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9-06-28   3245

[시론] 개헌 논의는 시기상조

지난 9일 민주화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87년체제’ 관련 학술토론회에서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4년 단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역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도 한겨레 기고문에서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비민주적 요소들을 보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헌법이 제정된 이후 22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순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런 상황인식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촛불을 든 많은 국민은 대통령이 헌법위반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지금은 섣불리 헌법 개정 운운할 때가                                              아니다.


대통령 주변의 정치권에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여러 구상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내각개편도 탁상에 올라있다. 그러나 현 정권의 역사관과 현행 헌법이 충돌하고 있다면 내각을 교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6월항쟁의 결과물인 현행 헌법 제1조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직접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국시’임을 분명히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하늘과 같이 받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머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 헌법이 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를 통해 실현하려 했다는 점이다. 현행 헌법은 간접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를 통해 한시적으로 자신의 주권을 선출직 공무원들(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에게 위임하고, ‘법률제정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간접민주주의 제도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의 ‘국시’이자 근간인 ‘직접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편의상’ 채택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직접민주주의’가 ‘간접민주주의’와 충돌을 일으킬 때에는 ‘탄핵’을 통해 이를 바로잡든가, 불가피할 경우 국민에게 저항권이 주어진다는 것이 정치학의 지배적 학설이다.


현재는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가 심하게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행한 사태가 있기 전에 대통령은 국민에게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여 현행 헌법을 성실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다시금 진솔하게 내놓아야만 한다. 그것이 국민의 ‘머슴’다운 행태다.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현행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힐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에 대한 매듭을 짓는 것이 선결과제다. 그러기도 전에 현행 헌법 개정 운운한다는 것은 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헌법위반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22년 전 6월항쟁의 결실로 쟁취한 현행 헌법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를 지켜내는 데 힘을 결집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헌법 개정을 제기하는 것은 6월항쟁 정신의 계승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다.


<주종환|동국대 명예교수·참여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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