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칼럼(ip) 2009-10-05   5863

[칼럼] ‘집시법’ 헌재 결정 이후

   이제 야간에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범법자로 내몰 수 없게 됐다. 지난 9월24일, 헌법재판소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제10조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 과반수가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위헌 판정이 아니라, 길게는 2010년 6월까지 현행 규정이 효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최종 합의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결정을 ‘촛불’의 명예와 시민사회의 생기를 회복하기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한때 ‘대한민국 피플파워’의 상징이었던 촛불의 명예는 그동안 무참하게 짓밟혔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던 몇 달 동안, 모든 여론조사는 국민 다수가 집회 참여자들과 그들의 주장에 큰 공감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정부·여당과 보수단체는 온라인·오프라인상에서 촛불을 들었던 모든 시민들을 ‘거짓과 광기’로 낙인찍었다. 검찰과 경찰은 1년이 넘도록 채증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넷을 검문검색하면서 시민들을 잡아들였다. 수백만 국민이 죄인이라 칭했던 사람들이, 법을 무기 삼아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처럼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현 정권의 통치기술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과거 군사정권들은 고문·납치·사형·정치테러 등 명시적 폭력으로 반대세력의 리더들을 핍박했다. 그 고통이 큰 만큼, 정권의 반인륜성 역시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법치’의 이름으로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고통을 분배하고, 그보다 더 많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유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수많은 죄목이 동원됐다. 허위정보유포죄, 업무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명예훼손죄, 사이버모욕죄, 저작권법저촉죄, 상관모욕죄, 심지어 아동학대죄 등등.


그중에서도 집시법은 국민을 겁박하고 위축시키는 핵심 수단이었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 법적 처벌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민사회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연주, 미네르바, 박원순에 이르는 모든 굵직한 소송 사건들이 그런 위협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서 민주적 시민사회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몇몇 순교자의 영웅적 희생보다 많은 시민들의 작은 용기가 더 절실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헌재의 이번 결정은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이 촛불시민의 민주적 정당성을 공식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야간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지에 범법자가 되었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내가 합헌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결정을 계기로 우리는 현재 계류중인 촛불재판에 대한 법리적 대응의 차원을 넘어, 극도로 위축된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자신감과 생명력을 복원시키려는 노력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긍정적 확신,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있을 때에만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갈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그것을 두려워하는 권력자들은 국민들의 귀에다 ‘너희는 범법자다, 폭도다, 광기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헌재 판정을 계기로 우리가 가꾸고 지켜야 할 것은 단지 처벌받지 않는다는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국민이 이 나라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갖고 있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그리고 처벌과 구속이 있어야만 질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의 모델을 보여주자.


»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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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00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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