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5-16   853

<안국동窓> 참여정부와 국가폭력

한국은 건국 이래 오랫동안 독재에 시달렸다. 독재는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인정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폭력으로 1인 내지 소수의 지배를 관철하는 근대적 통치체제이다. 독재의 시대는 단순히 1인 내지 소수의 지배가 관철되는 시대가 아니라 그것을 위해 노골적인 국가폭력이 자행되는 국가폭력의 시대이다. 우리가 독재를 혐오하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재는 법치가 아닌 폭치, 또는 법치를 가장한 폭치이다.

민주화는 무엇보다 독재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1인 내지 소수의 지배를 끝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자행되던 국가폭력을 끝내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의사가 정치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국가폭력이 자행되지 않는 평화로운 정치체제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지표, 즉 대표성과 평화성은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핵심적 사항이 된다.

이제 두 지표를 이용해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자.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결과는 참담하다. 다른 말을 더 할 수가 없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린 결과가 오직 이것뿐이란 말인가? 참여정부는 ‘배신의 정부’가 되고 말았다. 왜 그런가? 대표성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폭력의 문제는 거의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가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괴물과 맞서 싸우다가 스스로 괴물이 되어 버렸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오랜 민주화투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에 그들은 국가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불쌍하게도 그들은 국가폭력을 권력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국가폭력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정치적 민주화의 핵심과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국가폭력이라고 하면 흔히 체포와 고문을 떠올릴 것이다. ‘박종철 살인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그렇다.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 의한 체포와 고문과 살인은 국가폭력의 가장 무서운 예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더욱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국가폭력은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이른바 ‘공권력’을 이용해서 억압하는 것이다. 갑옷과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전경이야말로 국가폭력의 가장 일상적인 상징인 것이다. 이 사실을 참여정부는 정녕 모르는가?

2006년 5월 4일 평택에서 참여정부는 미군기지의 이전계획에 따른 토지강제수용에 맞서는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이미 지난 3월에도, 4월에도 이런 폭력을 휘둘러서 문제가 되었건만 이번에는 더욱 더 강력한 폭력을 휘둘렀다. 국가폭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수록 참여정부의 국가폭력은 더욱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시위하는 농민을 때려 죽여서 경찰청장이 해임된 것이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이런 일을 어느덧 모조리 잊어버린 모양이다.

참여정부의 국가폭력은 2006년 봄의 평택이 아니라 이미 2003년 가을의 부안에서 생생히 확인되었다. 부안 주민들은 일방적인 핵폐기장 정책에 맞서서 오랫동안 생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이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애썼고, 주민들에게 무지바한 폭력을 휘둘렀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머리가 깨지고 살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전경들은 아버지 어머니 뻘 되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다. 주민들은 ‘계엄상태’라고 말했다.

국가폭력의 문제는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깊게 만들고 있다. 참여정부가 ‘배신의 정부’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국가폭력의 문제이다. 부안과 여의도와 평택에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국가폭력의 실상은 참여정부가 온전한 민주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참여정부의 국가폭력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세력을 보라. 그들은 참여정부를 적극 지지하고 나서면서 두들겨 맞아 피 흘리는 국민들에게 총을 쏴야 한다고까지 외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기억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면, 그치지 않고 있는 국가폭력에 대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국가폭력의 총책임자가 되려고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군형법 적용 운운한 윤광웅 국방장관은 즉각 해임해야 하며, 질서유지를 위한 광주 군 투입 운운한 이원영 의원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화의 역사 자체를 무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여전히 국가폭력의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이 두렵다. 행정대집행이라는 법적 절차를 내세워 국가폭력을 정당화하고 행복추구권과 주거권은 물론이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짓밟는 이 현실이 참으로 두렵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된 한미협상의 문제가 사라지는가? 아니다. 하나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뿐이다. 반민주세력만이 좋아하는 이런 잘못의 악순환에서 참여정부는 정녕 벗어나지 않을 것인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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