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8-01   888

[회원마당] 농민들이 괭이를 농사에만 쓰지 않는 이유

1862년 2월 경남 산청군 단성의 농민들은 괭이 끝을 땅 쪽으로 돌리지 않고 나라로 돌렸다. 외척들의 세도정치와 관료들의 부패로 토지세와 군포, 환곡이라는 조선의 세금체계와 사회복지체계가 문란해져서 농민들이 참고 살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성에서 시작된 농민봉기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황해도, 함경도, 경기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조정에서는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문제해결을 약속했지만 결국 입술 발림에 불과했다.

빈 땅에 세금을 매기는 백징(白徵), 없는 땅에 세금을 때리는 허결(虛結), 평소 관리들이 착복한 세금을 백성들에게 떠넘기는 도결(都結), 어린아이를 어른의 나이로 올려 군포를 징수하는 황구첨정(黃口簽丁), 이미 사망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백골징포(白骨徵布), 환곡을 빌려주면서 절반을 떼어먹는 반백(半白), 환곡에 쌀 대신 겨나 쭉정이를 섞어 빌려주는 분석(分石) 같은 온갖 편법과 불법행위로 백성들은 세상살이가 더욱 팍팍하고 힘들어졌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으로 폭발했다.

원론적으로 세금이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유지에 필요한 공동비용에 사용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부담하는 돈을 말한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이 직면하고 있는 질병이나 상해, 사망, 노령 등의 위험에 대해 국가나 사회가 책임을 지는 제도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전정이나 군정 같은 세금제도와 환곡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합쳐서 삼정이라고 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 둘을 따로 떼어 사회보장제도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 실질적인 분배를 제도화하며,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s)인 국민연금, 건강보험, 실업보험, 산재보험의 4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제도인 생활보호제도 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세금과 사회보장제도가 모두 자신의 수입을 강제로 빼앗기는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간다. 최근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문건과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분노는 문건의 구체적 사실여부를 떠나서 국가의 수탈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진실로 국민을 위한다면 예금압류 등 강제로 연금을 걷는 방식이나 연금관리공단의 기금운용방식의 문제, 유리지갑 직장가입자의 피해의식과 지역가입자의 합리적 소득파악 실패, 연금관리공단의 관료적 행태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금이 벌이의 35%를 웃돌면 농민들은 괭이 끝을 땅 쪽으로 돌리지 않고 나라 쪽으로 돌린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상표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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