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0-07-26   1735

[인턴후기] 나는 숨쉬는 강변을 걷고 싶다


이 글은 여주 남한강 4대강 사업 공사현장 방문 후기입니다.
참여연대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0년, 인턴들의 화끈한 여름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네번째 이야기]

‘나는 숨쉬는 강변을 걷고 싶다’
– 여주 남한강 4대강 공사 현장 답사 후기




6기 인턴 권상훈




다리 위에서



남한강 4대강 공사현장 답사를 겸해서 인턴들의 M.T를 가기로 한 날 아침, 일기예보대로 먹구름이 잔뜩이더니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현장답사까지 있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다니 시원하기도 하면서 걱정스런 맘이 들었다. 주말에 비가 내려 차가 좀 막혔지만 그러고 달리기를 두시간 남짓, 신륵사 근처 여강선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수그러들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고, 여강선원 앞에는 얼마전에 소신공양을 하신 문수스님의 작은 분향소가 아직까지 쓸쓸히 자리하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나누는 것을 공감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고뇌하고서야 소신공양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작게 보이는 스님의 영정사진앞에는 아릿한 향만이 피어오르는 듯 했다.



싸온 김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그 곳에서 만난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분과 함께 근처 공사현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남한강 근처까지 이동했다. 과연, 말 그대로 남한강은 공사판이었다. 그 곳에서 함께 공생하던 생물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고, 아름다운 계절의 색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던 강변의 수풀은 여전히 파헤쳐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성형외과 수술 전의 BEFORE&AFTER 사진의 사이를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무감각한 굴삭기 끝의 움직임에 따라 강줄기의 살이 갈라지며, 피가 흥건해지는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다리 위에서는 다함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참혹한 수술 현장의 살을 가르는 소리와, 서로 기대어 살던 생명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무심함과 함께,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기 앞에 섰다.





습지 옆에서



이제서야 나는 습지라는것을 처음 보았다. 보 공사로 인해 곧 수몰될거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살벌한 표지판 앞에 섰다. 내용인 즉슨, 이 곳은 공사현장으로 넘어가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으니 통행을 엄금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절반쯤은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으며, 그 누군가는 또 어떤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으며, 사실 우리 모두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한 부분이요 서로서로 기대고 있는 처지임을 생각하면 넘어 가나 넘어가지 않으나 이 공사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의 존립이 위협받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




시야를 가리던 모래 더미 위를 넘어 서니, 사진으로만 보던, 혹은 그 사진에 덧댄 상상으로 기억하던 습지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란 수풀이 감싼 투명한 웅덩이 위로, 방금 전까지 어둡던 하늘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반영되었다. 그렇게 구름이 흘러가는 물결 위를 간혹 작은 생명들이 뛰었다. 그 일상적 고요함 앞에 나는 애처로움을 갖고 사진기를 들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사실이 나는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한국에서만 발견된다는 단양쑥부쟁이의 군락지를 만나게 되었다. 설명을 들으며 단양 쑥부쟁이를 보니, 무려 2년이나 자라서야 20~30cm정도로 자란다고 하니, 그 성장은 참으로 느리지만 대는 힘이 있고 곧으며, 그 푸름이 여느 야생초 못지 않았다. 비단 단양쑥부쟁이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야생초가 군락을 이뤄 사는 듯 했다. 바람 사이로 그들이 기대어 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안들리는 듯,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리는 소나기에 그 소리는 묻혔고, 어쩌면 이 발걸음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아쉬움에도 우리는 이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깊숙이 파낸 흙 속에 공존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작은 생물들의 은하 뿐만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까. 그렇게 죽어버린 은하와 시간이 준설토라는 하나의 죽어버린 거대한 산으로 강줄기 옆에 서서 노란 핏물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단순히 인간의 냉정하고 이기적인 계산 아래에 이뤄진 공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할 수도 있으며 돌이키키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순 없는걸까.



지금 이 시간에도 메마른 기계음이 강줄기를 뒤덮고 있다. 나는 부디 이제서라도, 이제껏 굽이굽이 흘러왔고 앞으로도 계속 흐를 온전한 모습의 강을 보고 싶다. 재앙같은 포크레인 소리와  산을 이룬 흙더미가 작게 타오르는 촛불과 같은 뜨거운 온기를 지닌 생명들을 뒤덮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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