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5월 2009-05-01   1116

헌법새로읽기_”법에 있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다”




“법에 있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다”


미네르바 무죄 판결로 보는 헌법의 ‘죄형법정주의’


김진 변호사

미네르바는 무죄. 훗날 ‘막걸리 보안법’처럼 ‘어느 옛날의 코믹한 풍경’ 정도로 소개될 일이지만, 좋은 일이라고는 없는 요즈음이다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 사건과 친한 헌법 이슈는 물론 ‘표현의 자유’이겠지만, 오늘은 그것 말고 ‘죄형법정주의’를 새로 읽어볼까 한다.

미네르바 ‘이야기’가 ‘사건’이 되고, 그가 정말 구속되었을 때. 우리는 주로 “도대체 그런 일을 처벌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라고 말했다. 이렇게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면 처벌하면 안 된다 – 우리 헌법은 이 ‘상식’을 ‘죄형법정주의’라고 부른다. 뭐, 틀렸다고 한다면 여기서만 그렇게 바꾸어 불러보자. 우리 헌법에서는 제13조 제1항 전단에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라는 부분과 제12조 제1항 후단에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을 합쳐보면 되시겠다.

이 말의 한자풀이는, 그러니까 사전적으로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법에 있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다”는 다른 얼굴을 가진다. 언뜻 보면 서로 맞지 않을 것 같은 이 말이 한 조문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웠던, 역의 명제, 대우의 명제…따위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정/의/로/운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되지 아니한다(헌법재판소 1991. 7. 8. 선고 91헌가4 결정)”는 멋들어진 표현으로 정리해주신다. “무엇이 처벌될 행위인가를 국민이 예측 가능한 형식으로 정하도록 하여 개인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고 성문의 형벌법규에 의한 실정법질서를 확립하여 국가형벌권의 자의적(恣意的)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는 법치국가 형법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형법정주의는 단순히 법률 규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 지울 수 있도록 구성요건이 명확할 것”을 의미하는 「명확성 원칙」과 “성문의 규정은 엄격히 해석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성문규정이 표현하는 본래의 의미와 다른 내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유추해석 금지」원칙으로 파생된다.

다시 미네르바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이 사건에서도 물론 처벌하는 법률 규정은 있다(대한민국 법원이 그렇게 막장은 아니다).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를 처벌하는『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인터넷이 전기통신에 해당하고, ‘허위의 통신을 한 자’라고만 하고 있을 뿐 통신 내용이 허위인지 통신을 허위로 했는지를 구별하고 있지 않으므로, 인터넷상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을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형사법을 읽을 때에는 헌법에 맞추어 읽을 필요가 있고(「합헌적 해석의 원칙」쯤이 되시겠다), 이렇게 비슷한 조문만 있으면 가져다 대는 것이 과연 상식 – 이 자리에서는 일단 ‘죄형법정주의’라고 부르는 그것 – 에 맞는 것일까. 그러니까 “법에 있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다”는 다른 쪽 얼굴 말이다.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기통신기본법』은 당초 전기통신 ‘설비’와 관한 규제를 하고 있고 그 ‘이용’을 규제하여 “통신내용”을 규제하는 조항은 (이 조항을 제외하고는) 하나도 없다(1961년 12월 30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한『전기통신법』이 1983년 12월 30일 『전기통신기본법』과『전기통신사업법』으로 나뉘면서, 허위 ‘통신’ 자체를 처벌하는 조항은 이 법으로 가고, 통신 ‘내용’을 문제 삼는 ‘불온통신’ 조항은 『사업법』으로 갔다) 그래서 그동안 표현의 자유나 죄형법정주의가 문제된 것은 이 법이 아니라 통신 ‘내용’을 규제했던 전기통신사업법이었고, 2008년 촛불 정국에서 네티즌들을 이 법으로 처벌하면서 나처럼 생전 태어나 이 법을 처음으로 찾아보는 변호사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죽어 있던 법을 깨어나 숨 쉬게 한 바야흐로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비아냥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정답을 적어보자. “이런 법을 가져다가 적용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에 맞는가”.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답안을 커닝하면, 정답은 ‘아니오’이다.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 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옛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통신’ 규정이 위헌이라고 한 헌법재판소 2002. 6. 27. 선고 99헌마480 결정)”되기 때문이고, “전기통신설비를 통하여 이루어진 의사내용에 과장되거나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 의사내용이 그 의사를 전달받은 자에 의하여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기만 하면 곧바로 이 사건 법률규정에 위반되어 형벌의 대상이 된다고 보는 것은, 형벌법규가 국민의 일상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국민의 의사소통을 위축시키고 국민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이 사건 법률규정의 구성요건 해당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해석함이 요구(광우병 시위로 학교가 쉰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학생을 무죄라고 한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9. 19. 선고 2008고단4014 판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미네르바 판결에서 이 법의 위헌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나도 유감이지만(몇몇 신문은 판사가 맞춤법을 잘 모르는 것이 유감인 듯하지만), 나는 이 판결을 쓸 때 판사님의 마음속에도 우리가 오늘 읽은 헌법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어렵게 말하자면 ‘형벌법규의 합헌적 해석’ 정도가 되시겠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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