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4-08-26   934

[청년 불온대장정 제 3탄] “져도 괘안타…끝내 큰 전쟁만 이기믄 되는기야”

“져도 괘안타…끝내 큰 전쟁만 이기믄 되는기야”


[청년 불온대장정 ③] 청도군 각북면 삼풍리, 345kV 송전탑 반대 농성현장

 참여연대 20대 회원 14명이 주축이 되어, ‘불온대장정’이란 이름으로 20일부터 24일까지 기차 내일로를 타고 전국을 순회합니다. 사회적 아픔이나 연대를 필요로 하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함께 행동한다는 큰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싣습니다. 이번 글은 이현아 참가자가 작성했습니다.

 청도군 삼평1리 농성장으로 향하는 길, 비 개인 선선한 날씨와 모처럼 맡는 시골 내음이 우리의 3일차 여정에 흥을 더해주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또 마중 나와 주신 주민분의 트럭을 타고서 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할 때 쯤 농성장 앞은 ‘삼평리 이바구’가 한창이었다. ‘삼평리 이바구’는 할머니, 주민, 그리고 각 지역에서 온 연대자들이 모여앉아 서로를 밝혀주는 촛불문화제다. 여기서 ‘이바구’는 경상도 방언으로 ‘이야기’를 뜻한다고 한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5)

▲ 8.22일 밤 ‘삼평리 이바구’ 풍경. 매일 밤 농성장 앞에서는 삼평리의 평화를 비는 촛불문화제가 진행된다(사진: 청도 페이스북).  

 

 매일 밤 삼평리의 사람들이 모여 삼평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 것이다. 현장을 찾아오던 길에 마냥 신났던 우리의 여행 분위기는 도착하자마자 이내 숙연해졌다.

 

 우리가 삼평리를 찾아간 날은 금요일 밤이었다. 주말에는 대체로 송전탑 공사도 쉰다고 하는데 우리가 다음 날 무얼 어떻게 돕고 올 수 있을까 싶었다. 행여나 잠자리 차지하고 밥이나 축내고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한편으로 어색하고 불편한 맘으로 농성천막 아래 무거운 짐을 풀었다. 

 

 그날 밤, 막 도착한 ‘불온청년’들 14명과 삼평리에 상주하고 계시는 연대자들이 아스팔트 도로 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한밤의 이야기판을 벌였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서는 농성장과 공사판 사이에서 둘러 앉아있는 우리 모습이 꽤나 전투적으로 보일 듯도 하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한전과 경찰을 꼬집는 풍자 섞인 농담, 어제 오늘 일어난 마을 이야기, 친구의 생일 축하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겉으로는 좀 험하게 보이는 풍경일지라도 그 안에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과 나의 일상이 섞이던 그 이야기 판 위에서부터 비로소 조금 전 느꼈던 불편함과 어색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다음 날 오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기어코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공사장에서 나가려는 트럭을 막으려던 중에 한전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할머니들과 연대자들은 오랜 기간 몇 번이고 한전직원들에게 속고 또 속아왔던 탓에 작은 실랑이도 금세 큰 소동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욕설들이 난무했고 자칫 더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던 상황이 공사장 문을 닫으며 일단락되었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6)

▲ 23호 송전탑 건설 정문 앞 일상 송전탑 건설 진행을 막기 위해 불온대장정 친구들이 공사장 출입문 앞을 지키고 있다  

 

 평소 욕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삼평리에 상주해 투쟁하다 보면 어느새 걸쭉한 비속어를 구사한다.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거친 용역들을 상대하며 쓰는 낯선 욕설들은 도리어 다시 그들의 가슴을 찌르며 돌아온다. 

 

 이내 평생을 농사일만 해온 할머니들이 언제 그런 말을 써보기나 했을까.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할머니와 연대자들에겐 엄청난 스트레스다. 하지만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곤 출입문 안으로 쏙 사라지는 한전 직원들과 용역들의 행태에 분노해 다시 닫힌 문에 대고 한풀이를 한다. 

 

 적이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문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소리치며 뙤약볕 아래 공사장 문 앞을 지킨다. 그 사이 트럭으로 날라야 할 짐은 크레인을 이용해 공중에서 옮겨진다. 송전탑은 어느새 부쩍 높이 올라가고 있었고 그날 공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7) 

▲ 불온대장정 티에 담은 연대의 마음 우리가 떠나더라도 남아있는 분들, 새로 오는 연대자들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매번 이런 식이다. 우리는 분노하고 우리가 분노한 만큼 상처받는다. 하지만 ‘적’들은 모습을 감추고 철문 안에서 그들의 잇속을 챙기기에 바쁘다. 한국전력공사,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도 다를 바가 없다. 

 

 누구 하나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를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와 싸우려하지도 않는다. ‘국민들의 전력수요 증가에 따른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명분으로 앞세워 추악한 욕망을 감출 뿐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두고 싸우는 전투는 사실 지치고 힘이 든다. 

 

 밀양이 겪었던 절망과 아픔은 이곳 청도에 두려움으로 와 안긴다. 그런 상황에서 한전이 이용하는 회유책과 압박은 주민들 간의 분열을 일으킨다. 그렇게 주민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남은 사람들 중 매일같이 농성장 앞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은 대여섯 분 정도가 되었다.

 

 “밀양, 청도에서 송전탑 하나 짓지 말자꼬 이래 전투를 하지만… 사실 이 작은 전투 하나쯤 우리 져도 괘않다. 끝내 큰 전쟁만 이기믄 되는기야.”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8)

▲ 농성장 천막 뒤에 걸린 그림 ‘삼평리 지킴이 여신’ 작은 그림, 문구 하나에도 연대의 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삼평리에 돌아올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 하나는 지더라도 결국 탈핵, 탈송전탑을 구하는 전쟁은 승리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을 찾기 위해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이 삼평리 농성장을 찾아 들어온다. 치졸한 욕망은 깊고 넓은 연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그고 눈을 가려도 문 밖에서 들리는 연대의 함성은 막을 수 없다. 

 

20140820~24_청년 불온대장정 (9)

▲ 삼평리를 떠나기 전 모습 다시 올것을,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연대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한전과 정부가 ‘도시인들의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탓으로 지역 공동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당장 삼평리로 갈 것을 권한다. 할매들이 건네는 복숭아에 삼평리에 아직 살아있는 작은 평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