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북리뷰 7_아렌트의 ‘삶의 정치사상’에 대한 참신한 이야기

김비환,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아렌트는 새로운 정치적 삶을 펼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한다. 전환의 시대에 빛을 밝혀주는 귀중한 ‘보배들’이 그녀의 저서 여기저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의 고유성, 이야기하기의 독창성, 사유와 행위의 참신성 등의 문제가 아렌트 정치사상을 이해하는 중심 코드들이다.

『축복과 저주의 정치사상: 20세기와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김비환 교수의 진지한 고민과 이해를 담고 있다. 김교수는 제1장에서 사적 삶과 정치적 삶이란 관점에서 아렌트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고유성을 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필자는 그녀의 정치행위 개념에 대한 기존 해석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시대적 제약을 넘어서려는 진정한 정치철학자의 학문적 열정과 노력을 기술하고 있다.

아렌트의 정치행위 개념에 내재된 개인적 계기와 공동체적 계기 중 어느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편향적 해석이나 곡해에 대한 김교수의 비판은 예리하다. 김교수는 이 점에 주목하여 ‘정치행위와 참여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정치행위’ 개념의 특이성을 다각도로 부각시킨다. 그 일환으로 인간의 조건과 활동적 삶의 관계, 정치행위와 세계의 의미뿐만 아니라 미국혁명 등에서 발현된 정치행위의 역사적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실현 가능한 ‘축복의 정치’를 제시한다. 반면 필자는 정치의 안티테제인 반(反)정치 또는 ‘저주의 정치’를 해부함으로써 저서의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현대사회의 반정치적 양태와 전체주의 등장배경을 독특하게 설명함으로써 아렌트 정치행위론의 역사적ㆍ지적 의의를 소개하였다. 4장에서는 서구의 학문적 전통에 내재된 반정치적 사고를 거부하는 아렌트의 지적 저항을 참신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필자는 ‘정치적인 것’을 상실함에 따라 정치를 수단화하는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존양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정치의 고유성을 부활시키기 위한 용기의 발현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을 위해 ‘참여정치‘가 새로운 정치모델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김교수의 저서는 아렌트다운 정치행위의 중요성을 제안한다. 시민운동의 사상적 근거인 공공영역론을 최초로 마련한 현대 정치철학자에 대한 필자의 진지한 고찰은 시의적절하며 필요하다.

물론 필자는 아쉽게도 저서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언급하는 데 지면을 충분히 할애하고 있지 않다. 첫째, 정치행위의 개인적ㆍ공동체적 계기에 대한 균형감 있는 비판은 바람직하지만 양자를 하나의 틀로 설명하는 후기아렌트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아렌트가 단순히 절충주의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둘째,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비판하는 필자의 일관되고 세심한 분석에 공감하지만 이야기하기 방식에 기초한 특이한 저술,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의 구도에 기초한 전체주의 연구의 특이성을 좀더 자세하게 부각시키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러나 김교수는 ‘제작’모델에 기초한 전통적ㆍ행태주의적 정치행위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채 시민운동의 시대적 의미를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편향된 학문적 분위기도 전환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김비환 교수의 저서는 효율성 논리에 함몰된 우리 사회의 결점들을 극복하는 데 요구되는 통찰들을 담고 있는 역작이다.

홍원표 /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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