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연구소 학술행사 2011-10-20   2185

[국제심포지엄_기사] [싱크탱크 광장]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 국제심포지엄

2011년 10월 14일에 열렸던 [국제심포지엄: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를 다룬 한겨레신문사의 10월 19일자 기사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501306.html

 

[싱크탱크 광장]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 국제심포지엄

한겨레

»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참석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 복지체제는 어떤 길로 나아갈 것인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지난 14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창립 15돌을 맞아 이 연구소 및 독일의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와 함께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독일의 스벤 요헴 콘스탄츠대 교수와 대만의 뤼젠더 국립중정대 교수가 각각 유럽과 동아시아 복지국가의 특성과 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국내 복지국가 연구자들이 한국의 복지국가 전략이란 주제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벌였다. 이날 심포지엄을 지상중계한다.

 

발전에 종속된 동아시아 복지 한계…보편복지 할때

 

주제발표 1

 

97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 불능
양극화 심해지고 비정규직 양산

동아시아 복지국가체제는 복지자원들이 경제부문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선진 서구산업국가를 따라잡는 모델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정책은 경제정책의 도구이자 종속물로 인식되었고, 권위주의 체제에서 시민사회와 노동조직은 억압돼 왔다. 영국의 복지체제 연구자인 이언 고프는 이런 특성을 들어 동아시아 복지체제를 ‘생산적 복지자본주의체제’라고 이름붙인 바 있다. 동아시아 국가는 낮은 수준의 사회공공지출, 취약한 노동조합운동, 높은 수준의 가족 의존적 복지라는 특징을 보여왔다.

그러나 발전주의적인 생산적 복지국가 모델은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이제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량 실업과 경제 침체 속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에 종속되는 이전의 사회보장시스템은 유지되기 어려운 시기에 들어섰다. “가장 좋은 사회정책은 경제성장”이라는 약속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기존의 잔여적 복지시스템은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위험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자살률과 범죄율이 급증하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와 낮은 출산율, 경제적 불확실성의 증대는 기존의 복지시스템을 지탱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불평등에 대한 인내심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 노동시장의 변화로 비정규직 노동이 급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 체제가 형성되었다. 특정한 직업에 따라 사회보호 혜택을 주는 이런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을 위한 기여금을 낼 능력이 부족하다.

한국과 대만 등지에서 이를 넘어서는 기획과 디자인이 필요해지고 있다. 더욱 분배적이고 보편적인 복지구조로 이행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이제 사회정책이 경제성장에 종속되었던 기존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동아시아 복지체제에서 사회정책은 자체적이고 독립적인 정책 어젠다를 가져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탈상품화 영역도 갈수록 확장돼야 하며, 소득·성별·나이·사회적 지위 등과 무관하게 시민적 사회권이 보장돼야 한다. 즉 생산적 복지체제를 넘어서는 것이 바야흐로 지금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테제다.

 

» 뤼젠더 대만 국립중정대 교수·사회복지학

다양한 사회정책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운동 진영 연대 필요

 

동아시아는 사회경제적 불확실성과 개방화 속에서 도전을 맞고 있다. 동아시아 복지체제의 장래는 사회정책들의 다양한 제도적 디자인, 그리고 노동자와 중산층의 연합 정도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서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이는 노동자와 중산층이 연대하는 정치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동아시아 복지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서비스를 원하는 시민들의 사회권 요구다. 동아시아국가들은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기반이 취약하다. 따라서 복지국가건설 과정에서 중산층이 핵심적인 축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고, 시민사회운동진영의 복지연대가 강고한 힘을 가져야 한다. 동아시아의 복지체제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뤼젠더 대만 국립중정대 교수·사회복지학


노동·교육 보장하는 유럽복지, 우리식 적용 모색을

주제발표 2

북유럽선 노동시장 참여 돕고
평생교육 위한 사회투자 적극

복지국가에는 여러 유형의 길이 있다. 유럽의 복지국가는 수십년 동안 몇 가지 양상으로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큰 도전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북유럽의 노르딕 복지국가는 이른바 ‘예방적 복지국가’로, 사회보장을 제공하기에 가장 적합하며 사람들에게 높은 행복감을 주고 경제성장 친화적이기도 해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예방적 복지국가로서 북유럽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두 개의 다리는 노동시장 중심의 사회정책과 평생교육정책이다. 노동정책은 인적자본을 다양하게 육성하면서 동시에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함께 추구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모든 사람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르딕 국가들의 복지 정책은 15~64살의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통합하고 있다. 노르딕 국가에서 노동시장에서 조기 퇴장하는 비율은 벨기에·이탈리아·프랑스에 비해 훨씬 낮다. 덴마크·스웨덴은 다른 어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도 실업자를 노동시장에 재통합시키거나 고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회적 투자에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 이런 사회투자전략은 강도 높은 교육제도에 의해 보완된다. 물론 교육지출 등을 감당하기 위해 세금은 매우 높다. 노동시장에 통합된 인구, 낮은 장기실업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그리고 평생교육에 대한 강도 높은 투자 등이 노르딕 모델의 초석이다.

북유럽국가의 경제정책은 노동에 기반한 경제의 새로운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스웨덴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도 고집스럽게 교육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계속 확대했다. 노르딕 국가들은 연대임금정책으로 유명하다. 임금과 소득의 평등이 큰 강점이고, 노르딕 국가에서 ‘정규고용’과 ‘비정규고용’ 모두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인 노동을 하며, 모든 노동자는 기업의 교육훈련 사이클에 통합된다.

 

장애물 넘고 정치적 설득 거쳐
한국적 상황 맞춘 모델 찾아야

» 스벤 요헴 독일 콘스탄츠대 교수·정치행정학

노르딕 국가의 경험으로부터 한국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교육지출에 높은 투자를 하고 사회보장을 유지하는 아이슬란드를 향하거나, 교육지출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는 독일을 향하거나, 사회지출과 교육지출을 동시에 늘리는 노르딕 국가를 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 건설 전략에서 처음부터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려는 경향은 피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모델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유럽 복지국가에서도 처음부터 어떤 정해진 길이 존재했던 건 아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정치적 동원과 설득도 필요하고 장애물도 많다. 한국의 노동조합이나 좌파정당이 약하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도 없다. 유럽복지국가 건설과정에서 초기에 강한 노조가 복지국가를 주창한 것도 아니며 매우 치열한 논쟁과 거리 시위,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요구가 있었다.

스벤 요헴 독일 콘스탄츠대 교수·정치행정학


‘시민복지국가’가 바람직한 대안

토론 1

대-중소기업 상생·노사협력과
지역자치·연대로 복지 강화를

동아시아 복지체제론과 관련해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한국의 복지국가가 동아시아적 특성을 지닌, 그러나 크게 발달하지 못하는 복지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동아시아적 특징을 지닌, 그러면서도 강력한 복지국가 수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열려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적 복지국가 담론의 성격 논쟁’이란 제목의 발표 글에서, 최근 동아시아 복지체제론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복지국가의 특수성을 해명하려는 대안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동아시아 복지체제론은 세계적인 복지국가 연구 권위자인 에스핑 안데르센이 구분한 복지국가의 세 유형에 들지 않는, 독특한 새로운 속성과 성격을 지닌 복지국가로 설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의 향후 발전방향과 관련해 “현재 한국 복지국가는 세계화라는 국제적 환경과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국내적 환경 속에서 ‘이륙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며 “그러나 이륙에 성공할지, 또 어떤 상공에 머물게 될지는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조흥식 서울대 교수는 ‘한국 복지국가의 이상적 모형’이란 발표 글에서 이른바 ‘시민복지국가’를 지향하자고 주창했다. 조 교수는 “지난 15년 동안의 선성장-후복지 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미국식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등 소득 양극화를 양산하면서 복지로 그 구멍을 메우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경제와 복지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하는 성장친화형 ‘사회투자 복지국가’ 모델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고 △사회투자정책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 조달 문제가 존재하는 등의 이유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시민복지국가의 요건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구조와 협력적 노사관계 △생산체제의 변화와 긴밀하게 상호 보완되는 복지제도의 설계 △시장만능주의 담론의 퇴각 △공공성과 사회권의 신장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지역자치·연대에 기반한 복지운동 활성화 등을 꼽았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yewan@hani.co.kr

 

재벌개혁·경제민주화, 한국복지의 ‘핵’

 

토론 2

재벌 독식·노동 희생 벗어나
공정경쟁·협력 경제 조성을

 

승자독식의 정글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한국의 진보개혁파는 보편적 복지국가 기획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복지만 가지고는 ‘두 국민’ 분열 성장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적 복지자본주의를 구축하기 어렵다.

최근의 ‘김진숙 현상’ 및 ‘안철수 현상’은 ‘복지-생산체제의 새판짜기’가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 현상은 복지국가 건설이 노동문제의 관문을 우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복지국가는 ‘공정 노동’ 위에 서야 한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에는 그가 ‘삼성 동물원’이라고 말한, 불공정하고 약탈적인 재벌의 독식과 탐욕에 숨막혀 있는 중소·혁신기업, 청년 학생, 자영업자, 중산층 등 수많은 ‘을’들의 열망이 깔려 있다.

괴물스런 정글자본주의 체제를 ‘배제적 이중화’ 체제라고 부르자. 이 체제의 핵심기제는 수출독주와 내수빈혈이다. 수출독주체제에서 국내 분업 연관과 고용창출의 파급 효과는 미미하다. 여기에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인력 빼가기 등 대기업의 일방적 수탈과 불공정거래가 중첩된다.

한국의 유연한 노동시장은 ‘고용 없는 성장’ 체제이며, 고용보호·복지보호 모두에서 배제된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다. 또 정규직조차 재벌권력의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게 한다. 이러한 재벌 주도의 배제적 이중화의 복지-생산체제는 광범한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실업자 그리고 중소기업의 희생과 고통 위에 서 있다. 그 지배 블록은 재벌과 국제금융자본, 그리고 이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상층 계급·계층이다. 이 구도에서는 스웨덴식의, 재벌과 정규직 노동의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면 강한 재벌과 약한 노동의 조건에서 어떻게 복지국가 발전체제를 구축할까? 기업과 산업 수준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공생·협력할 수 있는 열린 시장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삐 풀린 재벌에 공정·공생을 위한 ‘생태적 시장규율’을 부과해야 한다. 또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생산적 ‘경제시민’으로 쉽게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패배해도 쉽게 재기할 수 있는 제도 틀을 구축해야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이야말로 복지국가 발전체제 새판짜기의 중심고리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종합토론

정치권-대중 소통속친복지세력 구축을

이날 심포지엄의 마지막 세션으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한국 복지국가 건설의 전략을 둘러싸고 다채로운 논의가 이뤄졌다. 사회를 맡은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논쟁의 불을 지폈듯 지금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어떤 복지쟁점을 구체적으로 파고들 것인지, 또 어떤 복지정책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울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권력 교체기에 복지국가 지지층을 두텁게 할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토론자로 나선 김용익 서울대 교수(의과대)는 ‘교육-노동시장-복지’로 이어지는 경로를 복지세력이 마련해야 한다며 “노동시장 및 교육시장 개혁과 사회복지를 함께 추구해야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토론에서 “노동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진보와 복지 모두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교육·의료·주거 모두 노동력 재생산의 문제인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도입하면서 복지를 단지 그 보완물로서만 간주했다고 비판했다. 박원석 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상임집행위원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복지를 통한 재분배에 앞서 1차 분배영역인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 양극화 해결을 위해 재벌체제에 대한 개혁과 순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복지국가 건설에 생태주의가 빠질 경우 복지국가 역시 또 하나의 낡은 패러다임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최근의 ‘월가 점령’ 시위를 복지국가운동으로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민주당) 원장은 이제 복지담론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핵심 균열선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복지를 다른 가치와 연계해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 지방선거에서와 달리 내년 대선은 복지 대 반복지의 구도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복지를 다른 가치, 예컨대 청년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과 연결하면서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은 “복지담론을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선도적으로 주창하고 있는 형국인데 이제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의 틀 속에 갇히지 말고 대중과 소통하면서 실천적으로 친복지세력을 강고하게 키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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