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16] 박원순 시장마저 ‘눈 가리고 아웅’ 해선 안 된다

참여사회연구소가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들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박원순 시장마저 ‘눈 가리고 아웅’ 해선 안 된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정치시평]<16> 무기계약직이란 함정을 넘어서야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前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최근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지난 주 노동부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처음으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내놓았고, 그 일주일 전에는 박원순 시장이 2800여 명의 서울시 산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좀 더 거슬러 가면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기초단체장들이 노원구, 성북구, 마포구, 성남시, 광주 광산구 등에서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 용역직의 직접고용 전환의 내용을 담은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이겠다는 시도는 날로 심각해지는 비정규직 차별을 축소하는 돌파구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상시 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고 인정한 공공 비정규대책을 내놓은 것도, 야당 쪽 흐름을 의식한 결과이긴 하지만, 진전이긴 하다. 정부 출범 직후 공공부문 퇴출제를 실시해 계약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삼는 결과를 낳았고, 기간제한 2년을 4년으로 연장하는 비정규직 확대안이 비정규 대책이라 강변하던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번 정부 대책은 2004년과 2006년 참여정부 때 실시한 공공 비정규대책의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비정규 문제의 양상은 달라졌는데 복제품을 내놓은 건 퇴보이다.

한편 박원순 시장은 내년 실태조사를 거쳐 구체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무래도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가 향후 정치에 미치는 전략적 위상 때문일 것이다. 비정규직의 극심한 차별과 과도한 활용이 우리 사회에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고, 참여정부가 도입한 비정규법이 이런 현실을 근원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제도이기에 과연 비정규법을 넘어서는 해법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심정이다.

무기계약직이란 함정을 넘어서

모든 비정규대책은 비정규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정규법의 2년 기간제한 조항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2년 이상 계속 근무한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이다. 문제는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라, 무늬만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정규직의 속성을 갖긴 한데, 임금, 복지, 승진, 호봉 등에서 계약직의 조건은 유지되는 무기계약직은 비정규법과 공공 비정규정책이 함께 빚어낸 피조물이다. 실제로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은 노동조건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도 주기적 계약해지의 불안감에서 벗어난 데 의미를 두지만, 그렇다고 정규직만큼 고용안정을 누리지도 못한다. 승진과 호봉인상이 되지 않아서 오래 근무하면 할수록 기존 정규직과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실제 장기간 고용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은행에선 유독 무기계약자에게만 성과평가를 강화해서 적용하고 있고, 학교에선 학교장 고용이라는 불안정한 신분을 유지시켜 학생 수 감소로 구조조정 요인이 발생하면 해고될 수 있는 단서조항이 작동한다. 임금을 조금 더 올리고 복지제도 적용을 확대하는 정도의 보완대책은 큰 차별을 용인하는 작은 대가에 불과하다. 관련 부처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정규직화’라는 애매한 처방으로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근원적으로 해결된 건 없다. 겉으로는 공무원 수 줄이기라는 대중영합 정책을 쓰면서 늘어나는 행정수요를 값싼 인력의 확대로 메우는 방식의 공공 인사관리제도 전반의 개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현재 실시되고 있는 무기계약직 전환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도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했지만, 2년 이상 상시근무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는 비정규법의 한계 안에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시업무인지 여부를 2년 간 고용지속의 결과로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기간제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선 그 기간을 1년으로 줄이거나 객관적으로 상시, 지속적인 일자리를 구분하는 사유제한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무기계약직에서도 지속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중앙부처의 총액인건비제나 교부금과의 연동문제 등 단위 지자체가 해결 불가능한 사안이 제약요인이 되긴 하지만, 차별해소에 정책 우선순위를 부여하면서 법, 제도, 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독자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온전한 정규직 전환이 곧 공무원화를 의미하는 행정부처의 경우 비정규법과 지방공무원법의 제약을 넘어설 수 없기에 무기계약직 전환 방식을 활용하되 독자적인 임금승진체계를 병렬적으로 설계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산하기관의 경우, 행정기관의 경우보다 더 창의적이고 전향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간접고용이란 암초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 문제에서 더욱 더 심각한 건 기간제는 줄어들고 간접고용인 파견직과 용역직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비정규법이 논란이 되기 시작한 2004년부터 노동시장의 도도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직접고용 회피현상 즉,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등으로 전환시켜 사용자 책임성을 벗어나는 모습이 공공부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직접고용 계약직 규제 중심의 비정규법의 영향과 함께 참여정부 때부터 공공부문에서 실시했던 총액인건비제와 경영평가제가 눈에 뵈는 인건비 절감책에 치중하게 만들면서, 직접고용 ‘인건비’를 간접고용 ‘사업비’로 바꾸는 편법만을 조장한 결과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파견직과 용역직의 비중은 2006년 20.8%에서 2011년 29.3%로 크게 증가했다. 간접고용은 고용불안도, 차별도 더 심각하게 겪는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호출, 시간제, 파견, 용역 등 열악한 노동자층이 증가하고 차별도 확대되고 있어, 비정규직 내 계층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공공행정 조직은 ’21세기 신분제’의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반직 공무원 밑에 동일임금이지만 승진과 직책 보임에서 현격한 차별을 받는 기능직 공무원이 있고, 그 밑에 무기계약직과 계약직이 있고, 그 바깥으로 파견, 용역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있다. 미래세대가 ‘모든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교훈을 얻어야 할 학교에서 자행제형 ‘신분제형 차별과 고용 분단의 실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공공 비정규대책이 세 차례나 시행되었지만, 온전한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으로 일부의 처지가 조금 개선되는 한편에서 더 열악한 간접고용 노동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약간의 개선과 동시에 더 큰 차별의 확산이 바로 10여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결과이다. 민주당이 집권한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민간위탁 간접고용으로 전환된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재전환하는 대책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한편으로 민간위탁을 회수함으로써 오히려 예산까지 절감된다니 이런 정책을 다른 곳에선 왜 하지 않고 있는지, 또 왜 과거엔 민간위탁을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2000년 이후 우리 사회는 미국식 아웃소싱 추세를 무조건 답습하면서, 컨설팅 자본의 돈벌이감이 사기업에서 병원, 학교, 공공부문으로 확산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민간위탁을 회수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대책은 아웃소싱 신화의 허구성을 드러내주면서 직접고용 규제 중심의 비정규법이 간접고용의 차별해소에 무력한 한계를 넘어설 단초를 제공해 준다.

또한 현업, 기능 업무는 정규직(공무원)으로 채용해서도 안 되고, 계약직으로 채용할 필요도 없는 제3, 제4의 신분을 부여해야 한다는 직무의 신분 차별성 발상이 간접고용 확산에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근본적 원인이다. ‘펜을 잡으면 정규직, 빗자루나 망치를 잡으면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파견용역직’이라는 말은 행정안전부의 인사관리 지침에서도 드러나는 공공부문 직무구분의 엄연한 기준이다. 직무차별에 대한 근본적 발상 전환이야말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중고령자의 생활불안정 문제 등 한국의 고용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발표한 2800여 명에는 간접고용 노동자가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공공부문 고용구조의 미래상을 마련한다는 적극적 자세로 간접고용을 비정규 대책의 초점으로 삼고, 현업ㆍ기능 업무에 대한 차별적 발상을 벗어나 공공부문 고용창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지침과 어긋나는 지점을 오히려 능동적으로 표출하고 대안의 성격을 부각시킬 필요도 있다. 실행안에선 이미 일부 기초단체에서 실행하고 있는 민간위탁의 직접고용 전환보다 더 앞서는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 믿는다. 적어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비정규대책, 무기계약직 몇 명 전환시키고 더 열악한 간접고용 확산에는 눈 감는 정책 수준은 분명히 넘어서기를 바란다.

역대 공공 비정규대책에서 간접고용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적극적인 개선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조사대상 기관의 비협조나 간접고용에 대한 낮은 인식도가 큰 걸림돌이었다. 서울시는 실태조사에서부터 산하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다단계의 하청, 도급, 민간위탁, 용역으로 불리는 모든 외주 사업을 검토하는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의적인 ‘핵심업무-주변업무’로 구분하여 고용형태를 달리하는 기준을 ‘상시업무-일시, 임시업무’라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확실히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새로운 기준과 방향을 명확하게 할 때 모든 간접고용 노동자를 포함하여 공영화할 사업의 대상을 확장해 나갈 수 있고, 직접고용 전환 후 고용방식과 소속 조직을 설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근 비정규법을 만든 당사자 중의 하나인 민주당은 비정규단체, 민주노총, 통합 민주노동당 시절의 비정규 해법을 대부분 수용하는 비정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비정규법의 한계를 전면 인정하고 있지만, 핵심 사안인 사유제한 문제엔 구체성이 없으며 간접고용 확산 현상에 대한 문제인식도 약하다. 직접고용 중심 해법을 구사할 때 나타날 풍선효과인 간접고용 확산에 대한 고려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일반 해법 중심의 안이한 발상을 하고 있어, 과연 정책 실행의 의지가 유지될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는 비정규법과 이명박 정부 정책을 넘어서는 대책을 구체화하고 실행함으로써 향후 비정규 관련 법제도와 정책의 개선 지점이 어디인지 짚어내게 되는 전략적 시기와 위치에 서 있다. 생색내기에 불과한 대책을 넘어서서 전체 비정규직 해법의 진정한 모범사례를 구축하기 위해선 ‘무기계약직과 간접고용’이라는 두 가지 암초를 동시에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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