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5-02-06   1102

[인턴후기] 우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기 위해

 참여연대 15기 인턴프로그램은 세상을 뒤흔들 상상력으로 가득 찬, 20대 청년친구들 24명과 함 께 2015년 1월 2일(월)부터 2월 12일(목)까지 6주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 6주 동안 우리 인턴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애드보커시 방법론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직접행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됩니다. 이번 후기는 ‘홍석호’ 인턴이 작성해주셨습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 지난 연말 취직에 실패한 수많은 20대 청춘 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과 인식을 쉽게 접한다. 전교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교육자를 어떻게 노동자라고 할 수가 있느냐라는 인식과 부딪혀야 했다. 지난 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의원님들께서 노동이란 표현을 불편해하신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노동에 무지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무시한다. 노동자와 근로자를 구분해, 전자에는 거칠고 블루칼라적인 이미지를 씌웠고, 후자에는 깔끔하고 화이트칼라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 1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했던 노동자들을 기리는 노동절도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로 탈바꿈했다. 이런 인식은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노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투쟁적이고, 비타협적이다. 여기에 때로는 이기적인 귀족노조라는 수식어까지도 붙는다. 이러한 인식 아래에서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을 바탕에 둔 파업 역시도 곱게 볼 리 없다.

 

 

 지난 주 그래도 노동운동이 희망이다시간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노동운동이 필요한 까닭에 대해 하종강 선생과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종강 선생은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으로 부정적인 노동에 대한 시각의 원인을 교육의 부재에서 찾았다.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모의노사교섭과 같은 경험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배우는 것은 물론, 자신이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 될 수 있다는 사고를 열어 놓는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학교에서 노동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회의 학생들이 성인이 되고, 취직에 성공해 노동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권리를 해치는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누가 더 자신의 권리를 잘 지킬 수 있을지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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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하종강 선생은 식민지 경험과 전쟁, 분단의 경험을 통해 왜곡된 근대화 과정 또한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반민족행위자 청산 실패, 반공주의에 입각한 종북 몰이, 제대로 된 보수의 상실과 같이 현대사의 흐름에서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한국 사회의 극우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는 다른 나라보다 조금 늦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독일, 프랑스와 같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 일본, 중국의 지도자들도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통해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국은 기업중심의 해결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상황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 강연의 핵심이다. 지난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사실을 깨닫고 노동운동에 참여해 온 300년의 기록이다. 세계 각국에는 장·차관, 교장, 판사, 변호사 등 다양한 노조가 존재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진행 과정에 있어 분명하게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이다. 우리 사회 역시도 마찬가지다. 전교조가 오랜 투쟁 끝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공무원노조도 이러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원 박사로 구성된 노조도 만들어 졌으며, 아나운서·피디·기자와 같은 언론인들도 자신을 노동자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조금 늦어지고, 왜곡된 구조로 인해 조금 돌아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어떠한 것이 옳고,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남녀평등을 이룩한 인류가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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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극작가 리로이 존스는 노예가 노예로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라고 했다. 노동자와 노예의 차이는 임금, 복지수준과 같은 경제적 지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어떠한 존재라고 스스로 정의하는 것에 따라서 역사를 만들어 온 노동자와 노예가 나뉘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모두가 파업현장으로 뛰어나가고,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현장에 차가운 눈길로 쏘아보기보다는 애정과 이해를 담고,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예의 삶이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사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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