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5월 2009-05-01   983

김재명의 평화이야기_중동평화가 한국에 소중한 까닭





중동평화가 한국에 소중한 까닭




글 사진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20세기 세계의 화약고가 발칸이었다고 하면, 21세기 세계의 화약고는 중동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벌어졌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전쟁들이 바로 중동지역에서 벌어져왔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중동의 평화와 안정은 먼 남의 나라 얘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중동에서 터졌다고 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동 불안정은 한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놀라게 마련이다.


중동에서 기침소리 들리면 한국은 감기를 걱정해야  중동지역에 나는 석유가 논의의 핵심이다.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동력(에너지)의 97%가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에너지의 주요부분이 곧 석유다. 해마다 조금씩 그 비율이 바뀌지만, 한국이 1년 동안 쓰는 석유의 80∼85%는 중동에서 들여온다(석유공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월 기준 86.7%). 한국경제는 중동석유 없이 독자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오늘의 한국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중동석유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동에서 기침소리가 들리면 한국은 감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큰 그림으로 보면,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승국으로 소련(지금의 러시아)과 함께 전후 세계질서의 한 축을 이룬 미국이 구축해놓은 중동질서 아래서 중동석유를 수입해왔다. 여기서 ‘미국의 중동질서’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이란(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의 팔레비 왕조) 등 주요 산유국들로부터 미국이 안정적으로 석유를 수입해가는 그런 질서다. 우리 한국은 ‘샘 아저씨’(엉클 샘, 미국)가 모는 ‘중동질서’라는 이름의 마차에 올라타 중동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중동에서 뭔가 큰 일이 터져, 한국으로 떠나야 할 기름 탱크선이 떠날 수 없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 유전지대에서 석유를 퍼 올리기가 어려워진다면 유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이보다 더한 악몽의 시나리오가 있다. 갈수록 땅 밑의 석유자원은 고갈돼가는 상황에서, 이슬람 산유국들이 힘을 합쳐 그들이 미워하는 두 나라(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친이스라엘 일방주의 대외정책을 펴온 ‘미운 거인’ 미국)에 대해 석유 수출금지를 결행한다면,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석유파동이 일어나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는다면…우리 한국경제는 낭떠러지 밑으로 구르는 ‘샘 아저씨’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해도 큰 낭패를 볼지 모른다.

 이미 우리 한국은 그런 낭패를 두 차례 겪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1980년 2차 석유파동이 그러하다. 1차 파동 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그전까지 이어오던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고, 2차 파동 때인 1980년 한국의 경제성장은 -5.7퍼센트로 뒷걸음질 쳤다.

이 두 개의 파동은 중동 산유국들이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그를 일방적으로 돕는 미국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차 파동 당시 이슬람 국가들 눈에 비친 한국은 친미국가(따라서 친이스라엘 국가)이자 이슬람권에 대한 ‘비우호 국가’였고, 그래서 석유 금수 대상국 리스트에 올랐다. 유엔총회에서 표결이 있을 때마다 친이스라엘 투표성향을 보여온 한국이었던 만큼 “우린 억울하다”고 항변하기도 어려웠다.

미국의 중동 프로젝트 들러리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국제유가가 또다시 가파르게 올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노린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을 단시간 안에 제압하지 못해 몇 년째 유가불안을 부채질했다. 고유가가 오로지 이라크 혼란 탓만은 아니지만,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농산물을 파는 김씨 아저씨의 얼굴을 어둡게 만든 주범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슬람권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중동 프로젝트’ 또는 여기에 큰 대(大)자를 붙여 ‘대중동 프로젝트(Great Middle East Project)’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바그다드 현지취재 때 만났던 바그다드대학 국제연구학과장인 하미드 시하브 아흐메드 교수는 ‘중동프로젝트’를 이라크 침공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라크를 발판으로 중근동 지역에 미국의 패권을 다지겠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이 일대에 풍부한 석유자원 획득은 이 프로젝트로 얻는 직접적인 이득의 하나다. 주변 이슬람권과 대치전선을 이뤄온 이스라엘 안보는 이 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라고 했다. 같은 날 만났던 바그다드대 역사학과  하산 알리 사브티 교수는 “석유라는 변수에다 중근동 지역의 군사강국인 이라크를 부담스러워해온 이스라엘, 이라크를 발판으로 한 미국의 패권전략이 더해져 전쟁이 벌어졌다”고 풀이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미군의 침공을 돕는 성격의 한국군 파병을 반길 수 없다”고 못 박았었다.

  그런데도 한국은 자이툰부대를 보내 아랍권 국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Gaza)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를 비난하는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2009년 1월 12일, 정식 명칭은 ‘점령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결의안’)에 한국은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고 기권했다. 미국의 중동프로젝트에 들러리 서는 한국의 모습을 곱게 볼 리가 없다. 언젠가 아랍 산유국들이 “다시 한 번 석유를 무기화하자”고 나서면서 제3의 석유파동이 터진다면, 그 불똥이 한국을 비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중동지배 패권구도에 편승해갈 게 아니라 독자적인 중동외교가 필요해진다. 중동은 그렇게 먼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숨통을 죄는 거리에 있는 가까운 나라다. 중동평화를 기원한다는 것은 지구촌 평화라는 큰 틀에서뿐만 아니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1톤 트럭을 몰고 다니며 농산물을 파는 김 씨 아저씨의 고달픈 삶과도 이어지는 바로 우리의 문제다.



캡션
이슬람권의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는 매우 높다. 2009년 2월 이슬람 혁명 30주년을 맞아 이란 테헤란 거리에서 반미-반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는 청년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감옥 포로학대를 고발하는 예술가들의 바그다드 거리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 석유자원을 노린 미국의 침공 뒤 한국의 자이툰부대 파병은 이슬람 산유국들의 반한감정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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