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8-06-11   3873

<통인동窓> ‘CEO 독재’를 넘어 ‘광장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CEO 독재’를 넘어 ‘광장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촛불 연대’의 놀라운 성과, 그러나 그 다음은?


이병천 / 참여사회연구소장,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다시 6월의 광장에서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실용’과 ‘선진화’의 깃발을 내세우고, 국민을 섬기며 모두가 잘사는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면서 출범한 지 어느새 100일이 넘었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의 산과 들은 옅은 연두 빛에서 싱그러운 짙은 녹색 빛으로 새 단장을 했다. 이 녹색 빛을 받아 대한민국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광장의 수많은 촛불도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이명박 호의 앞길은 음울한 짙은 잿빛이다. 이명박 호는 출범하자마자 너무 빨리 길을 잃었다. 누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제 발로 길을 잃은 것이다. 이대로라면, 짙은 안개 속 타이타닉 호처럼 초대형 빙산에 부딪혀 침몰할 위험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뿌연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이명박 호를 보다 못해 학업과 생업에 바쁜 중에도 민주공화국의 시민 주체들이 ‘촛불 등대’를 밝혀 길을 일러 주며 함께 희망 길을 찾아보자고 나섰다. 그런데 MB호는 촛불 등대를 걷어차고, 군화발로 짓밟고, 심지어 방패로 도망치는 아이의 뒤통수를 내리찍는 것이 아닌가. 배은망덕,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리 토건전문 CEO 출신이라 해도 그렇지, 이것이 실용이고 선진화며 국민을 섬기는 방식이란 말인가. 이런 것이 국민 성공시대란 말인가. MB호,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음이 틀림없다.
 
  눈이 너무 멀어 잘 보지 못하는가 싶어 등대지기들은 너도 나도 촛불을 더욱 높이 치켜들고 연대의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광장의 촛불 집회는 이제 거의 ‘촛불 항쟁’ 수준으로 변화되고 있는 중이다. MB호 앞 길 뿌연 잿빛은 지금 당장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고 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아직 갈 길이 먼 그 미래 또한 잿빛을 면치 못할까 두렵다. 5월 29일 국정 최고 책임자라는 자가 출국 중인 상태에서 참으로 비열한 방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를 강행했던 이 정권은 21년 전 전두환 정권이 강행했던 4.13 호헌 조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 ⓒ프레시안

  만약 이 권위주의 시장보수 MB호의 신종 ‘CEO 독재’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제 갈 길을 찾지 못한다면, 불행히도 민주공화국 등대지기에 의해 강제 견인되어 궤도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MB호가 촛불을 걷어차고 마침내 ‘돌진 앞으로’를 강행해 파국을 자초할 것인가, 촛불 등대지기들이 MB호를 떠밀어 잿빛 항로를 수정하게 만들 것인가. 87년 6월 이후 21년을 맞는 오늘의 6월은 새로운 역사의 기로가 될 것인가?
 
  다시 2008년 6월의 광장에서, 21년 전 87년 6월 그 날의 열망을 기억하고 그 날의 희망을 새롭게 배운 시민 등대지기들이 촛불을 들고, 세대의 벽을, 시대의 벽을 허물고 손을 맞잡고 함께 섰다. 신종 무책임 ‘CEO 독재’로부터 버림받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적 주권자로서, 다 죽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똑똑히 새겨 놓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 새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MB 정권의 때 이른 실패는 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었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48.7%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 지지율이 불과 100일 만에 10%대로 급락하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론조사만이 아니라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미국의 AP통신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통치불능’ 단계까지 급락했다고 보도했다. 왜 이렇게 되었나. 보수 세력은 MB 정권의 성립을 단지 5년의 집권 기간을 넘어 거창하게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선진화’의 포부를 밝혔고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내어 놓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진보 개혁 세력 또한 보수 세력의 장기 집권과 ‘욕망의 정치’에 대한 공포감을 숨기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이 MB 정부를 세운 데는 이유가 없지 않았다. 두개의 힘이 MB 정부를 떠받쳤다. 하나는 MB 정부의 핵심 골간으로서 가진 자, 강한 자의 힘이다. 이들은 냉전반공 구체제에 뿌리를 두고 세계화 시대 새롭게 기득권을 재구축하면서 강한 자를 더욱 강하게 가진 자를 더욱 더 갖는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요리하려고 하는 보수적 사회기반이다. 다른 하나는 MB의 경제 살리기 약속에 일말의 기대를 건 서민, 중산층들이다. 이들은 탈세와 투기에 최고 모범을 보인 이명박 후보를 부득이 조건부로 선택했던 불안정한 지지기반이다. 이들에게 이명박 후보가 대기업 CEO와 서울시장으로서 보여준 리더십은 지지의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질적인 이상과 같은 두개의 힘은 참여정부를 붕괴시킨 상반된 저항력이기도 했다. 이는 곧 참여정부, 나아가 97년 이후 ‘중도 자유주의’ 정부 10년의 이중성 의 문제로 직결된다. 가진 자, 강한 자들은 97년 이후 남북화해, 미진한 사회복지, 심지어 절차적 민주주주의의 진전조차 좌파적이라고 본다. 그래서 통째로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는 것이다.
 
  서민, 중산층은 이와 반대다. 이들은 97년 이후 탈냉전적 정상국가로의 길을 진보라고 본다. 그런 위에서 민주와 공공의 부족, 즉 97년 위기와 구조조정이 낳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심화와 공공성 빈곤, 민생고통 때문에 절망하고 지지를 철회했던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항간의 대중적 보수주의 또는 보수장기 집권의 우려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MB정부의 정당성은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것이었고 생각된다.
 
  서민, 중산층이 MB 정권의 구체적 정책 내용까지 동의해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MB정권이 보여 준 강부자, 고소영 내각의 천박한 행태, 그리고 규제 완화/민영화/감세 → 투자 → 성장 → 일자리 창출을 겨냥하는 시장 보수정권의 이른바 ‘신발전체제’는 민생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97년 체제하 대중의 삶의 조건에서 볼 때 처음부터 순탄하게 관철되기는 어렵게 되어 있었다.
 
  노동력, 토지, 금융의 과잉 상품화가 진전되고 사회복지 또한 빈곤할 때 어떤 상황이 초래되겠는가. MB 정권이 ‘폴라니적 모순’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고삐 풀린 잔인한 시장사회의 모순을 감당할 ‘통치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 모순을 발화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며, 준비된 것같이 보였던 CEO 리더십은 나라의 ‘공공의 일(res publica, public affairs)’을 일개 사기업의 비즈니스나 다름없이 사고하고 처리하는 오만, 독선, 사기극, 비열함으로 폭로되었다.
 
  촛불 연대를 위해, 광장의 대한민국을 위해
 
  87년 민주화 이후 21년이 되는 MB정권 시기 촛불의 연대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불이 붙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오늘 광장의 촛불의 연대에서 가장 폭넓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당연히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로부터 건강과 안전, 생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고시를 철회하고 미국과 즉각 재협상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가 이명박 정권 심판으로, 대통령 탄핵과’이명박 OUT’의 구호로까지 확대 발전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기에 절차적 민주주의 후퇴를 거부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외침, 그리고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에 대한 반대 등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촛불의 연대는 기본적으로 MB 정권이 자초한(피할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때 이른 실패에 반응하여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저항 연대’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회가 너무 빨리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난다. 이 저항의 연대는 얼마나 공고하며, 얼마나 더 지속될까. 또 어떻게 질적으로 성장, 전환될 수 있을까. 기적같이 생겨났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과연 이 연대는 무엇을 이뤄낼 것이며, 이명박 정부의 성립으로 한 매듭을 지은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어떤 전환적 사건으로서 자리매김 될까.
 
  지금 이 마당에 그 누가 이에 대한 답을 갖고 있겠는가. 적어도 지금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쪽과 저쪽 모두에게 기적같이 다가온 이 촛불 연대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 성격과 전망에 대해 미리 예단하지 말자. 미래는 열려 있다. 다만 촛불 연대의 더 높은 성숙과 우리 모두를 위한 광장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위해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적어 볼 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노라면,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문제를 결국 재협상이 아니라 한미 쇠고기 수출입업체간 자율규제 수준에서 마무리지을 작정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먹지 말라는 식이다. 양동작전이 눈에 보인다. 한 손으로는 미봉적인 인적 쇄신책 그리고 민생 대책으로 민심을 달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촛불 집회에 대해서는 더 강경 진압책으로 나올 공산이 높다.
 
  이에 대응하여 촛불 연대는 어찌해야 하나. 지금까지 촛불 연대가 적어도 두 가지를 얻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첫째, MB 정권의 신뢰와 권위가 회복하기 아주 어려울 정도로(‘통치 불능’단계까지는 몰라도)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 정권이 구상하는 각종 시장보수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둘째, 진보 개혁 진영이 새로운 활력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단절되어 있던, 2008년 6월의 세대와 87년 6월의 세대가 벽을 허물고 시민적 주체성과 연대성의 광장에서 손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은 ?
 
  내가 생각하건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과 같은 차이 속의 광범한 연대의 물결을 흐트리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다. 대오를 유지해야 한다. 조급은 금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안전 보장의 연대’라는 촛불 연대의 중심축을 흐트려서는 안 된다. 내부 차이를 강조하지 말고, 이슈를 과도하게 높이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폭력 평화의 시민불복종 정신을 철저히 지켜가야 한다. 희생이 없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를 공공성의 연대를 향해 단련시키고 그 축적된 힘으로 권위주의 시장 보수정권과 마주 서야 한다. 우리안의 공공성의 연대는 아직 취약하다. 우리 자신의 경험의 축적 자체가 빈약함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연대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구성되어야 한다.
 
  오늘 광장의 촛불은 어느 시점에서는 꺼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예상하고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오늘의 국면에서 우리는 패배할 수도 있다. 마치 흥겨운 축제와 같은 집회와 저항은 불행히 쓰라린 패배와 희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면적 패배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그랬다. 지금 우리가 내다보고 준비해야 할 것은 그 일시적 패배를 딛고 87년 6월 이후 21년에 다가온 시장보수 ‘CEO 독재’정권의 시기를 역사의 막간으로 치워낼 수 있는 정치적 실력, 세계화 시대 우리 모두를 위한 광장의 대한민국, 공공의 시민국가를 위한 지혜와 전략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과 동시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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