 즐길 줄 안다. 참 밝은 사람이다.

소박하면서도 당당히 자기계발에 힘쓰는,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바라며 행동할 줄 아는 이들 부부의 모습이 우리 회원들의 모습, 우리 시민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좀 투닥거린다 싶기도 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금새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부부는 자기 생각에 고집이 상당했다. 혹시 둘이 다투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들기도 할 만큼. 하지만 이런 우려는 우려일 뿐이었다. 역시 내공있는 부부였다. 배웅하러 나와 둘이 만 있을 때 살짝 다가와 건넨 신현미 씨의 한마디. “순진하고 솔직한 것이 저이의 장점이에요. 저도 그 점 때문에 저이가 좋고요.”

“아내가 자기주장이 세다”며 은근히 불만스러워 보였던 한학식 씨도 아내 없을 때 나에게만 말했던 걸 기억한다. “아내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뭐 하나는 했을 사람입니다. 교수되는 것이 아내의 꿈인데 대학원 가서 그 바람을 꼭 이룰 수 있도록 해 줄 겁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다섯 시간이 그들 생각으로 즐거웠다. 서로의 좋은 점을 먼저 알아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흐뭇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대들만의 방식으로 영원히 사랑하길.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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