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2004.03.25)

[프레시안 김경락/기자] 연내 입법계획을 밝힌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협의과정에서 벌써부터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경영계 등이 참여해 폭넓은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4일 오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제39회 참여사회포럼을 개최, 노무현 정부가 지난 1년간 시행한 비정규직 관련 정책과 향후 계획 평가 및 토론회를 가졌다.

“노동시장유연화 기조가 사회적 양극화 주범”

이날 토론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관련 정책 평가에 앞서 우리 사회가 ‘양극화’ 되는 현상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했다.

발제를 맡은 김성희 참여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양극화 원인으로 불균형적 소득 재분배와 자본편향적인 노동정책을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은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탈피할 가능성을 높임에도 현실은 전반적으로 빈곤이 구조화되고 있다”며 “(빈곤 구조화는) 특히 자산 소득이 거의 없는 계층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고용기회의 차이, 고용상의 차별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영삼 정부이후 모든 정부가 노동정책의 초점을 세계화-유연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둠으로써 노동의 저항을 수용하고 포섭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의 폭은 급격히 좁아졌다”고 주장했다. 국제 경쟁력을 모토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전개됨으로써 전통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갖는 불평등 개선의 기능대신 사회 양극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3년 간에 걸친 경제위기 과정 속에서 노동시장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현상 중 하나는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노동자들은 낮은 임금률, 사회보험의 낮은 적용률, 고용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설명했다.

사회연대적 정책 채택 필요

이같은 양극화 심화를 개선하기 위해선 노동정책의 기조를 변화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김 연구위원은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전 구성원에 대한 고용기회의 확대와 적정 생활수단 보장, 사회 전반적 소득불평등의 완화를 목적으로 한 사회연대적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며 “실업문제, 삶의 질 문제를 새로운 사회구성 원리로 채택하고, 인원감축 중심의 비용절감전략과 외형성장 중심의 전략을 수정하여 질적인 구조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전환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기업의 인건비 감축을 통한 경쟁력 재고 전략은 ‘저숙련-저생산성-저품질-저가격-저부가가치’의 악순환을 낳았으며, 저가제품의 대량생산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고숙련-고생산성-고품질-고가격-고부가가치의 선순환을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연대적 노동정책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 아닌 노동대중 전반의 삶의 질 악화”

발제가 끝난 뒤 토론 참가자들의 비정규직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자유로운 문제제기와 제안이 이어졌다.

정부 대표로 나온 권병희 노동부 비정규대책과 사무관은 “사회양극화 해결방안은 지나치게 경직된 정규직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며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화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만큼 이를 유연화하고 대신 비정규 노동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은 그러나 이에 대해“비정규직 남용과 차별확대의 문제를 정규직노동시장의 경직도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이라며 “비정규직 확대는 자본의 노동분절화 전략의 일환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일반화되면서 노동대중전반이 고용불안으로 삶의 질이 악화되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비정규직 고용이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고착화되는 것도 큰 문제”라며 “한국노동시장에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비정규직 고용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파견 금지 등 실효성 있는 법제도 개선 필요”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도 “객관적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률적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윤 정책국장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는 아울러 비정규 고용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간접고용의 경우 불법파견이 심각하다”면서 “현재 법률은 불법파견이 드러났을 경우에도 가벼운 처벌만 받도록 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책임을 져야하는 원청회사가 형식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이 면제되는 상황에서 불법파견은 더욱 양산될 것”이라며 “파견을 무한정 확대할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형식적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 책임이 있는 원청회사에 책임을 지우도록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초청된 황용연 경총 정책본부장은 “사용자는 이윤확대 하나만 생각한다”면서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이유는 업무의 필요성도 있지만 인건비 절감-고용유연성 확대가 핵심”이라고 설명하했다. 그는 또 “비정규노동 확산은 다 나름의 원인과 이유가 있는데, 무턱대고 문제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해 경영계와 노동계의 인식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집권1년 노동정책, 실망 그 자체”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차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과 인수위 때,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겠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겠다’고 했으나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희망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한 뒤 “비정규직 정책만큼은 정말 실망이다”고 주장했다.

유 정책차장은 “집권 초기에 노동계는 노 정권이 노조의 참여, 대등적 노사관계를 약속했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한 것이 사실이었다”면서 “현재 노 정권의 노동정책을 보면 노동을 관리-통제 대상으로 보던 과거 노동정책으로 회기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 정책차장은 “노 정권은 비정규직 관련 정책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축소를 동시에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당한 차별이 관행화 되어있고, 고착화된 차별을 개선하지 않은 이상 노동시장 유연화는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성희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경쟁력 강화로 받아들여, 비정규직 확산은 불가피하거나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다만 지나친 노동력 착취는 방지해야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지나친 노동력 착취를 방지하기 위한 실제적 비정규 보호방안에 대한 제도 개편 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집권1년 노 정권의 노동정책을 평가했다.

이날 토론에 참가자들은 각 자 미묘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김 연구위원의 지적에 동의를 표하면서 “비정규노동자가 급속히 확대되는 상황에서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날 토론은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의 사회로 김성희 참여사회 연구소 소장의 발제, 권두섭 민주노총 변호사, 권병희 노동부 비정규직 사무관,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차장, 윤애림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의 토론으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경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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