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8월 2004-08-01   758

[지구촌풍경] “남성과 동등한 권리의 진정한 자유로움의 이슬람을 원한다”

여성존중과 평화사랑의 진정한 이슬람을 기대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종전 선언을 한 지 벌써 1년 3개월이 가까워온다. 하지만 오늘도 이라크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가장 큰 피해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특히 생활 불안과 치안 불안은 여성의 삶을 극단적으로 피폐화시킨다.

“생활과 치안이 불안해지면 가족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소녀들을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소녀들은 결국 아주 어릴 때부터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되고 또한 배우지 못한 탓에 주위의 잘못된 관습이나 통제를 거부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여성을 억압하는 왜곡된 관습 ‘명예살인’

국제 여성을 위한 여성(Women for Women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의 이라크 지부장을 맡고 있는 마날 오마르(Manal Omar)는 그래서 배움을 가장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왜곡된 이슬람 문화가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고민이다. 사실 이라크는 1960년대 70년대만 해도 여성의 권리를 아주 많이 보장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라크 경제봉쇄가 시작되고 생활이 빈곤해지고 치안이 나빠지면서 여성들은 사회에서 격리되기 시작했다. 글자를 읽을 줄을 몰라 코란도 읽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은 “코란에 이렇게 씌어있어”라면서 여성들의 권리를 하나씩 빼앗아갔다.

그러한 이슬람 종교와 관습의 극단적인 왜곡의 한 예가 바로 ‘명예살인’이다. 여성이 혼외 정사를 저질렀거나 그런 혐의가 있을 경우 가족이나 친지, 혹은 지역사회 부족 내에서 그 여성을 죽이는 것. 가족과 사회의 명예를 더럽힌 죄인을 처벌한다 해서 명예살인이라 불리는 이 행위는 이라크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또 전후에 갑자기 생긴 현상도 아니다.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지에서 그리고 이라크에서도 이미 오랫동안 극복되지 못한 문제다. 지난해에만도 파키스탄에서는 공식적으로만 수천 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이렇다할 만한 처벌은 없었다. 그것은 사법체계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왜곡된 이슬람 문화의 또다른 세계였다.

그리고 오늘 이라크에서는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온 다음 자살을 하거나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명예살인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을 돕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그러한 사례를 들춰내거나 이러한 여성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알려졌다가는 그 단체나 개인들까지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이러한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는 단체를 찾아냈다.

피난처를 주선한 이 단체 역시 자신들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밀이라면서 보안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 더군다나 이들 피난처가 알려졌다가는 그곳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신변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피난처를 찾아갈 때도 함께 갔던 통역도 운전사도 단체 사무실에 남겨두고 혼자만 가야 했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이들이 그곳에서 조금씩 자신을 추스르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모나(가명)의 이야기는 우리가 전후 미군정 하에서 벌어지는 왜곡된 이슬람 문화의 폐해를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왜곡된 관습과 미군의 만행에 의해 상처입은 이라크 여성

바그다드에 사는 27살의 모나는 가족의 생계를 돕고자 미군 기지에서 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세탁부와 같은 잡일을 하다가 A라는 사령관이 성실하게 일 잘하는 모나를 예쁘게 봐서 부대 내 카페테리아로 자리를 옮겨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좀더 편한 일자리가 사실은 모나에게 평생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확하게는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잡힌 날이었다. 추수감사절 기간이었던 데다가 후세인이 잡혔다는 소식에 부대는 파티를 벌인다 어쩐다 하면서 온통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날 오후, 모나가 거의 일을 끝마칠 무렵, B가 그녀에게 다가와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피곤한 김에 주스를 받아마신 그녀는 그러나 바로 구토 증세와 함께 온 몸이 조금씩 마비되어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나는 카페테리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여성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모나 외에는 아무도 없던 화장실에 B가 들어와 문을 걸어잠궜다. 모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B의 손길에 정신을 차린 모나는 B가 벌거벗은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충격을 받은 모나는 며칠 동안 정신없이 앓았고, 고민 끝에 자신을 아껴주던 A 사령관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B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고 특별한 조사도, 처벌도 없이 B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려 했다.

모나는 겁이 났다. 한동안 일도 나가지 않고 멍하니 불안한 상태로 집에만 있자 모나의 형제들이 그녀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니냐, 너 혹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당장 우리 손에 죽을 줄 알아라…. 그 위협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강간을 당했다는 것, 더군다나 미군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녀는 당장 형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곳 이라크에서는 그렇게 죽임을 당해도 어느 누구도 말리지도, 형제들을 비난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녀는 어쨌든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죄인이니까.

두려움에 떨던 모나는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집을 도망쳐나왔다. 두 달을 헤매던 그녀는 마침내 이 단체를 찾아냈고 이 단체에서 그녀를 바그다드에서 몰래 데리고 나와 이곳 피난처로 옮겨준 것이었다. 집을 떠난지 3개월, 모나는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울었다. 가족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보고 싶은 그 모순된 감정 때문에 모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들이 자신을 용서해주고 받아 준다 해도 절대 가족에게 돌아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게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지금 그녀는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B를 정식으로 고소하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그녀는 실종된 그녀를 걱정하며 울고 있을 늙은 어머니를 잠시 마음에 묻어두려 한다.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이라크를 원하느냐, 세속적인 서구의, 특히 미국식 민주주의를 따르는 이라크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이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이라크를 원한다고 말할 겁니다. 저 역시 그렇구요. 하지만 그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슬람은 지금 우리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왜곡된 이슬람이 아닙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이슬람을 말하는 겁니다.”

마날 오마르의 바램은 분명 모든 이라크 여성들이 바라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면서도 그 종교가 자신을 억압하고 죽이는 기제로 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을 더럽힌 B가 정식으로 기소되고 처벌을 받고, 여성을 존중해주고 평화를 사랑하는 이슬람 종교가 진정으로 뿌리 내릴 그때쯤 되면 모나 역시 명예살인 위협에 집을 떠나야만 했던 황당했던 시절의 이야기도 쓴 웃음 지으며 돌이켜볼 수 있지 않을까.

강은지 (민족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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