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한국사회’에 관한 종합세트
2008년 여름 한국에선 무슨 일이?
希望叢書 1『うそくデモを越えて : 韓·社·はどこに行くか』
『촛불집회를 넘어 :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川瀨俊治, 文京洙 編, 東方出版, 2009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이나 학자들과 만날 기회가 비교적 많았던 덕분에, 그들이 한국 사회나 한국 사람들에 느끼는 묘한 감정들, 예를 들어 ‘놀랍다’, ‘신기하다’, ‘무섭다’, 부럽다‘라는 반응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10년 전 쯤 정보공개운동 때문에 만났던 일본의 노변호사가 “한국 젊은 시민운동가들을 수입하고 싶다.”며, 아예 자기가 관여하는 변호사단체의 잡지에 ‘참여연대의 충격’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2000년 낙천·낙선 운동이 끝난 직후, 수없이 많은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했고, 그것의 실체를 알아가려 애썼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참여연대 이태호 시민감시국장(현재 협동사무처장)이 일본 단체의 초청을 받아, 일본 전국을 돌며 ’낙천·낙선운동‘을 교육하기도 했었다. 언론인인 가와세 지川瀨俊治와 재일교포 학자인 문경수文京洙가 함께 펴낸 『촛불집회를 넘어 :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는가』(이하 『촛불집회를 넘어』, 동방출판, 2009)를 읽다 보니, 2008년 촛불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10년 전의 오래된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촛불집회를 넘어』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인물들, 한국시민운동의 지도자들, 각 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영역을 대표하는 한국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직접 분석한 한국 사회의 오늘과 내일이 빼곡히 실려 있다. 그리고 촛불 현장을 3개월 동안 직접 누비며 생생히 기록한 일본 언론인의 글,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민중문예, 인권운동 등에서 실천과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는 재일교포 활동가들의 힘 있는 글들, 87년 이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가히 ‘촛불집회’와 ‘한국사회(운동)’에 관한 종합선물세트라 불러도 족할 정도로 많은 필자와 주제, 얘기들이 담겨 있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니만큼 간략하게나마 책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박원순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다. 참여연대에서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되짚어 가며, 2008년 촛불이 한국 시민운동에 미친 영향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고민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 사회운동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문경수 선생의 깊이 있는 질문들 또한 돋보인다(이 책의 결론에 해당하는 4부에는 문경수 선생 본인의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와 시민운동의 행방」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한국 시민운동이 과연 실업, 격차, 고령화, 수험지옥, 소수자 인권 등 지구화 시대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일본 희망제작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깃카와 준코는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에서 시민사업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으며, 한국의 ‘시위문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꽹과리에서 촛불로’)을 시도한 고정자의 글은, 한국의 사회운동 연구자들에게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하는 글이다.
2장에서는 한국 시민운동의 다양한 양상을 다루고 있다. 환경운동(김달수), 평화운동(정욱식), 북한으로의 연탄나눔운동(원기준), 촛불 당시 동아일보 기사분석을 통해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짚은 글(손석춘)들은 적지 않은 정보를 담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도 있는 2부에서는 촛불집회 현장을 수개월간 뛰어 다니며 발로 쓴 현장 기록, 촛불집회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보도행태 분석이 일본 기자(角南圭祐)와 연구자(森類臣)의 땀의 결실로 씌어졌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박원석, 안진걸 참여연대 활동가의 글과 인터뷰 또한, 뜨거웠던 그 해 여름을 떠올리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3부에는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한국의 노동운동(이춘자), 민영화 문제(손석춘), 비정규 노동(김성희), 여성노동, 성차별(정강자), 다민족, 다문화 공생郭辰雄, 과거청산福留範昭, 문맹자교육운동川瀨俊治, 주한미군문제(이시우), 남북관계(이인철) 등, 한국와 일본 연구자들의 글과 인터뷰들이 가득 담겨 있다. 한국 사회운동 연구자(또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는, 문맹자들에 대한 교육운동을 살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이러한 ‘광범위함’은, 이 책이 갖는 최고의 미덕인 동시에 아쉬움을 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2008년 한국에서 벌어졌던 일의 실체를 파악하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살펴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충분히 담아내기엔, 360페이지는 다소 부족한 분량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전후하여 국내에서 쏟아졌던 수많은 책과 논문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 책의 장점은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한편 한편의 글이 짧은 분량들에도 불구하고, 진지하면서도 치밀하게 서술되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과 얘길 나누다보면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평소에 어떤 습관이 있는지, 내 단점은 뭐며, 장점은 무엇인지. 나를 위로하거나, 칭찬하며 건네는 얘기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적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필자들은 ‘촛불집회’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추적하고,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아 대는 전경들의 모습에서 ‘5공화국의 회귀’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 보수 신문들의 기사를 받아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보도한 아사히신문朝日新聞,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인용하여 한국 언론이 촛불집회를 비난하였다는 부분에선 쓴웃음을 짓게 된다.
“촛불을 넘어 한국 사회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지만, 그 길은 단지 서울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을 통해 결국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듯, 이들 역시 일본 사회에 대한 고뇌와 성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시 일본어로 된 책으로 접하면서, 2008년 여름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친구 덕분에 나 스스로도 잘 모르던 나 자신을 알게 되듯, 이 책은 좋은 친구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