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0년 03월 2010-03-01   1231

최성각의 독서잡설_부끄러움을 모르는 삼성일가(一家)



부끄러움을 모르는 삼성일가一家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년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나는 ‘한겨레’나 ‘프레시안’에서 본 것 같다. 혹은 ‘시사IN’일 수도 있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내 창窓은 대충 그 정도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젊은 날처럼 창밖의 풍경들을 샅샅이 살피지 않는다. 대충 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느 날 잠깐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져서일까. 아니면 너무 오래 세세하게 들여다보느라 지친 것일까? 모르겠다. 누가 어찌 생각하든 간에 한 사람의 글 읽은 자로서 나는 세상살이에 최소한의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중지할 수는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이 지금보다 좀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열망이 습관이 되어버려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열망을 몸에 배게 한 것도 아마 책일 것이다. 그런데도 근래 나는 위험스럽게도, 창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시큰둥하게 대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세상 이야기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나를 슬프게 하거나 답답하게 하거나, 몹시 열을 받게 하는 세상일들로 인해 내 삶을 어둡고 칙칙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잘못하면 벌써 4년째 먹고 있는 혈압약이 소용이 없어질 수도 있다. 좀 더 생각해보니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빤한 유형 때문에 지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형태는 다르지만 똑같이 반복되는 세상사. 나를 결단코 행복하게 하지 않는 소식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내 혈압약의 효험을 최대치로 살릴 것인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조용한 입소문의 베스트셀러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책방에 쪼르르 달려가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 까닭은 아마도, 저자 김용철의 이력과 그가 한 일에 대해서 그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노력한 만큼 세상에 알려져 있기에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삼성에 대해서는 사실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지만, 더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아무리 대한민국 사람이긴 하지만, 왜 나마저 삼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김용철 변호사야말로 거기서 고임금을 받으며 그 해괴한 일가와 사치스럽게 잘 놀다가 어느 날 그들에게 배신을 때리기로 작심한 양반이니까 삼성에 대해 생각해볼 게 참으로 많겠지만, 나는 아니지 않은가. 삼성일가一家가 나를 ‘관리’하지 않는데, 짐승들 여물도 끓여야 하고 시골에 할 일이 태산인 내가 왜 ‘삼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단 말인가. 내 비록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이지만, 제목에 대한 그 정도 수준의 가벼운 반발심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동네의 지하책방에 갔을 때, 책방 입구에 이 책이 가로로 네 권 분량의 길이, 세로로 역시 두세 권 분량의 너비를 차지하고 제법 높이 쌓여 있을 때, 반가웠다. 대개 책방 입구 좌대의 그 위치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나 특권적으로 배치되어 진열된 책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책들이곤 했다. 형형색색의 자기계발서들, 증권, 재테크, 건강책들, 쏟아지는 야리꾸리한 심리학 책들, 아, 그리고 엄청나게 팔렸다는 몰현실적인 한국 소설 등등.

시골에서 서울로 돌아갔을 때에는 어김없이 한번쯤 책방에 들르곤 하는데, 대개 책방에서 나올 때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 늘 장탄식을 하곤 한다.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책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내 장탄식의 이유다. 그러나 『삼성을 생각한다』가 특별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 이런 책은 널리 읽혀야 하겠지!”, 책 내용도 자세히 모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책에 손을 대서 펼쳐보거나 뒤적여보거나, 책방에서 나갈 때 계산할 요량으로 챙겨들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 책의 인기가 사그라들었을 때, 신촌시장 골목에 있는 내 단골 헌책방에서 구해야지”, 그리곤 지나쳤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4 22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특검 수사결과에 따른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경향, 너마저 삼성에 굴복하다니

그랬는데, 그만 나는 이 책을 구입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철학하는 김상봉 교수 때문이었다. 그 분이 2010년 2월 17일 ‘<프레시안>에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한편 올렸는데, <경향신문>에 이 책에 대해 쓴 컬럼을 송고했다가 게재를 거부당했다고 했다. 3주에 한번씩 그 지면에 글을 써오던 터라 이번에도 다른 때처럼 자신의 글이 세상에 공개될 줄로 알았더니만, 신문사에서 말하기를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김 교수가 그 양해를 거절했더니 신문사는 그 지면을 다른 이의 글로 채웠고, 김 교수는 그런 전말과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된 것을 개탄하면서 신문사로부터 게재를 거절당한 글을 올린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나도 이 책을 사보게 되었다. 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고질적인 거부감이 있는데다 소문난 책일수록 곧바로 달려들지 않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건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자칫 그런 내 습성에 충실하다가 이 책을 보고 싶어도 한참 동안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일었고, 경향신문마저 이 책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글을 싣지 못한다면, 지금 비록 책방에서 조용히 잘 팔리고 있지만, 조만간 이 책이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우선 생면부지의 김상봉 교수에 대한 원망 때문에 책상 모서리에 머리통을 찧고 싶었다. 아, 이분은 왜 이런 구역질나는 내용을 나로 하여금 읽게 만드셨단 말인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저자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선 책을 덮는 순간까지 만감이 교차했다. 스스로 배신자가 아니라고, 오히려 삼성이 자신을 처음부터 배신했다고 차분차분 항변하지만, 그는 삼성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짧은 7년 세월 동안 100억 원이나 투자했는데, 배신을 때린 고약한 배신자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일러 배신자라 하는가, 그게 이 글의 목표가 아니긴 하지만, 나는 김용철 변호사를 책을 덮을 때까지 상당히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책을 읽었다.


‘폭로의 책’과 ‘참회의 책’

김용철 변호사,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왜 갑자기 양심선언을 했을까? 그가 처음 사제단을 찾아갔을 때 한 노사제가 말씀하셨듯이 이 사람은 이건희 일가와 경영 임원진의 최측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 속에서 7년이나 호의호식하면서 딸랑딸랑, 삼성일가의 모든 범죄현장 최전선에서 코피 터지도록 봉사했던 친구가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그를 이토록 목숨 걸고 삼성일가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게 만들었을까? 그가 검사 때려치우고 기업에 간 이유도 상당히 아리송하지 않은가? 사람의 정의감이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갑자기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삼성재판을 지켜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양심선언 전까지 그토록 미래세대가 꾸려갈 한국사회를 줄기차게 염려해왔던 사람이었을까? 아니잖는가. 특권층 자제도 아니면서 젊은 날에는 병역을 기피하려다가 지도교수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젊은이었지 않은가. 검사 때려치우던 이유도 부장으로 승진해 부하검사들 술 사주면서 접대하기 싫어서 때려치웠다는데, 납득이 되는가? 깨끗한 기업에 가서 ‘합리적 경영기법’을 배우겠다고? 삼성이 그렇게 더러운 범죄집단인지 대한민국에서 나이 40이 넘도록 몰랐다고? 합리적 경영은 무슨 놈의 합리? 책의 어느 대목엔가 밝혔듯이 “처자식 호강시키려고 갔다”는 말이 오히려 설득력 있지 않은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그는 체제순응형의 사람이고, 법조인으로서는 삼성입사 1호로서 7년 내내 승승장구 엄청난 신뢰를 받아 경영임원으로서 이건희, 이재용 로얄패밀리(나는 이 탈세범들을 언젠가는 호되게 제대로 벌 받아야 할 ‘불쌍한 괴물들’이라 단언하지만)와 이학수, 김인주 등 가장 막강하고 비열한 노예들과 같이 북 치고 장구치고, 희희낙락 놀지 않았던가? ‘지옥에서 보낸 시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7년간 삼성에 있으면서 한 짓들은 삼성이 이 나라를 장기판의 졸로 보고 무슨 게임에서든 이겼기 때문에 정의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온갖 탈법과 비리와 부정의 공범자로서의 적극적 협력이 아니었던가. 특권적 경험과 지식과 인맥, 학맥을 온통 삼성일가의 범죄에 동원하지 않았던가. 밤새워 조사받을 용의가 있다고 특검실 문을 발로 뻥, 차기 전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대성통곡하면서 그를 삼성에 갈 수 있도록 검사로 만들어준 부모님과 사회에, 그리고 그가 그토록 염려하는 미래세대에게 진심으로 좀더 참회해야 할 사람이다. 그리고 “삼성일가를 시대와 역사가 반드시 단죄해야 하듯이 나도 중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독자들이 질릴 정도로 강조해야 할 사람이다. 그게 책을 덮을 때까지 내가 견지하려고 했던 저자에 대한 편견이었다. 나는 그 편견을 지금도 수정하거나 철회하고 싶지 않다. 그가 보통사람으로서 7년간 공범자에게 떨어지는 떡고물로 누린 사치는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지만, 삼성일가와 그 똘마니들의 병적인 사치와는 다른 의미에서 구역질이 나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참회의 양보다는 정의감을 앞세운 폭로가 더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내가 저자처럼 어마어마하게 귀중한 정보를 체험으로 소지한 자로서 책을 펴낸다면 폭로의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의미에서의 참회의 책으로서 펴내려고 했을 것 같다. 어쨌거나 김용철 변호사는 “정의로운 자들만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화두를 이 책을 통해 던지고 있다.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화두, 말이다. 그런데 이 화두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저자가 거기까지 질문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정의로운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이 화두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정의를 말하자면, 그 직전에 통렬한 자성과 참회가 반드시 넘치도록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함량미달의 얼치기 귀족, 삼성일가

유럽의 귀족 콤플렉스가 있는 삼성일가는 돈의 힘으로 이 나라를 자기들 마음먹은 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신념을 치밀하고 악랄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소상하게 알 수 있다. 그들, 인간으로 봐도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이 탈세범들은 자존심 강한 이 나라 검찰을 타락시켰고,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기로 작정한 언론을 손아귀에 넣었고, 대통령마저 업신여기고 대체로 깔봤다. 삼성일가는 무엇보다도 노조도 못 만들게 억압함으로써 삼성의 수십만 명 직원들을 모욕하고 있고, 이 나라 국민들을 지들이 ‘멕여살린다’고 착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건방지기 짝이 없고 덜 떨어진, 귀족이라면 IOC위원회로부터도 경멸당한 함량 미달의 귀족들이다.

왜 내 나라의 검찰을 삼성일가는 이토록 능멸하는가? 삼성일가는 내 비록 <한겨레>를 구독하느라 따로 구독은 않았지만 내심 존중해마지 않았던 <경향신문>까지 이토록 수치스러운 용단(?)을 내리게 하고야 말았는가? 무슨 권리로 삼성일가는 내 세금을 공적자금이라는 형태로 자신들이 사업실패(삼성자동차)를 메꾸는 데 낭비하게 만들었더란 말인가? 왜 배추 한 포기도 키워보지 않은 무능력한 그대들이 존경받아야 할 내 나라 권력층을 이토록 비참하게 타락시키고 무력하게 만든단 말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돈의 힘’을 이토록 과신하는 범법자들을 이렇게 승승장구하도록 놔둬도 되는 것인가? 그래도 이곳에 법이 있고, 상식이 흐르는. ‘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이번에는 ‘비지니스 프랜들리’ 정신에 의해 비록 사면 받았지만, 삼성일가가 언젠가 엄혹하게 단죄 받아야 하는 것은 이 국가공동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잘못 던지면 이건희가 좋아한다는 해발 600미터의 좋은 공기가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흘러넘치는 우리 마당의 눈밭에서 행복하게 놀고 있는 거위 등판에 맞을까봐 참았다. 나는 이 만만찮은 분량의 뜨거운 폭로서를 읽는 동안 구토가 일고, 욕지기가 나오는 장면이 하도 많아서 내 육신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권정생 선생님의 책을 꺼내, 같이 읽곤 했다.

“복순아. 가난할수록 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착하게 살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못 빼앗아 간단다. 못 먹고 못 입어도 우리 꽃 한 송이 참새 한 마리도 끝까지 사랑하자꾸나”(권정생, 『죽을 먹어도』, 아리랑나라, 2005년, 12쪽, ‘길을 밝히는 사람들’에서.)

과연 누가 귀족인가?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로 비자금(특검 발표 4조 5천억 원, 김용철 추정 ; 10조 원)을 조성해 자식에게 장물을 이양하는 게 절체절명의 목적인 삼성일가와 그 하수인들이 귀족인가? 타워팰리스의 팬트하우스에 살지는 않더라도 꽃 한 송이 참새 한 마리도 끝까지 사랑하자고 어린이들에게 권하는 권정생 선생님이 진짜 귀족인가? 불경스러운 이야기지만, 그래, 누가 더 오래도록 존경받을까.

저자 김용철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야 어찌됐든, 일단, 이 책이 지금처럼 소리 소문없이 조용히, 한 백만 권쯤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이 팔릴 때 권정생 선생님의 책도 덩달아 한 이백만 권쯤 팔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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