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8-12-18   3462

명령불복종이라고? 헌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난 봄 우리는 광장에서 ‘대한민국 헌법 1조’를 함께 불렀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우리의 목소리는 하나의 커다란 울림이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그 울림을 이어 받아 지난 10, 11월 4회에 걸쳐 <헌법, 광장에 서다>라는 강좌를 진행하였습니다.  최근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용한 교사 7명이 파면ㆍ해임 등 중징계를 받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연 국가의 이러한 징계는 정당한 것일까요? 교사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이는 일부 보수언론의 프레임대로 그들의 소속이 전교조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우리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헌법에 기반해서 이 사건을 찬찬히 살펴보기를 요구합니다. 이 글은 시민의 눈으로 헌법을 다시 읽고자 하는 시도로써, 참여사회연구소 회원인 이환우님이 보내주셨습니다.



명령불복종이라고? 헌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환우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0월에 실시된 초중등학교 ‘일제고사’ 당시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용한 전교조 소속 교사 7명에 대해 직무상의 복종의무와 성실의무 위반을 사유로 파면ㆍ해임이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그 징계수준이 지나치게 과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에 앞서 서울시교육청이 그 입맛에 따라 내세운 징계사유의 타당성부터 가만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직무상 부과된 명령과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타당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교 교육에 있어서 교사가 담당하는 직무의 성격과 내용을 헌법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히 실정법규의 적용 문제가 아니라 교육기본권 보장에 관한 헌법 해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의 참여 주체는 크게 국가 – 교사 – 학생ㆍ학부모 이다. 국가는 헌법이 위임한 문화적 과제를 수행하고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보장할 책임을 지므로 학교 교육의 범주 내에서 일정부분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이러한 국가의 교육권한은 독점적ㆍ일방적으로 행사될 것이 아니다. 국가의 교육권한 행사는 일면 학생ㆍ학부모의 학습ㆍ교육권을 실현하는 수혜적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일방적ㆍ획일적 성격으로 인해 학생ㆍ학부모의 학습선택권을 제약하는 요소를 수반하기 때문에 국가의 교육권한은 교육수요자인 학생ㆍ학부모의 학습ㆍ교육권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학교 교육에 있어서 국가와 학부모는 학생의 학습권 실현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관계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시하고 있다.


“부모는 어떠한 방향으로 자녀의 인격이 형성 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목표를 정하고, 자녀의 개인적 성향ㆍ능력 및 정신적ㆍ신체적 발달상황 등을 고려하여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 교육수단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학교 교육의 범주 내에서 자녀의 교육은 헌법상 부모와 국가에게 공동으로 부과된 과제이므로 부모와 국가의 상호연관적인 협력관계를 필요로 한다.” (2000.4.27. 98헌가16등) 

그렇다면 학교 교육의 실질적 담당자인 교사의 헌법상 지위와 역할, 그 직무의 성격과 내용은 이와 같은 국가와 학생ㆍ학부모의 협력적 관계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교육전문가인 교사는 국가의 포괄적ㆍ일반적 차원의 교육과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학생ㆍ학부모의 학습ㆍ교육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하는 교육주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사는 그가 속해 있는 형식적 신분관계에도 불구하고 국가ㆍ교육당국의 일방적 대리인이 아니라, 국가와 학생ㆍ학부모 양측의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고 이에 봉사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이번 사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가와 학생ㆍ학부모의 협력관계는 때때로 긴장관계에 있을 수 있고, 이러한 경우 국가의 교육권한과 학생ㆍ학부모의 학습ㆍ교육권 중 어느 하나가 우월한 것은 아니므로, 이들 양 당사자 사이에 매개적 위치에 서 있는 교사로서는 자신의 자주적•전문적 판단에 따라 양자의 긴장을 조정하고 충돌하는 이익을 조화해 나가야 한다. 더욱이 국가가 학교교육 전반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에 있어서는 국가의 일방적ㆍ획일적 교육권한의 행사에 대하여 교사가 학생ㆍ학부모에게 그들의 학습ㆍ교육권이 제약될 수 있는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설명ㆍ고지하고 학습선택권 행사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조력하는 것은 헌법이 위임한 교사의 당연한 권한이자 의무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에서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일제고사의 실시에 앞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응시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체험학습참가 등의 학습선택권의 존재를 고지하고 일부 학생과 학부모가 그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신청한 체험학습을 허용한 것은 헌법적 의미에서 정당하다. 그런데도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해 직무상 복종의무ㆍ성실의무 위반을 징계사유로 내세웠다. 이는 교사의 자주적 역할과 권한을 무시한 채 교육당국이 명령하면 교사는 그저 기계적으로 이에 복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식의 단순하고 오만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자유로운 학습선택권을 보장한 것을 명령불복종으로 다룰 수는 없다. 헌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
[기고] 시험을 치르지 않을 헌법적 권리 (한겨레 2008.12.19)
[동영상] 학교가 미쳤다..초등학교에 경찰투입 (민중의 소리 200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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