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호] 북리뷰 6_‘현실론’과 ‘해방론’의 긴장

이수훈, 『위기와 동아시아 자본주의』

21세기 초의 세계시간을 신자유주의로 표현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금융자본이 산업자본 위에 군림하고 사회적 강자는 자유로운 공기를 누릴지 몰라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감옥이 따로 없는 시대이다. 동아시아의 위기는 바로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동아시아로 밀려오는 시점에서 발발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는 1970년대 이후 ‘경제기적’의 신화를 낳았다. 동아시아의 ‘기적’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낙후성을 통렬하게 비난했던 막스 베버의 동아시아론을 전복하였다.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약탈자본주의로서의 정치적 자본주의, 관료자본주의가 아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모델’은 서구의 학습교재가 되었다. 가히 동아시아론의 르네상스라고 일컬을 만하였다.

그러나 20세기의 끝자락인 1997년 ‘기적’의 신화가 깨졌다. 태국의 바트화가치의 폭락을 계기로 동아시아라는 거대한 함선이 암초에 부딪혔다. 주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물론 동북아의 한국ㆍ대만ㆍ홍콩까지 통화위기의 충격을 받았다. 1998년에 들어와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가 쓰러졌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러한 충격의 파장이 일파만파하는 상황 속에서 동아시아의 경제 리더십을 자처한 일본이 제 역할을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전횡에 대해 일본엔화가 무기력했던 소치였기도 했지만, 이미 90년대 초부터 깊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일본경제의 위기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틈을 놓칠세라 워싱턴 컨센서스측에서는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원인을 정실자본주의에서 찾으면서 동아시아모델의 영미형 지배구조(governance)로의 전환을 주문하고 나섰다. 급기야 한쪽에서 과거 막스 베버의 동아시아 폄하론을 상기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 모델의 낙후성과 영미모델의 선진성을 제기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수훈 교수의 『위기와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영미모델 대안론에 대한 ‘동아시아적’ 대항논리를 세계체제론 시각에서 개발하고 있다. 우선 그의 관심은 홍콩의 주권을 반환받은 해양국 중국에 있다. 그의 시각에서 중국은 세계체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이미 반주변부로 진입한 동아시아의 일원이다. 특히 중국은 주로 일본과 미국에 의존한 가운데 성장한 네 마리 용이지만, 미국과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경제의 주변부를 활용한 일본에 비해 동아시아 맥락(context)에 훨씬 충실하다. 이를테면 한국과 대만의 교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나라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지리적으로 먼 구미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다. 반면 중국은 교역ㆍ자본유입은 모두 동아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에 동아시아라는 세계시장의 하위체제가 결정적 맥락으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수훈 교수는 이러한 해양국 중국의 남진 동향을 경계하면서도 중국이 홍콩반환을 계기로 교류와 소통의 장, 상호이해의 장, 육지와 육지를 잇는 매개체, 육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적대를 씻는 터,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와 여타 세계지역들을 잇는 ‘해방공간’으로서의 세계문명사적 위상을 자리매김하고, ‘해방적 근대’의 길을 열어가는 동아시아의 주역이기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 중국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견제하는 가운데 지배-종속의 지역구조가 아니라 상호 소통적이고 수평적인 지역구조를 창출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통합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주변부적 가치’에 입각한 ‘반주변부적 삶’의 공동체 구축에 동참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때 이교수가 보는 공동체 구축의 걸림돌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의 이름으로 경쟁을 부르짖으면서 차별과 독점을 행사하는, 경사된 현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방론’으로서의 ‘저자(豬鮓)의 논리’가 전개된다. 이교수가 제안하는 ‘저자’는 열려 있기 때문에 소통이 자유롭고, 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정보교환이 빠르고,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독점이 아닌 공정한 경쟁만이 있는 ‘만남’의 공간이다. 특히 ‘저자’는 투명함과 밝음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저자’에는 대규모의 이윤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정보독점이 없다. 특혜ㆍ독점의 온상이 되는 정치구조도 없다.

결국 페르난드 브로델이 ‘독점으로서의 자본주의’와 ‘공정한 경쟁으로서의 시장’을 구분하면서 시장과 공동체의 화해를 시도했듯이, 이교수 역시 공정한 경쟁의 시장기제가 작동하는 사회공동체,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에 그의 최종 관심사를 드러낸다. 이로부터 우리는 시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인정과 그 시장에서 해방의 진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변혁의지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를 고뇌하는 저자(著者)의 지적 편린을 발견하게 된다.

지적 비관주의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위기’를 또 다른 ‘해방’을 향한 ‘기회구조’의 열림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적 낙관주의는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박은홍 /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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