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22-02-15   736

[취약노동자 노동 공약] ② 장애노동자 권리 개선 위한 대선 정책 요구

언제 실업상태에 놓일지 모르는 불안한 고용과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낮은 임금, 사각지대가 넘쳐나는 불완전한 사회안전망,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인 노동관계법 적용 차별.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이주민·여성·청년·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노동자가 놓인 노동현실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취약계층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이 취약노동 문제를 외면하면서 취약노동자를 위한 노동 공약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대선 후보자들에게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공약 마련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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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 제7조’가 지금까지 저지른 만행

[취약노동자 노동 공약②] 장애노동자 권리 개선 위한 대선 정책 요구

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

 

노동 없는 대선’이라는 말이 세간을 떠돈다. 심상정, 이재명 후보가 노동시간 단축, 노동이사제, 일자리보장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백윤, 김재연 두 후보의 노동 공약은 상당히 구체적이나, 이들의 인지도는 유력 후보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는 각각 ‘120시간 노동’, ‘귀족노조 철폐’ 등 자신들의 퇴행적 노동관만 몇 번 공개했을 뿐, 구체적인 노동 공약이 전혀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잇따른 지하철 시위에도 후보들에게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장애인’의 노동 문제가 관심 사안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윤 후보 측은 지난 1월 19일, <장애인도 이동·일자리 장벽이 없는 사회>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일자리 장벽이 없는 사회”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장애인 노동 문제의 핵심 사안들, 특히 의무고용제도나 최저임금적용제외인가제도, 중증장애인일자리 문제 등에 관한 내용이 아예 빠져 있다.

 

윤 후보의 공약에는 ‘4차산업형 인재 육성 및 장애인 고용 기회 확대’라는 명목으로 “현재 2개에 불과한 장애인 디지털훈련센터를 17개 광역시·도에 확대”하며, “민간사업체와의 협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 육성”, “노인요양서비스 제도에 시각장애인 안마사 방문 서비스 도입”의 내용이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러나 훈련센터 및 일자리 몇 개 신설만으로 전체 장애인 63%가 비경제활동인구로 머물러 있는 현실(2020년 말 기준)을 타개할 수 있을까? 심지어 고용률이 19.9%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그간 노동 영역에서 가장 많이 배제되어온 중증장애인들은 이 공약에서 아예 고려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중증장애인들은 신체 특성 및 사회적 여건 상 ‘자본 중심의 생산성’을 요구하는 직업 훈련 자체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재명표 장애인공약’ 역시 불안하다. 공약의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장애인 일자리 확대, 저임금 장애인 노동자의 적정 임금 보장 등이 언급되긴 했지만, 아직은 추상적인 수준이다. 향후 공약이 구체화되더라도, 그간 더불어민주당이 고수해온 장애인 정책들의 면면을 고려해 본다면 사실 큰 기대를 걸기 힘들어 보인다. 민주당은 2020년, 최저임금적용제외폐지 대신 여전히 차별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 별도의 최저임금제도(감액제도)’를 추진한 바 있으며, 이미 한계에 부딪힌 ‘직업재활정책’을 변화시킬 의지 역시 별로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후보들, 의무고용제도 전반과 최저임금적용제외인가제도에 대한 입장 밝혀야

 

▲2021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51주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장애인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며, ‘최저임금적용제외, 자본주의적 생산성, 직업재활·보호’ 등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들이 노동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 의무고용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 월 평균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기업은 상시근로자의 3.1% 이상, 공공기관은 3.6%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못한다면,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작년 기준, 100대 기업 중 66곳, 721개 공공기관 중 292개 기관이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는 고용부담금이 해당 기업 및 기관의 평균 임금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이 되어 있어(고용부담금은 최저임금의 60%에서 최저임금의 100% 수준), 고용 주체들이 의무고용률을 준수할 필요성을 딱히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고용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의무고용률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사업체에서 노동을 하는 장애인 노동자 비율이 전체 장애인 노동자의 20% 남짓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이미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현황도 처참한 수준이다. 장애인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임금 역시 192만2000원으로 전체인구 268만1000원(2020년 기준)보다 매우 낮다. 특히 최저임금법 제7조, 장애인최저임금적용제외 조항 탓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노동자는 9000여 명에 이르고, 이들의 평균임금은 약 37만 원이다. 임금이라 표현하기 민망한 수준의 5~10만원 ‘용돈’만을 받으며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정부 및 양대 정당은 이 심각한 상황을 해결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최저임금법 제7조 폐지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적용제외 노동자의 97%가 노동하는 보호작업장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는데, 민주당, 국민의힘은 모두 이 사안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지난 2014년, UN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보호작업장 폐지를 권고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 UN장애인권리협약 > 비준국의 양대 정당으로서 적잖이 무책임한 태도다.

 

후보들은 장애인 노동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고용부담금 대폭 인상 등 의무고용제도 전반의 개혁’과 ‘최저임금적용제외 폐지 및 임금차별 폐지’, ‘보호작업장 형태를 넘어선 새로운 장애인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이 내용 중 단 하나라도 공약에서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은 263만 장애인 노동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할 뿐이다.

 

‘직업재활’을 넘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

 

▲2021년 6월 16일 강은미의원, 민주노총총연맹,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최저임금적용제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에서 <장애인고용촉진법>(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넘었다. 이 법이 핵심으로 삼는 ‘직업재활 이념’은 현재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용지표들이 80년대보다 조금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장애인을 노동으로부터 배제하는 근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최근 진보적 장애인운동계가 노동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보호, 시혜’에 기반하는 기존 정책을 넘어, 장애인 개인에게 끊임없이 장애 극복을 요구하는 ‘자본 중심 생산성’, ‘직업재활’을 넘어, 본인의 존재를 그대로 존중받으면서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중심의 일자리’를 실험 중이다. 서울,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일자리를 통해 그간 임금노동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중증장애인들이 ‘재활’이나 ‘이윤 창출’을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장애인권리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사 활동을 통해 UN장애인권리협약의 실질화를 위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불평등 심화, 기후위기,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노동 전 영역에서 전 방위적인 산업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지금, 대선 후보들은 기존의 노동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 세계’를 약속해야 한다. 새 패러다임의 정립과 함께,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와 같은 자본 중심 생산성과 무관한, 기존에 안정적으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가치’, ‘공공적 가치’ 창출 일자리를 안정화·제도화하고, 이러한 종류의 일자리를 새로 발굴하여 확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 이 시기, 후보들이 부디 ‘퇴행적인 노동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노동 있는 대선’을 함께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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