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바다를 이룬 ‘촛불’은 우리에게 묻는다





바다를 이룬 ‘촛불’은 우리에게 묻는다
[서평]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희영 /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1. 기억하기



















  
ⓒ 한겨레출판



촛불

 지난해 여름, 최대 70여만 명의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했던 촛불집회가 있었다. 인터넷과 거리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주연 배우가 된 새로운 정치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참여하는 시민들과 지켜보는 시민들이 때로는 놀라며 즐거워하고, 때로는 가슴 졸이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던 시민의 새로운 저항행동이 창조되기도 하였다.


2008년을 마무리하면서 잊을 수 없는 촛불집회의 장면과 경험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는 부제에서 망각에 대한 ‘기억투쟁’의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기억은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선택적인 특성을 갖는다. 우리에게 어제의 모든 것이 기억되지 않는다. 지나간 경험 중 오늘에도 기억되는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되돌아보기이다.


따라서 의미가 있었던 행동이나 경험에 대한 오늘의 ‘기억’과 말하기는 지나간 것에 대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동시에 미래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하물며 ‘기억투쟁’이라고 한다면 기억을 통해 미래의 어떤 실천을 다짐하는 것이리라.   


 이 책은 전체 10장의 본문을 통해 2008년 4월 촛불집회의 형성 과정으로부터 2008년 7월 촛불문화제 너머까지의 직, 간접 경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기록이다. 시민단체 활동가, 대학생, 학자, 변호사, 문학인 등 사회의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개인들이 지난 해 여름의 촛불집회에 대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백 마디 말을 능가하는 ‘한 장의 사진’들이 당시의 경험과 열정을 새롭게 재현하고 있다.               


2. 남기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이 책의 필자들은 촛불집회의 각 시기에 자신의 몸과 눈으로 경험한 현장을 생생한 감정으로 그리고 있다. 먼저 2008년 4월, 10대 여학생들의 촛불로부터 시작하여, 온라인 동호회 회원들, 각 시민단체와 사회운동 조직들, 대학가 클럽의 밴드, 직장인, 유모차를 끄는 주부들, 대학생, 넥타이부대,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같이 겪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속에서 조금씩 연대하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가능한 당시의 상황과 느낌에 다가가는 마음으로 기록하고 있다.


‘상호 학습의 학교’ ‘국민MT’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예외적인 현상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 발생,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1980년대의 집회나 시위와 구별되는 촛불집회의 흥겹고 창의적인 참여와 연대의 성격을 드러낸다. 동시에 이것은 저자들의 표현을 빌자면 “공명하며 경계를 가로질러 공유하고 나누는” 새로운 개인들의 주체화 과정이기도 하다.       




















  
▲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비상 시국미사를 마친뒤 숭례문을 지나 명동 앞을 행진하고 있다.
ⓒ 유성호



미국산쇠고기

5월 24일 촛불이 거리로 나서게 되면서 직면하는 폭력과 정부의 정책 강행 등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과정에 대한 기록은 ‘촛불집회’가 ‘촛불시위’로 성장하는 과정이자 기발하고 자구적인 저항행동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저항행동의 진화와 촛불시민의 자각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미친 소, 미친 운하 때문에 미치는 국민” “조중동이 신문이냐! 가져와라! 깔고 앉게!!” “0교시 할 거면 우리에게 아침 먹고 오란 말을 하지 마라!” “광우병 걸려 민간의료보험 혜택 못 받거든 대운하에 뿌려다오” “전기, 수도, 가스요금 폭등! 시러 시러 ~” 등과 같이 대한민국의  중요한 현안과 그것의 ‘공공성’을 논의하는 촛불광장을 만들어낸다. 저자들은 이 촛불광장을 ‘한국 정치의 한복판이자 새로운 시민권력의 장’으로 정의한다.


마지막으로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과 각 종교인들이 촛불시민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6월 30일 이후의 기록은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느껴왔던 분노와 열정, 희망과 절망의 감정을 눈물과 웃음으로 쏟아내는 현장에 머문다.


하얀 옷을 입은 천주교 사제단의 등장이 공권력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피 흘리고 상처받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보호하는 상징이자 구체적인 힘이라면, 아스팔트 위에서 행하는 스님들의 108배는 모두가 동참하는 고행이자 자기성찰에 대한 촉구이다.


이와 같이 촛불의 발생으로부터 소멸까지의 전개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맡겨 재구성한 이 기록은 ‘오늘 이 자리’에서 2008년 촛불집회의 주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매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2008년 의도하지 못한 채 만들고 경험했던 정치적 연대와 창조의 열정을 오늘로 연장하여 불러올 수 있다. 단지 머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눈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3. 사진이 전하는 찰나  


인간의 기억뿐만 아니라 사진 또한 ‘선택적’인 특성을 갖는다. 카메라는 기계이지만 카메라를 움직이는 인간의 눈에 의해 ‘찰나’가 창조된다. 이 사진들은 어제의 현장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촛불에 대한 사진들 중 ‘기억되기를 소망’하며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은 영상의 힘으로 ‘오늘의 촛불’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에는 한 여성이 서 있다(243쪽). 분홍색 비옷을 입고 양손에는 “국민이 준 힘으로 누구를 지키는가”라는 글씨가 쓰인 팜플렛을 들고 있다.


긴 머리의 차분한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글씨의 물음과 달리 눈빛이 담담하고 깊다. 아래쪽으로 하얀색 비옷을 입은 두 명의 젊은 남성이 턱을 괴고 음악을 듣거나, 무릎깍지를 낀 자세로 멍하게 앉아있다.


사진의 아래에 박힌 글씨는 2008년 7월 20일 오전 4시 7분, 종로 1가, 김종수. 무엇이 이 여성을 홀로 서 있게 하였을까? 말없이 눈으로 전하고자 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2008년 여름 어느 깊은 새벽, 도시의 길바닥에서 잠들지 못하고 겪었던 것을 오늘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이처럼 책에는 ‘바다’를 이룬 촛불을 하나의 장면으로 담은 것으로부터, 촛불 하나하나의 아픔과 분노, 열정과 희망을 포착한 영상들이 글과 다른 힘으로 우리의 기억을 이끌고 있다.  


4. 돌아본 촛불 


이 책이 글과 사진을 통해 2008년 여름 촛불집회에 나섰던 시민들의 떨리는 마음을 담고 있으나, 필자들의 글과 영상이 수필식 감정 전달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돌아본 순간의 행동에 대하여 정당성을 질문하고, 그것의 의미를 새롭게 읽고자 애쓰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저항의 주체가 탄생했음에 경탄하지만, 이것이 한 여름 밤의 꿈이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창조와 열정의 공간이었지만 “과도한 축제요 무질서한 운동회”가 되지는 않았는지 싸늘한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권력행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저항이자 질타였으나, 실정법을 위반한 행동과 대항 폭력이 갖는 잠재력과 한계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반성의 관점에서 돌아본 촛불은 2008년 여름 우리 모두의 한계를 곱씹으며, 앞으로의 과제를 고민하도록 한다.


 기억 자체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기억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붙들고자 한다면 이것은 지나간 한 때에 대한 민속박물관을 만드는데 그칠 것이다. 기억을 통해 현재의 길을 비추는 몸과 정신의 순간 체험을 불러오려는 집중이자 응시라면 그것은 새로운 미래로 향할 것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의 글과 사진들은 결국 추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던 ‘촛불의 권리’가 구체적인 시민적 권리의 영역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필자들과 사진작가들이 재구성한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집단 기억을 우리에게 던짐으로써 우리 모두가 이 질문에 대해 궁리하도록 촉구한다.  



 2009.01.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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