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4-13   1059

<경제프리즘> 반기업 정서 vs 친기업 정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4월 6일 우리나라 상위 38개 기업집단 총수일가들에 대한 문제성 거래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지난 10년 동안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느라 많은 인원들이 3개월간 많은 땀을 흘리며 작성한 보고서였다.

작업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대기업 총수들의 문제성 거래가 훨씬 많이 발견됨에 따라 분석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적잖게 놀랐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의 편법적인 부의 상속이 소수의 몇몇 기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이다. 그 중에서도 회사기회의 편취(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에 해당하는 사례가 30건으로 가장 많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지원성거래와 부당한 주식거래가 각각 20건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편법적인 관행이 널리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인 책임은 총수와 그 일가에게 있음은 자명하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사회는 기업에 대해 많은 변화를 요구하였다. 끈질기게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해 왔으나 이러한 사회의 요구를 기업의 총수들은 무시한 것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경쟁력을 제고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그렇게 얻어 들인 이익에 대해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는 시스템이야 말로 사회가 기업에게 바라는 단순한 요구인 것이다.

주주 등 회사 구성원의 이익을 지켜줘야 할 이사들 또한 그 책임을 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이사는 총수일가나 특정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선임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된 거래의 경우 이사회에서 깊은 논의가 없이 통과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거래의 당사자가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우 (self-dealing) 일반적인 경영판단보다 높은 기준(entire fairness)을 가지고 그 거래가 공정하였는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공정한 가격(fair price)뿐만 아니라 공정한 절차(fair dealing)라는 높은 잣대를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문제가 된 거래들이 모두 자기거래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절차는 차치하고라도 거래가격조차도 정상가격을 현저히 벗어난 것이었다.

보고서에서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고 지적된 두 회사(글로비스와 광주신세계)의 경우에도 이러한 절차와 가격이 결여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법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사들에게 최선의 거래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거래에 해당할 경우 최소한의 요건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거래가격과 관련하여 적정한 가격을 찾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공정한 절차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보고서 발표 후 재계는 보고서의 내용을 폄하하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반응이야 예상되었던 터이지만 그래도 자료분석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이러한 보고서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러한 보고서는 친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아직도 총수일가와 기업을 등식관계로 놓고 문제된 총수일가의 거래를 들추는 것이 곧바로 기업의 문제인양 악의에 찬 반응은 그들의 기업관을 보여 주는 대목이어서 씁쓸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기업을 설립하고 성장시킨 총수들의 업적을 폄하하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다. 기업이 나라 경제의 성장 원동력임을 잘 알고 있으며 맨바닥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을 일구어낸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또한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기업들 특히 상장기업의 경우는 이제 더 이상 총수일가만의 구멍가게가 아니다. 기업의 모든 구성원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루어낸 과실을 법이 정한 데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고 기업들로 하여금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요구하는 친기업적인 보고서인 것이다.

이지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변호사(뉴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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