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2-07-30   1955

[인턴후기] 희망을 보다 : 이태호 사무처장 강연을 듣고

[편집자주] 참여연대에서 7/3(화)부터 8/14(화)까지 약 7주간 활동하는 10기 인턴들의 교육 및 활동후기가 차례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희망을 보다
–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 강연을 듣고

작성 : 참여연대 10기 인턴 김문영   

‘자유롭게 떠들 자유’, 중구난방이란 사자성어의 본뜻이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삼가고 자제하는 걸 배워왔다. 겸손함이 미덕인 우리나라에서 중구난방의 어원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방진’ 시민행동은 옛부터 있어왔다. 이태호 사무처장님의 강연의 초점은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시민운동들과 그 운동의 시대의 흐름을 짚어주셨다. 

‘Peoplepower21’
이것은 참여연대 홈페이지 주소다. 이러게 작명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과 함께 처장님과 거슬러 가본 평화적 시민행동의 역사.

그 시발점은 1989년 라이프찌히에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한 달 전 30만이 넘는 인파가 ‘우리가 인민(We are the people)이란 구호를 외쳤고, 그 결과 공산당 독재가 무너졌다. 이 구호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2000년대 중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 행정부에 맞선 반전운동의 핵심이 ‘우리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Not in our name)’였고, 미국발 금융위기에 벌어진 2011년 월가 점령시위에서도 그 연장선 상에 있는 ‘우리가 바로 99%다’라는 구호가 나왔으니 말이다.

이태호 처장

한편, 직접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예시로 이집트, 예멘 등지에서 있었던 시위도 있다. 이 시위 소식은 우리나라의 4.19혁명과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하여 반가웠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역시 한국처럼 경제 근대화는 물론이고, 촛불시위와 직접민주주의 운동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벌어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까지 꾸게 했다.

그러나 민주화의 과정이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 한국은, 아니 전세계가 아직도 그 과도기적인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다만 한국이 이런 단계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일 뿐. 한국은 정치 제도적으로는 서구적 형태를 완벽히 이상적으로 모방하였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서열화는 분명히 되어있으니까.

그리고 이 부에 따른 차등주의(이에 따라 교육의 기회, 삶의 모습이 달라지고 이는 답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정경유착이 가능하고, 초국적 기업이 클 수 있는 구조의 수정자본주의 하에서 당연시 또는 정당화 될 수 있다. 2011년까지 최고 주가를 올려가던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이태호 처장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재앙자본주의’가 성행할 뿐이다. ‘공포와 충격(shock) 주기 요법’ 속에서 시민들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연대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을까?

사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좌절을 느꼈었다. 우선 나부터 일상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목격하고도 별 관심이 없이 지나친 시위현장이 수없이 많았으며, ‘과연 여기 모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가 관철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회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두 블록 정도는 휘감고 대기하고 있는 경찰 버스를 보면 드는 감정 역시 당혹스러움과 답답함이었다.

하지만 이태호 처장님의 강연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자유로운 공론장의 형성을 막아 버리면 나라가 망해버린다’라는 ‘중구난방’의 본뜻을 들으며 시작된 강의에서 시민행동의 원동력은 ‘성공’할 수 있으리란 확신보다 사회에서 미흡하게 채워진 부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처장님은 마이크를 가까이 안 대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맹렬한 눈빛과 자유로운 몸짓에서 충분한 카리스마마저 느껴졌다. 그래, 시민단체니까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건방지게’ 할 말 할 수 있는 참여연대가 됐으면 좋겠다 싶다.

재기발랄한 운동을,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이해하기 쉽게 우리의 언어로 풀어서 쓴 운동을 계속 해가는 것이다. 그 사이 현 체제에서의 ‘사람다운’ 삶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테고, 지그재그와 같이 굴곡의 시기를 겪겠지만 결국엔 과도기적 허물을 벗는 날도 오겠지.

1989년은 내가 태어났던 해도 아니지만, 그 때의 라이프찌히에서의 구호와 그 감동은 미래에도 계속 있을 것 같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