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재벌개혁 어떻게’ 학계 심포지엄(2003.05.24)

△ 3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대회의실에서 ‘한국의 재벌, 기초자료 수집, 분석 및 평가’라는 주제로 열린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사회경제연구소 공동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재벌 기초자료 수집·분석·평가

참여사회연구소와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국내 재벌관련 자료와 연구성과를 정리해 발표하고, 학계와 정부 관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재벌개혁의 방향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육성 프로그램의 지원 아래, 두 연구소가 지난해 8월부터 22명의 연구진을 꾸려 작업한 결과물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두 연구소는 앞으로도 재벌관련 자료를 총정리하고 분석, 평가하는 작업을 계속해 2005년 7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날 발표 및 토론회는 이런 연구작업을 중간점검하는 자리였다.

주제발표 내용 가운데 김대중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평가와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사업구조 변화에 대한 연구를 간추려 소개한다.

정리/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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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사업구조 변화
“외환 위기가 재벌 체제 격변 불러”

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재벌기업들은 기존의 사업구조를 빠르게 재편해 나갔다. 흡수합병을 통한 계열사 통폐합으로 많은 기업들과 사업부문이 사라지고 대신 주식취득, 혹은 사업양수도 및 분할로 수많은 새로운 기업들과 사업부문들이 탄생했다. 재벌의 사업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보다도 소유관계의 설정과 변화이고 따라서 소유관계의 변화를 동시에 다루지 않는 한 이러한 변화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총자산, 매출액, 자본금, 당기순이익 등을 통해 외환금융위기 이후 재벌의 규모와 사업구조의 변화는 재벌개혁 성과평가의 의미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사업구조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외환금융 위기 이전과 이후의 재벌그룹 계열사간 내부거래의 변화이다. 계열사간 내부거래 변화는 재벌기업의 사업부문별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만, 위기 이후 진행된 계열사간 통폐합과 사업구조조정의 성과를 표현해주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다.

외환금융위기 이후 4대 그룹 중에서 가장 격심한 변화를 경험한 재벌 그룹은 현대이다. 현대그룹의 계열사수는 98년 4월 62개에서 2001년 26개, 2003년 4월 현재는 11개로 줄었다. 매출액도 97년 81조에서 2001년에는 25조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 독립된 계열사들을 합친 ‘범현대그룹’의 자산규모나 매출액은 2000년 기준으로도 100조를 넘어선다.

삼성의 경우는 2002년 말 현재 금융보험계열사를 합한 자산규모가 88조원에 매출액은 144조에 이른다. 최근 3년 사이에 주목되는 변화는 정보통신분야로의 진출확대이다. 정보처리, 소프트웨어개발 및 공급 분야의 기업들이 2001년부터 급격히 증가하여 2002년 말 현재 13개이다. 그러나 자산구성으로는 금융과 전기·전자업종의 비중이 81.9%로, 90년대 초반의 67% 수준에 견줘 압도적으로 높아진 게 특징이다.

엘지그룹은 전체적으로 사업구조에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도소매 업종이 3위에서 1위로 전기·전자 업종은 1위에서 2위로, 석유화학 업종은 2위에서 3위로 자리바꿈한 게 특징이다.

에스케이는 4대 재벌 가운데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급속하게 성장한 재벌이다. 1994년까지 에스케이는 재계순위 5위였지만 4위인 엘지그룹 자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99년 말 자산총액이 40조원을 기록함으로써 98년 말에 견줘 7조4천억원이 늘어났는데, 이는 30대 재벌가운데서 가장 높은 자산증가율이다.

계열사간 상품 내부거래율은 4대 재벌 모두 외환위기 직후에는 급격히 높아졌다. 99년 결합재무제표를 기준으로 4대재벌의 상품 내부거래율은 평균 39.2%에 이른다. 87년부터 96년까지 평균 내부거래율보다 적게는 6.5%(현대), 많게는 14.6%나 높아졌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2년여간 재벌 개혁 과정에서 수익성이 없거나, 주력산업과 무관한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정리함으로써 상품 거래의 수직화율이 높아진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만큼 계열기업간 의존도가 높아져 기업집단의 결합력이 더 강고해졌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99년 말을 전환점으로 해 각 재벌의 계열사간 상품의 내부거래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재벌들의 계열사간 수직거래화율이 낮아지고 오히려 비관련 사업부문의 신설과 확장이 활발해졌음을 반영한다.

송원근/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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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정책 변화·평가
“김대중정부, 지배구조 개선조처 미흡”

김대중 정부 후반기부터 정부의 재벌정책은 기업결합 및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 지주회사의 설립 허용, 금융회사 또는 보험회사의 의결권 확대 등을 통해 경제력집중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반면에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변칙적인 상속 및 증여와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는 강화됐다.

또 한편으로 소수주주권을 강화하고 이사 및 감사제도의 개선, 결합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의 도입 등을 통해 재벌집단의 소유 및 지배구조와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재벌정책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재벌집단의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조처들은 결과적으로 그 효력이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령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지만, 재벌기업들은 “주총에서 결의하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법의 단서조항을 이용해 이 제도를 사문화시켜버렸다. 사외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제도 또한 상법에 이사회가 감사위원회 결의사항을 기각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실상 지배주주에 의해 사외이사들이 선임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소유구조도 실질적으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삼성, 엘지, 현대, 에스케이 등 4대 재벌의 최종지분율과 내부지분율의 격차는 97년 말26.66%에서 2001년에는 30.82%로 확대됐다. 이는 총수일가의 계열집단 지배가 계열사간 순환출자방식에 의한 가공자본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순자산 대비 계열사에 대한 출자규모를 나타내는 출자비율도, 4대 재벌 평균이 97년 36.46%에서 2001년에는 38.68%로 다소 증가했다. 이는 98년 이후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완화되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금융보험사를 제외한 4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97년 473%에서 2001년 129.8%로 줄어 재무구조는 꽤 개선되었다. 특히 삼성그룹의 경우 2001년 말 부채비율이 77.7%를 기록했다. 하지만 결합재무제표에 따른 삼성의 2001년 부채비율은 118.47%로 증가한다. 4대 재벌 전반적으로 부채비율 하락의 주된 요인은 주식발행 및 유상증자의 증가, 차입금의 감소이다.

30대 재벌의 경제전체로 보면, 경제력 집중은 완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가가치, 자산, 매출액, 종업원수 등 모든 면에서 30대 재벌의 비중이 줄었다. 다만 시가총액은 그 비중이 오히려 늘어 자본시장의 30대 재벌 집중현상은 심화됐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를 종합해 볼 때, 앞으로 재벌정책은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지배를 차단하면서,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강화, 기업단위의 집중투표제 및 집단소송제의 도입,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제고 등이 요구된다.

강병구/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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