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06월 2011-06-20   1364

김재명의 평화이야기-“미국이 테러 공포 벗어나려면 반미 저항의 정치적 동기 없애야”


“미국이 테러 공포 벗어나려면,
반미 저항의 정치적 동기 없애야”

 

김재명 <프레시안>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 겸임교수

 

“A국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이지만, B국 사람들에겐 자유전사이다.” 

  앞의 말은 테러리스트를 둘러싼 논쟁에서 늘 나오는 주장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강경파 정치군사조직인 하마스Hamas는 테러조직이지만,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마음 속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억압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독립을 쟁취하려는 자유전사로 새겨져 있다. 이렇듯 어떤 자리에 서있냐에 따라, 똑같은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도 시각(평가)이 180도로 달라진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2001년, 무려 3천 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9·11 테러사건의 기획자 오사마 빈 라덴(1957-2011년)에 대해서도 논란은 크다. 지난 5월 2일 새벽 파키스탄의 은거지에서 미군 특수부대에게 사살돼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빈 라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사람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미국과 서유럽,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빈 라덴을 ‘피에 굶주린 테러리스트 왕초’로 여긴다. 미국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그는 악마나 다름없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이슬람권의 적지 않은 민초들은 그를 ‘반미-반이스라엘-반서구 지하드jihad, 성전의 순교자’로 본다.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30억 달러의 공짜 군사원조를 받아온 이스라엘이 식민지로 다스리는 팔레스타인에서도 빈 라덴의 이미지는 사뭇 긍정적이다. 중동 현지취재 때 들은 빈 라덴 호감도는 짐작했던 것보다 매우 높아 놀랄 정도였다. 빈 라덴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21세기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단절의 벽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빈 라덴의 죽음과 후폭풍

빈 라덴의 죽음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비무장 상태의 빈 라덴을 체포하지 않고 12살 난 막내딸이 보는 앞에서 즉결 처형하듯 사살한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였는가, 미리부터 체포보다는 사살 원칙을 세우고 간 게 아니냐, 미군이 빈 라덴 제거를 위해 진행한 비밀 군사작전이 파키스탄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 아니냐 등등 논란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빈 라덴 즉결처형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논란이 일고 있지만, 빈 라덴이 붙잡혀 법정에 서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처음부터 바라지 않는 구도였다. “우리가 왜 미국을 미워하는가” “미국은 무엇을 잘못 했나”를 법정에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빈 라덴의 소식이 전세계 안방으로 전해진다면, 중동의 반미정서는 흉흉해질 것이고 미국은 이로울 게 없다.

  빈 라덴의 죽음을 계기로 짚고 넘어갈 논쟁적인 사실을 꼽아보자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9·11 테러의 명분과 그 희생에 대해. 테러의 개념을 아주 짧게 정의 내리자면 ‘정치적 동기에 의한 폭력’이다. 따라서 테러의 성격상 온건하게 벌어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다시 말해서 비무장 상태에 있는 거리의 보통 사람들을 테러로 죽이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구촌의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묘하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지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빈 라덴의 투쟁명분이 무엇이든, 9·11 사건 당시 3천 여 명이란 무고한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들의 아픔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사마 빈 라덴이 추구했던 목표에 대해. 빈 라덴의 정치적 목표는 중동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적 지배를 물리치고 ‘이슬람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신정神政국가 건설’이었다. 빈 라덴의 이러한 목표는 2011년 봄 중동 시민혁명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들이 지닌 생각과는 다소 어긋난다. 빈 라덴의 꿈이 ‘이슬람 신앙이 지배하는 나라’라면 아랍 거리의 보통사람들은 ‘독재자가 없는 나라, 부패와 가난이 없는 나라’를 꿈꾼다. 중동 지역의 다수 시민들이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통해 서구적인 자유를 누리는 세속적인 민주국가를 바란다면, 빈 라덴이 마음속에 그리던 정치구도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슬람 신정국가’였다. 지구상에서 그런 나라를 찾는다면, 지금의 이란 또는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이다.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시아파 최고성직자)를 우두머리로 이슬람혁명이 일어났고, 이란 헌법상 시아파 최고성직자는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지닌다. 빈 라덴은 아랍혁명의 불길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번져 친미독재 왕정이 엎어지고 그곳에 이란과 같은 종교가 지배하는 국가를 세우길 바랐지만, 그런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빈 라덴 죽음으로 테러 위험 끝?

셋째, 빈 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이 테러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미 정보당국은 빈 라덴의 은거지에서 압수한 자료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9·11 뒤 빈 라덴이 그 나름의 지도력을 발휘해 대형테러를 꾸며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많은 중동 전문가들은 빈 라덴이 미군의 체포를 피해 몸을 숨기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느라 그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지하드 닷컴’jihad.com의 회장이란 상징적인 직함을 지녔을 뿐이었다. 9·11 테러 뒤 스페인 마드리드, 영국 런던, 인도네시아 발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테러들은 (빈 라덴의 지령에 따른 것보다는 그의 투쟁대의를 따르는) 소규모의 자생적 과격조직들이 저지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빈 라덴 사살 소식에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휘두르며 환호했지만,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라진 것은 자연인 빈 라덴일 뿐이다. 미국의 친 이스라엘 일방주의 정책,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부패한 친미 독재정권들과의 유착, 중동지역의 미국 패권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미군 병력의 주둔 등 근본적인 불만 요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슬람권 반미 저항조직들의 테러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뒤집어 말해 미국의 정치-군사지도자들이 미 중동정책의 두 가지 핵심(석유 이권과 이스라엘 안보) 사항에서 미국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는 한, 미국인들은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빈 라덴이 죽었다 해도, 테러의 정치적 동기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를 상징적인 지도자로 삼은 제2, 제3의 오사마 빈 라덴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테러란 정치적 동기에 따른 폭력이므로, 그 동기를 없애야만 테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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