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5월 2009-05-01   868

칼럼_삶 속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삶 속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어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벌써 5월입니다. 다소 구태하고 의례적인 인사말을 써놓고 보니,
지난해 전국 곳곳에서 타올랐던 촛불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오로지 나 자신밖에 몰랐던 시절에는
으레 5월하면 장미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줄곧 ‘광주’가 제 머리를 지배했지요.
촛불이 발화한 지 벌써 1년이 되었군요.


촛불 1년을 맞는 김 선생의 소회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작년 청계광장에서 우연히 촛불시민으로 만났을 때 김 선생은 저보다도 훨씬 흥분된 모습이었지요.
10년이 넘게 시민단체 운동가로 살았는데도 무력한 모습으로 구경꾼마냥 이리저리 쓸려 다녔던 제 모습에 반해,
김 선생은 보다 적극적이지 않았나요. 비록 김 선생이 직접 만들고 꾸미진 않았지만
촛불 모양의 커다란 퍼포먼스형 모자를 썼을 때는 정말 의외였습니다.
하긴 김 선생처럼 자신도 미처 몰랐던 어떤 열정과 용기를 확인한
촛불시민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요? 사실 많은 촛불시민들이
집회란 데를 처음 나왔다고 했지요. 그런데도 정부는 어쩜 그렇게 촛불시민들에게
‘좌빨’딱지를 붙이고 싶어하는 건지.


제가 작년에 어떤 글에서 “조금 더 시간이 흘러 2009년 5월이 되었을 때
촛불시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살수차의 물대포 세례를 감내하던 지난 한여름 밤의 무용담을 안주 삼아 어딘가에서
목청껏 떠들고 있을까요? 아니면 촛불 시즌 2, 시즌 3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자괴감 때문에 고개를 숙인 채
서울광장을 배회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자문에 대해 “아마도 대부분의 촛불시민들은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겠지요.
하지만 촛불 1년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무언가를 접하는 순간,
1년 전 광장에서 시시때때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자극했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겠지요”라고 답했습니다.


2009년 5월 현재시점에서 그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솔직히 광장에서 촛불이 잦아든 어느 때부터는
‘그 많던 촛불시민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거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가 어리석게도 촛불시민을 집회장에서만 찾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물론 여전히 많은 촛불시민들이 용산참사 추모현장에서, 비정규노동자와의 연대 집회장에서,
지역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지만요.
하지만 더 많은 촛불시민들이 평소 활동하던 카페에서, 인연을 맺고 있던 크고 작은 모임에서
촛불을 켜고 끄는 일을 반복하며 “마음속에서 한 번도 꺼트린 적이 없고,
그래서 서로의 마음속에 선연히 밝혀져 있었던 촛불을 다시 한 번 소중하게 확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일상을 바쁘게 꾸려가고 있는 촛불시민들을 가까이에서 뵐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현 정부의 폭정 때문에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의 모습에서 촛불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이 머릿속 기억 너머 삶의 마디마디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김 선생, 거리에서 촛불이 꺼진 후에도 계속해서 촛불시민들이 삶의 인연들을 맺고 있는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내는 무수한 말과 행위들이 혹시 그동안 지식인들이 거창하게 상상하고 있던 민회가 아닐까요?
민회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일로만 연상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상상력은 낙제점입니다.
김 선생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미 민회를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습니까?
굳이 민회의 연원이나 개념을 따질 필요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작년 촛불을 통해서 민회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2008년 촛불이 던진 주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상찬하던
제도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제도와 삶의 그 멀기만 한 거리를 확인했다고 할까요?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제비뽑기처럼 무작위로 선출한 사람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뽑은 선량보다
더 낫겠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오고갔었지요. 물론 저는 오랜 역사에 걸쳐 구성한 선거 제도나
의회 시스템 일체를 폄훼하거나, 제도의 완성을 위한 행보를 늦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출한 대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배신(?)을 당한 경험을 딛고 우리 스스로 대표가 되는 일도
꾸며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본보기 중 하나가 민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민회라고 거창한 무언가로 포장할 필요도 없고, 표방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저 작년 광장에서
촛불시민들이 보여주었던 모습 그대로, 자주적으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창의적으로 즐겁게
공동체의 운명에 대해 공론을 벌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무엇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 선생 앞에서 민회 얘기를 하다 보니 노반의 집 앞에서 도끼 실력을 자랑했다던
어떤 젊은이 얘기가 생각나네요. 무례를 용서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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