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9월 2016-08-31   375

[여는글] 미래를 말하지만 뒷걸음질 치는 대한민국

 

미래를 말하지만 뒷걸음질 치는 대한민국

 

 

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사법을 감시하고 개혁하는 일에 참여했다.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이라는 이미지가 한결같도록 애써야겠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서초구에 살고 있다.

 

평화통일도 뒷걸음질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북한 주민 여러분!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어떠한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국민을 향한 지시와 훈계도 모자라 북한 주민에게 동참하라는 제안을 던진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읽고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 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도 없이 통일시대 건설에 협조하라는 얘기인데 탈북을 부추기는 것인지, 도대체 어떤 통일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남과 북의 통일을 향한 한 가닥 교류의 장도 대북제재 차원에서 전격 폐쇄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라 어떠한 접촉 시도도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한 신뢰관계 형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면서도, 신뢰 관계를 쌓아가기 위한 어떠한 제안도 없이 북한 당국의 간부와 주민에게 통일이 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구호는 공허하기만 하다.

 

참여사회 2016년 9월호(통권 238호)

ⓒ 청와대 홈페이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민주와 인권, 더 잃어버린 10년
평화통일의 과제도 그렇지만 정치, 경제, 사회 어디를 봐도 나아진 것은 없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뒷걸음질이거나 거북이걸음이다.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도약의 미래’를 강조했지만 시간은 거꾸로 흘러가는 듯하다.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30여 년이 흐르고, 참여민주사회 건설을 목표로 출범한 참여연대가 9월 14일로 22주년이 되지만 민주화와 평화통일은 아직도 미성년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민주참여정부를 향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낙인찍었던 그 낙인을 되돌려주고도 남을 상실의 시간이다. 

안보우선의 시각에서는 민주참여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더 많이 잃어버린 10년’을 매일 실감하며 살고 있다. 여전히 권력은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대통령의 입 만 쳐다보는 정부 부처, 대통령의 사랑을 받으려 애쓰는 여당 국회의원, 여당 의원은 대통령 말에 토 달지 말라는 여당 신임대표 등은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여당 의원만 청와대에 초대해 밥을 먹고, 그것도 마음에 드는 자기편에게는 고급진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야당의원들에게는 국물도 없었다. 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고 왕권시대로 회귀한 것 같다. 정당정치·의회정치는 사라지고 집권 여당의 대정부 견제기능은 상실된 지 오래다. 

 

떼법으로 낙인찍는 대통령
오늘도 소통하지 않는 대통령을 향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많은 시민들이 단식으로, 1인 시위로, 장기농성의 방식으로 호소하고 있다. 꿈쩍하지 않는 대통령과 여권을 향한 호소가 헛된 일임을 알지만 극단의 상황에 처한 자들의 처절함이 묻어난다. 이번 여름, 광화문 광장 한편에서는 어른들의 일에 관심이 있을 리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분수대 물놀이가 한창이고, 그 옆에는 단식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움직여보려는 힘겨운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동조단식이라는 이름으로 광장 바닥에 앉아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시민들을 관찰해보니 어떤 이들은 동조와 공감의 눈빛을 보내고, 일부는 무슨 일이냐는 듯 영문도 모른 채 지나가고, 어떤 이들은 웬 헛고생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바로 불통과 소통, 독존·차단과 공존·공감의 차이였다.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행사하는 국민에게 광복절 경축사에서 ‘떼법’이라는 낙인을 날렸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억눌린 대중의 하소연과 답답한 군중의 함성이 자유롭게 들리는 것이 민주주의이거늘 이를 국가경제를 말아먹는 원흉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백날 목소리를 드높여도 마이동풍馬耳東風, 남의 의견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음이고 소귀에 경 읽기다. “그러다가 경제가 나빠진다”는 멘트만 들려온다. 급기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후퇴, 이것이 민주화 30여 년과 참여연대의 권력 감시 22년이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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