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12월 1999-12-01   991

DJ는 벌거벗은 임금님?

“개그를 광적으로 해보자!” 컬트삼총사가 태동하게 된 이유다. ‘개그콘서트’로 대학가 젊은층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그들은 한국 사회개혁에 대한 견해, 정치발전에 거는 기대, 소시민적 실천 등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특히 그들은 ‘윗물 맑기하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나, 총학생회 문화국장. 우리는 동지? 와, 진짜∼ 반가워요.”

난생 처음 만났으면서도 마치 6·25때 헤어진 누이를 만난 것처럼 컬트삼총사 정성한 씨는 기자를 와락 끌어안으며 ‘뜨거운 동지애’를 전달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그는 참여연대 팸플릿을 건네자마자 즉시 펜을 들어 회원가입서를 작성할 정도로 시민운동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사랑은 야야야’ ‘어설픈 엘비스와 살찐 마돈나’ 등의 노래와 춤, 재담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그룹 컬트삼총사. 그들은 일상적 소재로 꾸민 재미난 이야기, 귀여운 춤과 노래로 배꼽을 쥐게해 콘서트중 임신부가 출산할 뻔했던 헤프닝을 겪으며 인기의 상종가를 올리기도 했다. 어쨌든 개그에 밥말아 먹고 산다는 그들. 늦가을 토요일 밤, 서울랜드 삼천리극장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정찬우, 정성한, 김태균. 세 남자는 ‘일단 한번 개그를 광적으로 해보자’며 95년 의기투합해 컬트삼총사를 태동시켰다. 개그맨 김형곤이 동숭동에서 운영하던 곤이랑소극장을 인수, 컬트소극장을 만들고, 문화·역사·청소년 가출 등 다양한 소재로 관객들에게 웃음보따리를 한아름씩 안겨왔다.

“사실 저희는 방송보다 무대가 좋아요. 방송은 대부분이 녹화방송이기 때문에 연출자의 의도대로 안되면 NG를 연발하게 돼요. 예컨대 정성한 씨가 웃기고 있는데 카메라가 김태균 씨를 잡고 있다, 그럼 NG,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죠. 그런데 한참동안 막 웃기고 있는데 ‘컷!’ 했다가 다시 웃겨봐 하면 맥이 탁 풀리고, 연기가 안 살아요. 저는 시청자들이 좀더 자연스런 개그를 보려면 녹화보다 즉석연기가 가능한 생방송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팀의 맏형 격인 정찬우 씨는 방송과 무대의 차이를 설명하고 방송이 자연스런 개그를 제한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무제한의 이슈로 개그 하는 컬트삼총사는 그동안 방송에서 내용상 문제로 잘린 것도 꽤 된다고 털어놨다.

“95년 <젊음의 다섯마당> 할 때였는데, 그때 PD의 연예인 촌지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던 시기였어요. ‘주목받는 신인’(모두 웃음)으로서 대본도 직접 작성해 다루려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리허설 때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담당PD가 내려와서 ‘야, 나 모가지다’ 그래서 못했어요. 그 뿐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루는 3분짜리 개그 하나 하는데 그때 제일 마지막 멘트가 ‘야! 성수대교다!’ 였거든요. 그 말 한 마디 방송 나갔다가 난리났잖아요. 담당 PD 욕 먹고….”

정성한 씨가 말매듭을 맺자 정찬우 씨가 다시 받았다. “시대는 점점 바뀌어 사람들의 의식은 변하는데 우리 코미디는 70년대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왜 그럴까?”

자조하듯 내뱉는 말 속에 뼈가 있었다. 컬트삼총사의 메인 테마는 혈액형에 따른 연인들의 유형을 분석한 혈액형 개그, 뉴욕에서 직수입했다는 순대 개그,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들을 빠르게 전개해 정신못차리게 하는 애드리브 개그 등이다. 그러나 실제 방송에서는 이런 것들을 보여줄 수 없다. 정해진 틀, 짜여진 멘트로 마치 퍼즐의 한 조각처럼 그들도 딱 들어가 그 속에서 맞아떨어져야 한다. 특히 최근 한국 코미디프로 경향은 촌철살인하는 맛이 없고, 쇼와 오락 혹은 교양을 겸비한 변형된 형태의 프로 속에 하나의 소품처럼 개그를 배치한다. 따라서 그들은 방송과 같은 정해진 틀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형식을 개발, 대학로에 ‘콘서트’ 형식의 개그무대를 독창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최근 대학로에서 겪은 일화 한 토막.

“문화의 날 기념한다고 대통령이 대학로에 온다고 했나봐요. 평소 늦은 밤 마로니에공원은 폭주족, 노숙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거든요. 시민이 앉아 쉴 수 없어요. 그런데 한 이틀전부터 그들대신 경찰이 그곳을 꽉 채운 거 있죠. 그리고 웬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해요. 얼마나 깨끗한지 전과 비교할 수 없었어요. 그걸 보고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음… 역시 대학로는 시민의 휴식공간이야. 진짜? 우리 대통령 벌거벗은 임금님 아니에요?(하하하! 모두 웃음) 대통령은 밤마다 음습한 지역을 순시하면서 민중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정쟁 아닌 의미있는 진짜 ‘국민의 정치’를 하지 않을까요?”

정성한 씨는 이런 측면에서 386세대의 정치진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보여준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기존 정치권에 편입돼 구태를 답습한다면 차라리 사회운동에 힘을 싣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시민사회를 경험하고 돌아온 그는 우리 사회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공공영역의 활동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것 같다고 역설했다.

“뉴욕시민들은 수돗물 값을 거의 안 내요. 향후 100년간 록펠로재단에서 다 내기로 했대요. 그래서 뉴욕 시민들은 거의 공짜로 물을 쓰고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사회 공공영역을 담당할 변변한 재단 하나 있나요? 소위 공익재단이란 게 다 재벌 계열사잖아요. 꼭 미국을 모델삼자는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재단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공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이웃을 챙길 수 있는 공공의 영역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 녹색연합 회원이기도 한 정성한 씨는 솔직히 너무 바빠 ‘남산 걷기대회’에 참석한 것을 제외하고는 ‘회비내는 회원’ 수준이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좀더 시민운동에 관심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참여사회』 인터뷰가 하나의 자극이 된 셈이다. 정성한 씨와 시민사회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둘이 소외돼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대중성있는 연예인으로서 공공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겠냐고. 정찬우 씨의 답변이다.

“전요, 평범한 놈이에요. 되도록 연예인 티 안 내고 살려고 해요. 사회개혁? 생각해본 적 없어요. 다만 소시민으로서 장애인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1년 한두 번, 특집방송 할 때 보면 화가 날 정도거든요. 그래서 작은 실천으로 마석에 있는 조그만 시설에 매월 생활비를 조금씩 보내고 있어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김태균 씨가 말문을 열었다. “전 공연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누구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 그런데 최근 대학로에 극장은 줄고, 술집만 늘어요. 음주문화만 발달하나? 건전한 시민문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활동 있으면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들 모두는 개그전문대학을 만드는 게 꿈이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을 웃겨주면 ‘우습게’ 안다는 것. 따라서 개그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학문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전한다. 그들이 개그맨으로서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진정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정성한 씨가 간략히 정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윗물 맑게 하기 운동’ 아닙니까? 가치체계가 무너지고 있어요. 멀쩡한 사람 짓패고 고문해서 한 인생을 망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요. 부정부패 저지른 전두환, 노태우 등 고위층 인사들이 모두 풀려나요. 이러고도 우리가 무슨 진리와 정의를 후세에게 얘기하겠습니까? 전 지금 시급히 ‘윗물 맑게 하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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