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이라크파병, 부안문제, 국보법이 후보선정 잣대돼야” (2004.01.28)

[참여사회 포럼] 시민단체 총선참여방식 놓고 열띤 논쟁

17대 총선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이 각개약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초로 각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운동방식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상호간 비판과 조언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총선에 대한 시민사회의 다양한 흐름 존재

27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까페에서는 (사)참여사회연구소(이사장 : 주종환) 주최로 “17대 총선과 시민운동 : 왜 다시 ‘낙선운동’인가”란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오는 4월 총선에 대비해 시민사회는 지난 16대 총선 때와는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파탄으로 말미암아 기존 정치권에 대한 물갈이가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시민사회단체, 정당의 정체성에 따라 상이한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혁진영의 총선운동은 크게 네갈래로 분류가능하다.

먼저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은 현실정치 영역에서 정치개혁과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중이다. 2000년 창당,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기치를 선언했던 민주노동당은 지난 지방선거와 대선과정에서 자민련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제4당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기정사실화되면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의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진영이 자당을 적극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다음은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2004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다. 지난 16대 총선에서 처음 시도된 낙천낙선운동은 최초로 선거영역에서 시민사회가 실질적 파괴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12일 참여연대가 낙천낙선운동을 선언한 이래 오는 2월3일 공식발족, 5일 1차 낙천대상자 발표 예정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며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표방한 ‘물갈이 연대’의 지지당선운동이 있다. 물갈이 연대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활발한 낙천낙선운동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줄지 않은 현 상황을 반성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후보를 선정해 지지당선운동을 펼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발족식을 가진 ‘물갈이연대’는 국민후보 선정기준마련을 위해 절치부심 중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운동 진영에서 진행되는 여성의 정치세력화 운동이다. 정치가 남성들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현실을 반성, 여성들이 정치권에 개인 혹은 단체로 진입하여 여성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지난해 5월 ‘총선여성연대’를 결성, 여성할당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선운동과, 지난해 11월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후보자 발굴 및 지지당선운동이 있다.

기성 정치권 물갈이부터 새로운 대안정치세력 형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정치적 전망 속에 시민사회는 각개약진 혹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운동들이 상호간 소통 부족으로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이번 토론은 상호간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아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자는 취지로 3시간여 동안 진행되었다.

민노당, 인물교체 중심 운동 비판

토론쟁점 중 하나는 “‘총선시민연대’와 ‘물갈이연대’의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이 인물중심 운동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로, 주로 민주노동당쪽에서 제기됐다.

민주노동당 공약개발팀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우선 “지지당선운동과 낙선운동에 대해 나름의 역사적 긍정성에 대해 일정부분 동의한다”면서도 “‘인물 교체 차원의 물갈이’로는 일시적인 대중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지언정 의미있는 정치개혁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더구나 ‘인물 교체 물갈이론’은 민주적 정치개혁의 핵심 의제를 변경하는 효과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 낙천낙선운동과 지지당선운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87년 6월항쟁이후 민주적 정치개혁의 핵심 의제는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를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상적인 경쟁의 정치구도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는데, 인물교체 중심의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으로 말미암아 핵심의제가 부차화되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또“부패정치의 일상화는 부패한 정치인에 기인한 바 크지만 일차적으로 보수독점의 정당체제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인물 중심 물갈이론은 문제 발생의 기본 인과관계를 전도시킬 위험성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정치의 의미를 사장시키면서 오히려 탈정당화 추세를 가속화시킬 부작용을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컨대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이 상당수 정치인을 퇴출하는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 정치인이 재생산되는 현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인물퇴출 중심의 선거운동은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지적이다.

참여연대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할 일 다르다”

이같은 조 교수의 비판에 대해 낙천낙선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 국장은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이 인물교체중심 일변도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오는 총선에 도입되는 만큼 유권자에게 각 정당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국장은 또“4년 전에 비해 조금도 (정치권이)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산술적으로 부패의 규모도 훨씬 준 것이 사실이고, 공천과정만 보더라도 과거 보스가 일괄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향식 공천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 국장은 “대안정치주체 형성의 수위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전제한 뒤, “대안정치를 모색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고민할 문제이지, 시민사회가 맡을 일은 아니다”며 “시민사회에서 기성 정치인들 물갈이 여론이 비등점에 이른 이상 진보정당이 아닌 시민사회단체로서 이런 국민적 요청을 외면할 수 없다”고 주장해 진보정당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역할 분리론을 주장했다.

“이라크파병, 부안문제, 국가보안법폐지 등으로 후보자 선정해야”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의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의 구체적 잣대 부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녹색정치준비모임의 서형원 간사는 “시민사회운동의 이번 총선 대응이 정치개혁과 물갈이라는 현실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하는 동시에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를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이른바 ‘사회적 학습’ 과정이어야 한다”며,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은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간사는 이어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이) 유권자의 참여 열망에 부응할 순 있지만, 대안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시민사회 운동의 기본 의무를 고려할 때,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 간사는 또 “낙천낙선-지지당선운동에서 낙천대상자 혹은 국민후보대상자 기준을 마련할 때 단지 인물의 도덕성, 청렴도에만 큰 비중을 두지 말고, 그동안 시민단체가 추구한 가치가 투영된 정책에 대한 태도도 전자와 비슷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보자 선정 정책기준의 구체적인 예로‘이라크파병’(평화), ‘호주제폐지’(여성), ‘부안문제’(주민자치, 환경), ‘국가보안법 폐지’(인권) 등을 제시했다.

시민단체, “정치적 중립성 포기 어렵다”

총선연대와 물갈이연대 측은 서 간사의 이런 지적이 타당함을 인정하면서도, 시민사회의 미성숙,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중립 유지 등의 이유를 들어, 시민사회단체가 표면적으로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기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연대의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우선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성’은 독재가 빚어낸 정치적 신화의 성격을 갖는다”고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시민사회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기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홍성태 교수는 이어 “특히 참여연대처럼 정치감시활동을 펼쳐온 단체의 경우에 낙천낙선운동을 넘어선 직접적인 정치참여활동에 가까운 활동을 벌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성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는 부족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여성정치참여 문제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아쉬움을 남겼다.

이날 토론에 참가한 조현옥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운영위원은 “3시간 열띤 토론 속에서도 여성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며 “보시다시피 여성참여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구색맞추기에 급급하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으로 토로했다.

조 운영위원은 “사실 여성운동은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며 “여성후보 지지·당선운동을 이익집단의 행동이 아닌 유권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대표성은 10분의 1로 전락한 소수세력의 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김정훈 민주사회정책연구원 교수, 서형원 녹색정치준비모임 간사, 조현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장, 조현옥 여성정치세력 민주연대 대표가 참여했다.

김경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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