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1-02-07   2307

[인턴후기]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인턴후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용산 참사, 재개발 현장을 다녀와서
이명박선배님!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인턴 김승환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이제 없다. 2년 전 아픈 기억을 강제로 ‘낙태’하듯 남일당은 용산 참사 후 철거되었다. 휘황찬란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옛 남일당 건물터에서 용산참사 2주기를 사흘 앞 둔 1월 17일 재개발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뒤로 용산 최고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시티파크가 보였다. 2년 전 그 자리에서 용산 참사를 도도하게 지켜봤을 고급 아파트의 늘씬한 자태가 오늘만큼은 보기 싫었다. 내가 기억하는 용산 참사의 키워드는 ‘폭력’이다. 용산 참사는 불법적인 망루를 설치하고, 불법적으로 무기를 제조하여 참사를 일으켰던 사회 불순세력이 발단이라고 생각했다. 친북 색채를 상기시키는 듯 한 이름 ‘남일당’, 거부감이 드는 단어 ‘투쟁’으로 가득 찬 이 곳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인턴 교육 과정에서 용산 범대위를 이끈 박래군 집행위원장의 강의를 듣고 이러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용산 참사의 핵심은 ‘생존권’이었다. 경찰을 향해 저항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생활 터전을 빼앗겨 길바닥에 나앉게 된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있었을까? 물론 기존 세입자들 외에 외부 조직이 결합되어 투쟁이 격화된 후 사태가 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망루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무자비하게 진압 작전을 수행한 경찰 잘 못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경찰이나 투쟁 세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부에 있었다. 권리금을 내고 입주한 세입자들에게 생존권 보장을 위해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법적으로 강제 철거는 하자가 없다. 하지만, 인간 위에 법이 있나? 하루아침에 생활공간을 잃고 차디찬 겨울을 맞게 된 사람들 앞에 법치주의를 들이미는 것이 과연 이 사회가 말하는 공정사회인가 궁금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며 서있었다. 사실 구호를 외치는 것도 쑥스러웠다. 나는 이곳의 일원이 아닌 느낌, 일원이 아니고 싶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KBS,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 많은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왔다. 바바리코트 휘날리며 “MBC 뉴스 엄기영입니다.”를 외칠 것만 같은 멋진 기자는 없었다. 추운 손을 녹여가며 작은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적는 손, 검정 백팩, 추운 날씨에 대비해 입은 두꺼운 외투만이 겨울 기자의 모습을 잠시나마 엿보게 해줬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애정 어린 눈빛으로 인터뷰하는 모습마저 보지 못 했다면 추운 날 고생해야 하는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오늘 접었을 지도 모르겠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재개발 지역 순회 방문을 했다. 첫 번째 지역은 성남 단대동이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고,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맞았고, 일부 사람들은 구속된 이야기는 여기서도 반복되었다. 대책위에서 투쟁하시는 분과 현장을 방문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인지 공사현장 측에서는 아예 공사현장 진입을 차단했다.



                                      성남 단대동 재개발 지역
 


두 번째 재개발 지역은 상도4동이었다. 1년 전 이모네가 계신 상도동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지만, 이런곳이 있는지 알지 못 했다. 현장은 충격 자체였다. 초등학교 때 즐겨보던 드라마 ‘육남매’가 떠오를 정도로 내가 알던 보통 주거지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그 보다 더 처참했다. 상도4동 재개발 지역 주민분 말로는 그나마 눈이 와서 처참한 모습이 가려진 것이라고 했다.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평온했던 마을 모습은 온대간데 없고 폐허가 된 모습만 있었다. 그 곳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며 애써 웃으며 말씀하시는 주민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현행법 상 강제 철거를 위한 용역 업체 직원들의 물리력 행사는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 것 또한 충격이었다.




상도 4동 마을 모습




                                                          상도4동 대책위원회

상도 4동 재개발 대책위 본부에 들어갔다. 용역 업체의 잦은 기습타격(?)에 대비해 지붕을 쇠파이프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철거민들이 개사해 만든 노래 ‘개똥세훈’ 속에서 희화화되기도 했다. 대책위 본부에서 나와 직접 폐허가 된 동네를 돌아봤다. 며칠 전 내린 눈은 좁은 길에서 얼음이 되었다. 그 길은 두 사람 겨우 지나갈 너비였다. 여기가 서울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길이 미끄러워 ‘투쟁담’을 설명해주시던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철거민 투쟁을 떠올리면 독기 오른 남자 사내들의 절규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우리 엄마이자 이모의 모습을 보았다. 3000만원만 있었어도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 시내 30평대 전세 값이 얼마인 지 아냐며 엄마한테 결혼할 때 전셋집이라도 얻게 최소한 2억은 달라며 장난스럽게 투정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3000만원은 중형차 가격이고, 신입사원 연봉이다. 그 돈이 없어서 엄동설한에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 납득가지 않았다. 그런데 납득가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게 상도 4동, 아니 재개발지역 모두의 현실이다.

알면 알수록 불편한 게 진실이다. 그 동안 그 진실을 애써 외면했고, 무시했다. 그리고 겉모양이 예쁜 것에 천착했다. 디자인 서울이 표방하는 깨끗한 디자인 수도 서울을 지지했다.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중 하나인 플로팅 아일랜드에 열광했고, 반포 대교 분수의 기발함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회색빛 서울이 아니라 오색빛 창의도시 서울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악’소리 조차 내지 못 하고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억해 달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기 일쑤인 그 외침이 안타까웠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홍대 앞 두리반이었다. 두리반이라는 칼국수집이 있던 건물이기 때문에 두리반이라고 불린다. 역시 강 제 철거 위기에 처해있다. 전기도 끊겼다.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만 경유 발전기로 근근이 불을 밝힌다고 한다. 건물 안도 매우 추웠다. 기자 회견 후 너무 추워서 수면 양말을 구입해서 신었고, 니트, 후드티,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까지 칭칭 동여맸는데도 추위는 가실 줄 몰랐다. 군 전역 후 제대로 느낀 동장군의 위엄이었다. 젊음의 거리 홍대 근처라는 지역적 입지 때문에 인디밴드들과 젊은이들의 지지로 두리반의 모습은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 로동당을 연상시키는 빨간 글씨로 뒤덮였던 다른 지역과 달리 젊음의 위트가 느껴지는 글씨들이 인상적이었다. 제2의 용산 참사 사태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한 상징으로 남기 위해 절대 투쟁을 멈출 수 없다는 관계자의 말에 비장함 마저 느껴졌다.






홍대 두리반 내부정경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고, ‘투쟁’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또한 정부를 비난하는 한 쪽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막연히 정부에 대해 분노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절차의 합법성이나 정당성을 떠나 ‘인권’이라는 기준으로 재개발 현장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의 정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 동안 보수신문, 진보신문 편식하지 않고 균형적이게 읽으려고 노력했고, 합리적이게 사고하려고 노력했다. 나름대로 외골수적이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로 현장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끝까지 믿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은 내 머릿속에서 산산 조각났다. ‘그래도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한편으로는 정부를 옹호하던 마음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대통령님께 직접 물어보고 싶다. “이명박 선배님,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지금 참여연대에는 16명의 7기인턴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겨울 추위를 떨쳐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 글은 평화군축팀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김승환씨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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