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6년 08월 2016-08-01   588

[읽자] 필요한 싸움, 멋지게 화해할 방법을 찾다

 

필요한 싸움,
멋지게 화해할 방법을 찾다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지난해, 정확하게 말하면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나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수가 참여하는 공론장에 올라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기 시작한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해가 지나 또 절반이 흘렀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애초 제기된 문제가 거의 해결되지 못한 데다, 문제에 공감하는 이들과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더 많은 문제가 쏟아지는 형국이다. 이번에는 꼭 바로잡고 넘어가야겠다는 의지와 어쩌면 이번에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가 모여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간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새롭게 밝혀지고 이를 바로잡을 방안이 제시되는 모습이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남성이고, 페미니스트다. 물론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말한 의미의) 나쁜 페미니스트겠지만,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좀 더 나은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일까.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에 참여하는 여성보다 문제를 오해하고 논의를 억누르는 남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디선가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로 남성과 다투는 여성 대다수도 마찬가지 아닐까. (익히 알다시피) 이 문제 제기는 개인을 드러내 모욕을 주거나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어쩌면 그들 역시 구조의 피해자일 수 있고, 그렇다면 함께 그릇된 구조를 깨뜨리고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자는 제안이다. 이제 그들이 놓인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곳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지 궁리해보자.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_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남자답게, 여자답게’를 넘어 ‘인간답게’로 
사회학자 오찬호는 스스로 ‘전향’했다고 고백한다. 아내의 출산 과정에서 제왕절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연분만을 강요했는데, 막상 아내가 겪는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고 의사의 말을 들으니 한 사람의 고통을 모른 척하면서 의사라는 권력에 저항한다고 착각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글로 적었는데, 여성이 분만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남성이 군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언급했다가 (댓글로) 격한 저항을 받았고, 그때부터 한국 남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평범한 한국 남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삶을 살다 페미니스트로 전향한 사회학자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었던 이들이 왜 그러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전향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다.

이야기는 군대에서 시작한다. 한국 남성 대다수가 거치는 과정이고 앞선 논란도 군대를 언급해서 벌어진 일이니,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데 이보다 적절한 곳은 없겠다. 복종, 계급, 폭력 등 남성들도 한때 억울하다 생각했고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을 문제들이 차례로 언급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회 진출의 기회가 줄어들고 기회가 보장하는 시간도 줄어들어,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오랫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가 기업의 인재상”이 되었고, 이를 발판으로 “과거의 ‘군사 문화’는 죽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었다. 여전히 ‘강한 남자’가 요구되는데, 대다수는 ‘강한 남자’가 될 수 없으니 이 좌절을 여성을 무시하며 보상받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강한 남자를 만들려고 하는 세상의 우스꽝스러움”을 폭로하며 이들 역시 사회의 희생양이라 위로한다. 물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는 시민이 아니”듯, 이 위로는 “한국 사회의 이상한 ‘남자다움’을 맹목적으로 강요받았던 누군가가 ‘여자다움’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느껴 ‘인간다움’을 넘어선 행동”을 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참여사회 2016년 8월호(통권 237호)

● 혼자 있고 싶은 남자_말 못 한 상처와 숨겨둔 본심에 관한 심리학
    선안남 지음 / 시공사

 

고립에서 연결로 나아가는 위로, 격려, 용기

사회학을 잇는 두 번째 궁리는 심리학이다. 상담심리사 선안남은 건강하지 못한 남성상으로 고통받는 남성들을 상담하며, 오늘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 밑에 깔린 남성성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고 싶은 남자』는 한국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는 앞선 책과 비슷하되, 구체적 상황에 처한 남성에게 좀 더 따뜻하게 다가서는 느낌이다. 군대 문제부터 살펴보면 “남자들은 때로 맥락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군대 경험을 쏟아내”는데,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자기 안의 방어와 경계로 인해 모든 것을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해야 하는 것, 다녀와야 철드는 곳”이라는 명제에 사로잡혀 상처를 상처라 호소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이니, 진짜 이야기를 꺼내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마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군대 조직의 변주로 이루어지는 사회 조직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남성은 “힘들 때 힘들다고 표현하는 대신 무감각, 무감동, 회피나 중독, 억압의 방식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런 남성이 안쓰러웠는지 “남자들을 ‘너무’ 남자다움이라는 틀에 가두지 말자. 남자이기 전에 하나의 연악한 아이로서, 인간으로서 세심한 돌봄과 공감을 받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둔감하게 길러진 탓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었던 남자들에게 공감 능력이 없다고, 무심하다고 타박하지도 말자”고 위로를 전한다. 동시에 남성 역시 힘의 유혹과 구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쇠락해가는 전투력을 부정하려 아무데서나 전투를 벌이거나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원망이나 분노로 쏟아내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고, “자기 안의 불안과 초조를 은폐하는 수단으로서 분노”를 남용하지 말고,“힘들 때면 힘들다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격려한다. 상대를 고립시키려다 자신마저 고립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서로 연결고리가 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는 없는 걸까. 모두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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